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이야기
친한 대학 선배가 결혼을 한단다. 늘 그렇듯 풋살장에서 만나 청첩장을 받았다. 제법 웃긴 관계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숨을 돌리다 문득 그 선배와의 인연이 10년이 되었음을 느꼈다. 운동을 마친 후 집에 가며 청첩장을 찬찬히 살펴봤다. 청첩장의 뒤에는 긴 인연을 대변하듯 짧은 편지가 써져 있었다. 지금처럼 빈 이야기하면서 지내자는 내용이었다. 빈 이야기 좋지.
가끔은 너무 무거워 입술에서 툭하고 떨어지는 그런 말보단 실없이 떠들어대는 빈 이야기가 좋을 때가 있다. 정말 텅텅 비어서 의미를 찾을 수고조차 안 해도 되는 그런 말들 말이다. 그렇게 한참 빈 이야기를 띄우며 한탕 웃어내면 왜인지 개운하다. 우린 너무 생각하며 말하는 것이 아닐까. 적당히 비워볼까. 아니면 완전히?
결혼식 당일, 예식장을 검색해 보니 회사 바로 앞이었다. 쉬는 날 말 그대로의 출근길(출근하는 길)을 가다니. 저녁 시간 대라 여유롭게 준비하고 적절히 갖춰 입은 뒤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늘 가던 출근길인데 마음엔 여유가 가득했다. 곧 출발할 준비를 하는 열차를 뛰어 타지 않고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내 모습에 꽤 놀랐다. 늘 사람에 치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혼미한 상태로 겨우 겨우 버텨내던 길인데. 넉넉한 자리와 군데군데 비어있는 자리들이 격려를 보내는 것 같아 얼떨떨했다. 그렇게 씩씩하게 회사를 지나 예식장에 도착했다. 예식장 유리에 비친 회사를 바라보니 앞으로의 출근길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아 괜스레 멋쩍었다. 어찌 될지는 다다라야 알겠지만 일단은 살아볼 법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