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하는 나는, 명상을 하고있는 중인가?
멈출 수 없는 생각의 관성
명상을 시작하며 내가 마주했던 가장 큰 장벽, 그리고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많은 이들이 공감할 그 장벽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려는 뇌의 멈출 수 없는 속성이었다.
아무리 조용한 방에 홀로 앉아 있고, 모든 외부 자극을 차단해도, 내 머릿속은 단 한 순간도 고요하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감은 대로, 눈을 뜨면 뜨는 대로, 내 앞에 펼쳐진 모든 것은 예외 없이 정보가 되고 생각의 재료가 되었다. 나는 이내, 나의 뇌는 ‘소란스러움’이 기본값(Default)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이 현상 앞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모든 사유의 출발점이었다.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었다: “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곧 ‘쉴 새 없이 생각에 빠져있음’으로 자동 전환되는가?” 멍하니 있으려 하면 어느새 과거를 후회하고 있고, 잠시 쉬려 하면 어느새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마치 내 뇌가 ‘진공’을 견디지 못하는 것처럼, 비어있는 시간의 틈만 보이면 어떻게든 상상이나 망상, 혹은 온갖 잡념을 만들어내어 그 공간을 채우려 발버둥 치는 것 같았다.
질문 : 이것은 '본래 성질인가', 뇌의 ‘길들여진 관성’인가
나는 이 현상이 나의 ‘의지박약’ 문제라기보다는, 뇌가 가진 본래의 ‘기질(氣質)’이자 ‘관성(慣性)’에 가깝다는 가설을 세웠다. 즉, 뇌는 원래부터 가만히 있는 기관이 아니라, 끊임없이 정보를 처리하고 연결하며 시뮬레이션하도록 설계된 ‘생각하는 기계’라는 것이다.
이 가설이 맞다면, 해결책의 방향은 명확해진다. ‘의지를 더 강하게 가져야지’라는 낡은 처방은 의미가 없다. 문제의 원인이 뇌의 기질, 즉 하드웨어의 작동 방식에 있다면, 해결책 또한 그 수준에서 찾아야 한다. 바로 현대 뇌과학이 증명한 ‘신경가소성’의 원리를 활용하여, 뇌의 회로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소란스러운 관성’을 기본값으로 가진 뇌의 회로를, ‘고요한 중심으로 돌아오는’ 회로로 점진적으로 재건축하는 것. 이것이 내가 찾은 첫 번째 잠정적인 해답이었다.
나는 ‘왜 이 행동을 하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연습을 시작했다. 어떤 생각이나 충동이 올라올 때, 그 꼬리를 물고 질문을 계속하다 보면 그 끝에는 결국 두 가지 결론이 있었다. ‘도파민이라는 쾌감이 필요해서’ 혹은 ‘고요함이라는 상태가 두려워서’. 이 질문을 던지는 행위 자체가, 자동 반응의 고리를 끊는 훌륭한 ‘틈’을 만들어주었다.
궁극적인 질문: 생각의 흐름을 정말 ‘멈출’ 수 있는가?
하지만 이 모든 분석과 훈련의 과정 속에서도, 가장 근본적이고 불편한 질문 하나가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녔다.
“그렇다면, 뇌가 정보를 끊임없이 처리하고자 하는 이 거대한 흐름 자체를, 정말로 늦추거나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인가?”
명상의 최종 목표가 ‘아무 생각도 없는 완전한 고요’라면, 그것은 과연 인간에게 가능한 일일까? 생각을 멈추려고 노력하는 그 생각조차도 하나의 생각인데,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만약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나의 모든 수련은 결국 헛된 노력이 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 거대한 딜레마 앞에서 한동안 길을 잃었다.
새로운 해답: 멈춤이 아닌 ‘관계의 재설정’
나는 이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길고 긴 사유의 끝에서 얻을 수 있었다.
먼저, 뇌의 정보 처리와 생각의 흐름 자체를 인위적으로 ‘정지’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우리 뇌는 살아있는 생명체이지, 켜고 끌 수 있는 기계가 아니다. 생각을 억지로 멈추려는 시도는, 격렬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고, 결국 더 큰 소음과 혼란만을 야기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각의 흐름을 멈출 수는 없지만, 그 흐름과 ‘나의 관계’를 완전히 재설정할 수는 있다.
오케스트라의 모든 소리를 없앨 수는 없지만, 나는 시끄러운 연주자들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그저 하나의 악기 소리, 예를 들어 첼로의 낮고 부드러운 선율에만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관객’이 될 수 있다. 이때, 다른 악기들의 소리가 사라지는가? 아니다. 그 소리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한다. 하지만 더 이상 나를 압도하거나 괴롭히지 못하는 ‘배경 소음’이 될 뿐이다. 나의 의식은 이제 소음의 총합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단 하나의 선율 위에 머문다.
나의 명상 수련이 바로 이와 같다. 내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오케스트라)이 떠들고 있을 때, 나는 그것들을 없애려 싸우는 대신, 나의 주의를 가장 단순하고 순수한 악기인 ‘호흡’으로 부드럽게 가져온다.
결론: 소음 속에서 중심 잡기
이 새로운 관계 설정을 통해, 나는 생각의 ‘발생’ 자체는 막을 수 없지만, 그 생각이 나를 휩쓸고 가는 ‘힘’은 현저하게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생각과 나 사이에, 거대한 ‘공간’과 ‘여유’가 생겨났다.
나는 더 이상 생각이라는 소음에 휘둘리는 존재가 아니라, 그 소음 속에서도 나의 중심을 잡고, 내가 원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진정한 ‘멈춤’이란, 생각의 흐름을 끊어내는 중단(cessation)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겠다는 ‘고요한 중심’을 내 안에 되찾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