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감사해야한다는 것인지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감사란 무엇인가: 세상에서 가장 '가성비' 좋은 행복의 기술
‘자애’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흔하게 우리는 ‘감사’에 대한 조언을 듣는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말은,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현자들이 이야기해 온 진리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나는 이 ‘감사’라는 단어 앞에서도, ‘자애’ 앞에서 느꼈던 것과 똑같은 종류의 어색함과 저항감을 느꼈다. “감사합니다”라고 주문처럼 되뇌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 마음은 결핍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는데, 억지로 감사한 점을 찾아내는 것이 ‘거짓 자기암시’와 무엇이 다른가? ‘감사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정말 효과가 있기는 한 건가?
이 글은, 그 모든 정직한 의문에서 출발한 나의 탐구 기록이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이해하게 된, 감사가 가진 놀라운 효율성과 그것을 훈련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감사’가 어색한 이들에게: 왜 우리는 감사에 저항하는가
우리가 감사 훈련에 저항감을 느끼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는 감사를 일종의 ‘감정’이라고 오해하고, 그 감정을 억지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음은 지독한 현실주의자다. 지금 내 통장 잔고가 비어있고, 몸이 아프며, 관계가 삐걱거리는 것이 ‘팩트’인데, 그 현실을 무시한 채 억지로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내면의 큰 괴리를 낳는다. 뇌는 그 거짓을 즉시 알아차리고 저항한다. “지금 전혀 감사하지 않은데, 왜 감사한 척해야 하는가?” 이 저항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건강한 반응이다.
만약 감사가 ‘없는 감정을 만들어내는 마술’이라면, 나 또한 그것을 경계하고 멀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탐구 끝에 내린 결론은 정반대였다. 진정한 감사의 길은, 감정을 만드는 행위가 아니었다.
감사의 진짜 목적과 효과: 결핍의 안개를 걷어내는 손전등
진정한 감사의 길은, ‘없는 감정 만들기’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지만 우리가 보지 못했던 사실을 발견하기’다.
이것을 ‘어두운 방 안의 손전등’ 비유로 설명할 수 있다. 우리의 주의력이라는 손전등은, 생존을 위해 본래 ‘문제점’, ‘위험’, ‘결핍’이라는 어두운 구석을 비추는 데에만 익숙해져 있다(뇌의 부정 편향, Negativity Bias). 우리는 가만히 내버려 두면 저절로 ‘내가 가지지 못한 것’, ‘오늘 잘못된 일’만을 찾아내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감사 훈련’이란, 바로 이 손전등의 빛줄기를 의도적으로 돌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무시해왔던 ‘이미 내게 주어진 긍정적 사실’을 비추어보는 기술적인 연습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감사는 세상에서 가장 ‘가성비’ 좋은 행복 기술이다. ‘결핍’을 기본값으로 사는 사람은,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외부에서 무언가를 찾아 헤매야 한다. 여기에는 막대한 정신적, 물리적 에너지가 소모된다. 하지만 ‘감사’를 통해 ‘이미 가진 것’에 주의를 두는 사람은, 더 적은 에너지로 더 큰 충만감을 느낄 수 있다. 같은 하루를 살아도, 삶의 효율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자애와 감사의 관계를 ‘엔진과 윤활유’에 비유하고 싶다. ‘자애’가 나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끄는 강력한 엔진이라면, ‘감사’는 그 엔진의 마찰열을 식히고 길을 부드럽게 닦아, 최소한의 연료만으로도 목적지를 향해 순항하게 만드는 최고의 윤활유이자 지름길이다. 감사는 ‘나는 아직 부족하다’는 저항감을 줄여, 자애의 동력이 낭비 없이 발휘되도록 돕는다.
감사하지 않은데 감사하는 법: 근육을 깨우는 가장 어색한 운동
그렇다면, 감사한 마음이 전혀 들지 않을 때, 이 손전등을 어떻게 돌리고, 윤활유를 어떻게 주입할 수 있는가? 핵심은 ‘감사한 감정’을 느끼려고 애쓰지 않는 것이다. 대신, 오랫동안 쓰지 않아 굳어버린 ‘마음의 근육’을 깨우는, 가장 어색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첫 번째 단계: ‘감정’이 아닌 ‘사실’ 목록 만들기 가장 먼저 할 일은, ‘감사’라는 단어의 부담감을 내려놓는 것이다. 대신, 하루에 단 3분, 잠들기 전이나 아침에, 판단 없이 그저 ‘긍정적인 사실 목록’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마음속으로, 혹은 소리 내어, 담담하게 사실만을 읊는다.
“숨이 쉬어진다. (사실)” “오늘 누울 잠자리가 있다. (사실)” “저녁밥을 굶지 않았다. (사실)” “손가락이 모두 제자리에 붙어있다. (사실)” 이것은 감정의 강요가 아닌, 명료한 ‘관찰’의 행위다. 내가 가장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두 번째 단계: 신경이 길을 내는 과정 이 어색하고 기계적인 ‘사실 찾기’를 반복할 때, 우리의 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처음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다. 이것은 마치 헬스장에서 평생 써본 적 없는 등 근육을 깨우기 위해 낯선 기구를 움직여보는 것과 같다. ‘이게 운동이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어색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 행위를 반복하면, 우리의 뇌에서는 그 잊혀진 ‘긍정 회로’로 향하는 아주 희미한 신경 신호가 보내지기 시작한다. ‘문제 탐색 모드’에만 익숙했던 뇌가, ‘주어진 것 탐색 모드’라는 새로운 길을 더듬더듬 찾아가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 근육이 깨어나는 순간 그 신호가 반복되면, 신경의 길은 점점 더 넓고 단단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순간 굳어있던 ‘감사의 근육’이 미세하게나마 수축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아, 정말로 숨 쉴 수 있다는 게 다행이구나” 하는, 아주 작지만 진실된 감사의 파문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에 이런 근육이 있었구나’ 하고 그 존재를 비로소 감각하게 되는 순간이다.
네 번째 단계: 자연스러운 반응이 되다 그렇게 한번 깨어난 근육은, 나중에는 의식적으로 힘을 주려 하지 않아도, 비슷한 상황에서 저절로 반응하게 된다. 길을 걷다 불어오는 바람에도, 따뜻한 커피 한 잔에도, 자연스럽게 감사한 마음이 우러나오는 것이다. 마침내, 의식적인 ‘노력’이 ‘자연스러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결론: 감사는 감정이 아니라, 관점이다
나에게 ‘감사’가 와닿지 않았던 이유는, 그것을 내가 만들어내야 할 ‘결과물(감정)’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감사는 결과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선택하고 훈련하는 ‘과정(관점)’이었다.
그것은 내 주의력이라는 손전등을 어디에 비출 것인지, 매 순간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훈련이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잃어버린 것만을 찾아 헤맬 수도 있고, 그 어둠 속에서도 내 손에 쥐어진 작은 촛불 하나를 발견하고 그 빛에 감사할 수도 있다.
억지로 꽃을 피우려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어둠 속에서 촛불을 비추는 연습을 계속하다 보면, 밭을 잘 고르면 때가 되면 꽃이 피어나듯, 감사라는 이름의 꽃은 우리 마음 밭에 저절로, 그리고 풍성하게 피어날 것이다. 그것이 내가 발견한, 가장 현실적이고도 희망적인 감사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