빨래는 지나온 것들의 초상
세탁과 건조가 힘든 이불 빨래 같은 경우엔 코인 빨래방을 이용한다. 집 바로 앞에 있으면 참 좋겠지만 아쉽게 도보로 10분 정도 걸어야 빨래방이 나온다. 이불이 생각보다 무겁다는 걸 이때 알았다.
낑낑대며 빨랫감들을 들고 들어가면 특유의 깔끔한 분위기와 뽀송한 세제 향기에 괜히 기분이 좋다. 손에 깊게 파인 빨래가방 자국을 뒤로한 채 이불을 쑤셔 넣고 주머니에 겨우 들어간 한 뼘이 채 안 되는 시집을 꺼내 읽는다. 한 두어 장 읽고 난 뒤 정신없이 거품을 내며 돌아가는 세탁기를 바라본다. 그렇게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아득해질 때가 있다.
이불과 각종 빨랫감 속에 묻어있는 수많은 잔여감정들. 이런 것들이 뒤섞여 돌아가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보니 하루를 겨우 살아갈 가냘픈 의지만이 남아있었다. 아 빨래는 하루를 다 마무리할 때 즈음에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