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글 쓰는 즐거움
주제 2. 억울했던 순간_코로나 선생님, 당신 때문에 참으로 억울합니다.
코로나 19라는 전염병이 시작된 지 1년하고도 6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어린이집의 휴원과 긴급보육이 반복되었지만, 가정 보육이 필요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일터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일하는 엄마로 살아가면서 아이를 마스크 하나만 씌운 채 전쟁터에 내보내는 듯한 죄책감을 느꼈지만, 반복되는 이 상황에 우리는 서서히 적응하기 시작했다. 매일 출근을 위해 밖으로 나가야 했기 때문에 이런저런 뉴스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게 됐고 어찌 보면 우리의 생활은 코로나 전과 후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학교에 가지 않아 아이의 생활방식이 망가졌다거나 친구를 사귀지 못하여 단체생활에서 겉도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장기간 지속한 가정 보육에 극심한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생겼다거나 미치기 직전까지 갔다는 이야기도 남의 이야기일 뿐, 내 일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조금 조심하고 조금 참으면 되는 상황이었고 그마저도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다 보니 나 역시 몇 달 전 코로나가 조금은 사라졌을 무렵에 예약해둔 리조트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언제까지 재난 상황에 내 행복을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방역수칙을 지키는 범위 안에서 나도 남들처럼 즐기고, 아이들도 물놀이로 즐거웠으면 하는 마음으로 물놀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물에 들어갔다.
즐겁게 놀이하며 웃고 즐기는 아이들을 보니 만족스러움과 동시에 갑자기 이 여행을 위해 들인 비용이 생각났다. 여기서 하룻밤 자고 밥 먹고 물놀이까지 하려면 최소한 40만 원은 필요할 텐데, 코로나로 생계가 어려워진 자영업자분들이 과연 이곳에 올 수 있을까. 일상이 망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여유롭게 하루를 즐길 수 있을까. 부모님이 생업에 힘겹게 뛰어든다면 그 아이들이 이런 곳에 올 수 있겠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꼈지만 모두 행복해 보였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너의 부모님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니... 함께 참고 있을 땐 몰랐는데 즐겁게 누리기 시작하니 보이는 것들로 이런저런 생각들이 끊이지 않았다.
문득 코로나 때문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꽤 깊숙하게 생활 속으로 들어왔구나 싶었다. 생각할 것들이 많아졌다. 그 순간부터 즐거움이 걱정과 한숨이 뒤섞인 심각함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남편에게도 내가 느낀 감정들을 이야기하였고 자연스레 형님네 조카들 이야기로 이어졌다.
형님댁은 아이들이 셋이나 되어 항상 여유롭지 못했다. 생업이 바빠 아이들을 잘 챙기지 못하지만, 시에서 운영하는 공부방에서 방학마다 저렴한 가격에 놀이공원도 가고 수영장도 갈 수 있었다. 보편적 지원이 가능했던 그때는 여유로운 사람만이 이런 순간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코로나 이전엔 학교에서도 공부방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저렴한 가격에 진행했기에 조금만 비용을 지급하면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많은 프로그램이 시행되지 못했고 아이들은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반면에 돈 있는 사람들은 코로나 이전과 똑같이 즐긴다. 개인 수영장이 있는 빌라에 가서 개별 물놀이를 즐기거나 야영장에서 우리만의 공간을 활용하여 가족만의 시간을 즐긴다. 코로나로 인해 생업이 힘들어진 사람들은 어떨까. 사실 그 전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았겠지만,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들이 단절되고 난 후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진 듯하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즐길 수 있는 사람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그 부류가 나뉜다. 일 년 반이라는 시간이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를 더욱더 심하게 벌어놓은 것 같은 생각에 너무나 씁쓸했고, 나라고 언제까지 즐길 수 있는 부류에 남을 수 있을 것인지, 그 격차가 점점 더 심해지는 건 아닌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누가 이 바이러스를 만든 건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이런저런 생각거리를 안겨준 코로나 덕에 나는 꾀나 심각하게 이 상황이 억울해졌다. 그리고 미안해졌다. 함께 견뎌온 힘든 시간 속에서 나만 즐거웠던 것 같아서. 이렇게 생각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억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