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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대고려연방 (35)

자유통행 3

by 맥도강 Mar 19. 2025

뉴욕타임스 기자의 질문이 끝나자 모두는 정 위원장의 얼굴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싫든 좋든 그는 이제 전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고약한 질문에 답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부닥쳤다.

뚜벅뚜벅 단상으로 다가오고 있었을 때 사람들의 생각만큼 그의 표정이 어둡지는 않았다.

또다시 세계인들은 정 위원장의 입을 바라보고 있었고 마치 그는 연설하듯 씩씩하게 말했다.  

“오늘 우리 북과 남의 두 정상이 합의한 여행자유화 조치는 큰 혼란 없이 정착되리라 자신합니다!

내가 우리 공화국의 인민들을 믿지 못하였다면 이러한 행정조치는 결단코 결정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자선생 말대로 남쪽으로 내려간 우리 인민들이 되돌아오지 않는다면 그 지도자는 인민들의 신뢰를 잃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 지도자는 자신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될 것입니다,

기자 양반! 답변이 되었습니까?”


다소 거친 화법으로 만용에 가까운 자신감을 드러내면서도 정 위원장은 인상 한번 쓰지 않고 내내 웃는 얼굴이었다.

넘치는 여유에서 우러나는 그 당당함 앞에서 뉴욕타임스 기자조차도 더 이상은 대꾸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정 위원장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을 때 그의 태도는 더욱 결연해 보였다.

“금년 봄에 있었던 독도전쟁을 모두들 기억하실 겁니다,

부득이한 상황에서 우리 공화국이 결행했던 핵무력의 과시는 외세로부터 우리 민족의 국토를 지키기 위한 지극히 당연한 조치였습니다!

금일 북과 남이 합의한 여행자유화 조치는 통일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민족적 차원의 조치입니다,

따라서 차후 미제가 일으키게 될 전쟁과는 그 어떤 관련성도 없다는 사실을 이 자리를 빌려 분명히 밝힙니다!”


일명 워룸이라 불리는 백악관의 전시상황실,

참모들과 함께 로켓맨의 넘치는 만용을 TV 생중계로 지켜보던 뉴프레지의 큼직한 오른손 안에서는 텍사스산 호두알 두 개가 '삐꺼덕'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굴러가고 있었다.

무표정한 자세로 뒤쪽 벽에 기대어 서있던 튼볼보좌관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오히려 잘되지 않았습니까! 두고 보십시오?

실제로 저 조치가 시행된다면 칠십 퍼센트가 넘는 평양시민들이 한국으로 탈북하게 될 텐데 평양은 삼일 안에 유령도시가 되고 말 겁니다,

부담 없이 크리스마스 폭죽놀이를 즐기게 생겼으니 차라리 잘됐습니다!”

작전명 ‘크리스마스 폭죽놀이’는 이제 더는 피할 수 없는 백악관의 당면 과제가 되어 벼렸다.

세계인들 앞에서 마음껏 지껄여대는 북한지도자를 더 이상 방치한다면 어느 누구도 미국을 세계 최강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뉴프레지는 구겨져버린 미국의 체면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결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더욱 빡세어진 텍사스산 호두알 부딪치는 소리를 통해서 재차 확인했다.


평화의 집 로비에서는 기자들의 질문공세가 멈출 기미도 없이 계속 이어졌다.

“오늘 합의한 두 조치들은 언제부터 시행합니까?”

“지금 즉시 발효되는 것입니까?”

외신기자들의 질문공세는 여기저기서 우후죽순처럼 튀어나왔지만 어느새 정 위원장도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농담까지 곁들이면서 또박또박 답변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기 때문에 최소한의 준비시간을 거쳐서…”

정 위원장의 이 말에 장내는 또다시 폭소의 도가니가 되고 말았다.


지금 이 장면을 보고 있을 미중일의 지도자들에게 보여주려는 정 위원장의 계산된 자신감이었다.

“오늘 북과 남이 합의한 모든 조치들의 시행일은 다가오는 10일부터입니다”

“왜 하필이면 11월 10일부터입니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이때 민 대통령이 정 위원장에게 부담스럽다면 대신 답변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하려 했지만 정 위원장은 그럴 뜻이 없었다.

“다가오는 11월 10일은 동독이 시행하고자 했던 여행자유화조치의 사십 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우리는 회피하지 않고 이 세계사적인 날과 정면으로 부닥치겠습니다!

그 당시의 동독은 여러 요인으로 인하여 실패할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는 보란 듯이 멋들어진 결과물을 세계만방에 보여주갔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정 위원장이 민 대통령을 향해서 투벅투벅 걸어가더니 대통령의 왼손을 움켜쥐고 함께 만세를 불렀다.

세계인들이 지켜본 오늘 정 위원장의 모습은 대단히 적극적이고 자신감에 넘쳤다.

해맑은 표정으로 만세를 부르는 두 사람의 모습을 담기 위하여 내외신기자들은 거침없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렸다.    


다음날 아침 민 대통령은 청와대의 창밖 표정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서 있었다.

잠깐이나마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할 수 있어 어느새 습관처럼 되어버린 행동이다.

어제 지구촌을 시끌벅적하게 만들어 놓았던 판문점회동을 회상하면서 이후의 일정에 대한 깊은 사색에 빠져들었다.


삼일특공대에서 작성한 한반도실행계획은 이제 세세한 부분까지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었고 다음 순서는 중국 흔들기였다.

미 공군과 중국 지상군이 공중과 지상에서 동시에 공격해 들어온다면 현실적으로 막아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G2의 공조를 깨뜨리는 것이 시급한 문제였다.


어떻게든 중국을 흔들어서 저들 간의 공조를 깨뜨려야만 작은 희망의 싹이라도 틔울 수 있었기에 중국을 흔들어야 했다.

삼일특공대에서 제시한 중국흔들기의 비밀 병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중국의 역린 건드리기였다.


이 문제를 두고서 장고를 거듭하고 있었을 때 비서실장이 다급하게 들어와 그동안 애타게 기다리던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대통령님! 수에레브 교황대사로부터 방금 연락이 왔는데 교황께서 쾌히 승낙하셨답니다!

이번 성탄절 축하 미사를 평양에서 하시겠다는 통보가 왔습니다!”  

이 말에 대통령이 얼마나 기뻤던지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몇 차례나 힘차게 흔들어 됐다.

“다행입니다! 정말 잘됐어요!”


대통령은 그래도 흥분이 가시지 않았던지 혼자 박수를 치기도 하면서 기쁨에 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교황께서 한반도 전쟁을 막기 위해서 정말 큰 결심을 하셨어요,

이제야 저 멀리서 다가오는 평화의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비서실장도 감격에 겨운 듯 눈가 주변이 붉어졌다.


비서실장이 말할 땐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나마 떨렸다.

“교황님의 평양방문 사실을 크게 알리는 홍보 전략을 준비하겠습니다!”

“암요 암요! 당연히 그래야지요,

교황께서 전쟁의 먹구름을 물리치기 위해서 한반도로 오신다는데 크게 영접해야겠지요,

두고 보세요! 교황님의 방문으로 이제 한반도는 평화의 분위기가 무르익게 될 겁니다,

아니 꼭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하늘이 주신 기회가 분명합니다!”  


저녁 무렵 로마교황청의 긴급성명이 발표되었다.

교황이 성탄절 기간인 12월 22일부터 26일까지 사박 오일 간의 일정으로, ‘한반도평화를 위한 평양대기도회’를 주관하기 위하여 평양을 방문한다는 소식이었다.


교황의 평양방문 소식에 미국이 발끈하고 나섰다.

국무부 대변인의 논평을 통해서 교황의 평양 방문은 북핵문제의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공식적인 철회를 요청했다.

심기가 불편해진 뉴프레지가 날린 SNS X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늙은 교황이 치매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며 조롱했던 것이다.

X 전 세계 가톨릭신자들의 분노를 자초하는 자충수가 되고 말았고 이로 인하여 교황의 평양방문에 동행하겠다는 가톨릭신자들이 구름처럼 늘어났다.


미 대통령의 전용 휴양지인 캠프데이비드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준비 중이던 뉴프레지는 튼볼 안보보좌관에게 소리쳤다.

“그런다고 우리가 준비한 크리스마스 폭죽놀이가 취소되는 일 따윈 절대로 없을 거야, 그렇지 않은가 튼볼!”

튼볼은 아무런 댓구없이 옅은 미소를 지었지만 속으로는 뉴프레지의 느닷없는 돌출행동 때문에 부글부글 끓었다.

뉴프레지의 정제되지 않은 텍사스 카우보이식 지도력이야말로 미국이 당면한 심각한 리스크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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