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7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소설 대고려연방 (33)

자유통행 1

by 맥도강 Mar 19. 2025

대통령은 NSC회의를 마치자마자 곧장 평양의 정 위원장 집무실로 직통전화를 걸었다.

한시각이 급했던 상황이라 이런저런 요식행위는 생략하고 대통령이 직접 정 위원장을 찾았다.

평양 노동당 본부청사의 2층에 위치한 정 위원장의 집무실에서 전화를 받은 사람은 호위사령관이었다.

곽 사령관은 당연히 남쪽의 당직자가 전화를 건 것으로 생각하여 거만한 태도로 전화를 받았다.

“남쪽에서 뭔 일이요! 남쪽에서 머시기 볼일이 있었어 전화를 건 것이오?”

“아 네 위원장님께서 직접 받으셨군요, 저는 한국대통령입니다!”

“아 아 그러십니까! 몰라뵈서 죄송하게 됐습니다,

저는 대원수님을 호위하는 호위사령관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라요, 대원수님께 연결해 드리갔습니다!”

호위사령관이 어찌나 당당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던지 대통령이 순간적으로 정 위원장으로 착각하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연출되었다.


독도전쟁 이후 남북의 두 정상은 이따금씩 직통전화기를 마주 잡았다.

민족의 생사가 걸린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온 정신을 집중하여 다시금 목소리를 마주했다.

남북정상의 집무실에 설치된 구형의 검정색 직통전화기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위원장님! 오늘 미국대통령과 장시간 통화를 했습니다,

사태가 워낙 심각하여 이렇게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대통령님께서 말씀 안 하셔도 미국대통령이 뭐라고 협박질을 했는지 짐작이 갑니다만 우리 공화국은 일없으니 편안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전화상으로 길게 드릴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민 대통령이 이렇게 머뭇거리는 데는 CIA에 의한 도청의 위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마 머릿속에서 맴도는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을 때 대통령의 조심스러운 태도와는 달리 정 위원장의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뭐 오늘 밤에라도 우리 공화국을 까부수겠다고 협박 질이라도 한 모양입니다만 우리도 충분히 대비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재래식으로 싸우자면 재래식으로 싸울 것이고, 핵으로 싸우자면 핵으로 상대해 줄 자신이 있습니다,

그 어떤 전쟁에 대해서도 우린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정작 호들갑을 떠는 사람은 민 대통령이었고 정 위원장은 오히려 담담하게 말했다.


물론 정 위원장도 도청의 우려를 잘 알고 있었기에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의 성격이 강했다.

“위원장님! 일단은 우리가 만나야겠습니다,

지체 없이 만났으면 합니다!”

“그럽시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일전에 대통령님이 제안하신 건에 대해서는 우리도 전폭적으로 동의하는 것으로 할 테니까 이참에 실무적으로 종결을 짓는 것이 좋갔습니다,

또 미제가 우리 공화국에 대해서 뭐라고 협박 질을 했는지 대통령님께 한번 들으나 봐야 갔습니다!”   


남북 정상 간의 짧은 통화는 이후 전개될 엄청난 일들을 함축적으로 담아냈다.

평상시 같았으면 수십 년도 더 걸렸을 법한 대단히 어려운 의제들도 민족적 위기상황 앞에서는 단 며칠 만에 해결해 내는 광속의 속도전이 펼쳐졌다.

말 많은 정치권조차도 우리의 국토를 지키려는 대통령의 의지를 낡은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발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반도가 북미 간의 핵전쟁 터가 될 수도 있는 국가적 위기국면 앞에서는 여야의 정쟁 따위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적어도 이민족의 침입 앞에서는 똘똘 뭉쳐서 함께 싸우려는 오래된 DNA가 있었고, 우리 땅 독도를 지켜낸 최근의 성과물도 있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길게 뜸 들일 여유도 없이 2029년 11월의 첫날 속전속결로 만남은 이루어졌다.

아침 아홉 시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만난 두 정상은 오전 내내 실무회담을 가졌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내외신 기자들은 미국의 선제공격에 대비한 모종의 협의정도로만 생각했지 또 다른 중요 의제가 협상테이블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이미 남북 간에는 큰 틀의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라 협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남북 정상 간의 합의문 서명식을 오후 일정으로 잡아둔 상태였다.


점심을 마친 두 정상은 그 유명한 도보다리를 거닐며 미국이 들었다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을법한 은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위원장님! 뉴프레지와의 통화 중에 알게 된 중대한 사실이 있습니다,

전쟁이 발생한다면 어쩌면 미군만의 단독작전이 아닐 수 있다고 말하더군요”

이 말에 정 위원장의 표정이 싸늘하게 바뀌었다.

“자위대를 끌어들여서 미일 연합군이 쳐들어온다면 오히려 바라던 바입니다,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민 대통령의 다음 말은 정 위원장의 비수를 찌르고 말았다.

“다음 달 24일을 최종 기한으로 설정하면서 그때까지 위원장님께서 굴복하지 않는다면…"

차마 다음 말을 바로 잇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린 후 다시 이어나갔다.  

"즉석에서 성탄절 폭죽놀이라고 이름 붙인 이 작전에는 놀랍게도 일본이 아니라 중국지상군과의 합동작전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방금 이 말은 정 위원장으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정 위원장의 오른쪽 눈가 주변이 파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순간적으로 다리 난간을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잠시 현기증이 나서 중심을 잃었던 것인데 대통령이 부축을 하려고 하자 정 위원장이 웃으면서 제지했다.

“일없습니다 대통령님!

지금 우리를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는데 허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갔지요!”


실제로 이 장면들은 지금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있었다.

하지만 먼 곳에서 촬영하는 방송카메라로는 방금 전의 이 상황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여 두 정상이 나무벤치에 마주 앉았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삭이면서도 정 위원장은 짐짓 여유로운 표정을 유지했다.

“성탄절 폭죽놀이라고요?

그것도 자위대가 아니라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미제와 합동으로 쳐들어온다는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위원장님! 공중과 지상으로 역할분담을 한 모양입니다,

위원장님의 체제를 붕괴시키고 중국의 괴뢰정권을 수립하겠다는 동북공정의 연장선상에서 그렇게 야합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저 멀리 숲 속에서는 고성능의 망원경카메라로 두 정상의 입모양을 집중적으로 촬영하면서 필요이상의 관심을 보이는 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도 다양한 경험의 소유자인 정 위원장이 준비해 온 접이식 전통부채가 저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민 대통령의 발언 중에도 손수 부채를 펼쳐서 가림 막을 만들어주었다.


“생각해 보면 중국의 배신행위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닙니다,

동북공정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동안 언급을 자제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만 실상은 북중관계의 파탄을 상징하는 단어였습니다!

이천 년대 들어서 동북공정이 등장하자 우리 장군님께서도 이제는 중국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고 자주 말씀하셨더랬지요!    

예로부터 중국은 우리의 국토에 관심이 많은 외세였습니다,

우리 내부적으로도 늘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그것은 저들도 마찬가지였지요,

고구려에 뿌리를 두고서 민족의 자주성을 강조해 온 우리 공화국을 탐탁지 않게 생각해 왔으니 말입니다”


따듯한 눈빛으로 정 위원장을 바라보던 민 대통령이 별안간 정 위원장의 오른손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위원장님 고맙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합의한 여행자유화 조치는 장차 민족통일의 굳건한 초석이 될 것입니다,

남과 북이 힘을 합친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정 위원장도 자신의 나머지 왼손을 대통령의 두 손위에 다시 얹으며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우리를 둘러싼 외세들이 제아무리 미쳐서 날뛰더라도 우리 민족을 영원히 떼어놓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본시 하나였기에 언젠가는 하나가 될 것입니다,

암요 조만간에 그렇게 될 겁니다,

우리 민족의 역량을 총동원해서라도 겨레 앞에 닥친 작금의 위기상황을 잘 극복해 냅시다!”

두 사람의 의기투합은 각기 맞잡은 양손을 힘차게 흔드는 것으로 더욱 과시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설 대고려연방 (32)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