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적 행복의 방법론적 고찰
우리는 왜 행복에 이토록 서툰 것일까? 처음 아이폰을 손에 쥐었을 때의 그 설렘, 인생 최고의 파스타를 처음 맛보았을 때의 감격,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발견하고 하루 종일 반복해 듣던 그 기쁨. 그 모든 강렬했던 행복의 순간들은 왜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고,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리는 걸까?
우리는 종종 이것을 자신의 변덕이나 의지박약 탓으로 돌리지만, 사실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과학적인 뇌의 작동 방식 때문이다. 우리 뇌의 ‘보상예측오류(RPE)’ 시스템은, 예측 가능한 보상, 즉 익숙하고 반복적인 자극에 대해서는 더 이상 쾌락 호르몬인 도파민을 분비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뇌는 생존을 위해 ‘새로운 것’에만 민감하게 반응할 뿐, 익숙한 것은 ‘위협이 없는 안전한 것’으로 분류하고 곧 무시해버린다. 행복이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무뎌진 행복감을 되찾기 위해, 평생 더 새롭고, 더 강렬하고, 더 비싼 자극을 찾아 헤매야 하는 걸까? 나의 탐구는 이 질문 앞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나는 행복이 ‘더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것’에, 그리고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에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핵심은 바로 일상에 의도적인 ‘여백’을 만들고, 모든 것을 ‘비일상화’하는, 일종의 ‘희소성의 기술’이었다.
첫 번째 전략: 행동의 ‘비일상화’ - 의도적으로 여백 만들기
가장 직접적이고 실천하기 쉬운 방법은, 우리가 즐기는 행동의 ‘빈도’를 의도적으로 줄여 인위적인 ‘희소성’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 글에서 다루었던 ‘도파민 디톡스’의 원리를 일상에 적용하는 ‘미니멀리즘 디톡스’와 같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습관처럼 마시는 커피를 생각해보자. 첫 며칠간은 그 커피가 잠을 깨우고 기쁨을 주지만, 한 달쯤 지나면 그것은 더 이상 특별한 기쁨이 아니라 그저 잠을 쫓기 위한 ‘의식’이 되어버린다. 뇌가 ‘아침 커피’라는 자극에 완전히 적응하여, 더 이상 특별한 보상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RPE 시스템을 역이용할 수 있다. 만약 커피를 매일이 아닌, 이틀에 한 번, 혹은 주말에만 마시는 것으로 규칙을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날, 우리는 약간의 결핍과 기다림을 경험한다. 그리고 마침내 커피를 마시는 날이 왔을 때, 그 한 잔의 커피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강렬한 쾌감과 만족감을 선사한다. 의도적인 ‘여백’과 ‘희소성’이, 둔감해졌던 뇌의 보상 회로를 다시 민감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이 원리는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할 수 있다. 매일 밤 보던 유튜브 채널을 일주일에 세 번만 보는 것. 퇴근길에 매일 사 먹던 달콤한 빵을, 가장 피곤한 수요일에만 나에게 ‘보상’으로 허락하는 것. 이처럼 의도적으로 행동의 빈도를 줄여 ‘비일상화’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더 적은 자극으로 더 큰 행복을 느끼는, 매우 효율적인 삶을 설계할 수 있다.
처음엔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을 못하게 되었다'라는 괴로움이 찾아오기 마련이지만, 나중엔 일주일 치 행복의 총량은 오히려 증가했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참았기에 괴로웠지만, 참았기에 수확할 수 있는 열매는 더 달고 풍성해지는 것이다.
오해가 생길 수 있는 부분은, '참는 것이 좋다'라던지 '참아야 한다'가 아니다. 결국 내가 하게 될 행동은 하게 될 것이다. 다만, 그 행동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여백을 만들어줄 뿐이다.
두 번째 전략: 인식의 ‘비일상화’ - 당연함에 ‘운’을 입히는 기술
행동의 빈도를 조절하는 것이 외부적인 전략이라면, 더 근본적이고 강력한 것은 ‘인식’ 자체를 바꾸는 내면의 전략이다. 이것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들을, ‘비일상적’인 것으로 재인식하는 명상적 훈련이다. 그 핵심 기술은, 모든 당연한 사실 앞에 “운이 좋게도”라는 마법의 단어를 붙여보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밥을 먹는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다. 하지만 여기에 관점을 조금만 바꾸어 “운이 좋게도, 나는 오늘 굶주리지 않았다”라고 인식하는 순간, 밥을 먹는 행위는 생존을 위한 의무가 아니라, 엄청난 행운이자 감사의 대상이 된다. 전 세계 인구의 상당수가 여전히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숨을 쉬고 있다. 이보다 더 당연한 일이 있을까? 하지만 감기에 걸려 두 코가 꽉 막혔던 고통스러운 경험을 떠올려보자. 그때 우리는 편안한 호흡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절실히 깨닫는다. 지금, “운이 좋게도, 나의 두 코는 막히지 않고 시원하게 뚫려있다”고 인식하는 순간, 한 번의 들숨과 날숨이 경이로운 감각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지금 안전한 공간에 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나는 오늘 밤 비바람과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안전한 보금자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 평범한 방은 더없이 아늑하고 소중한 공간이 된다.
이 ‘인식의 비일상화’ 훈련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삶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들(음식, 호흡, 안전, 건강)이 사실은 결코 당연하지 않은, 수많은 조건과 행운이 맞아떨어져야만 누릴 수 있는 기적과 같은 일임을 깨닫게 한다.
이 훈련은 우리의 행복 기준점을 극적으로 낮춘다. 더 이상 특별한 이벤트나 값비싼 물건이 없어도, 그저 살아 숨 쉬고, 굶지 않고, 안전하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깊은 충만감과 감사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세로토닌 프로그램이 선사하는, 가장 안정적이고 깊은 형태의 행복이다.
결론: 행복은 '만들어낼 수도 있고', ‘발견할수도 있는 능력’이다
우리는 행복을 찾아 너무나 멀리, 너무나 높은 곳만 바라보고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비일상화’ 전략은 행복이 저 멀리 있는 무언가를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의 가치를 ‘발견’하는 능력에 달려있음을 알려준다.
‘행동의 비일상화’는 의도적인 여백을 통해, 평범한 즐거움에 대한 우리의 감도를 예민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인식의 비일상화’는 당연함의 무감각한 껍질을 깨고, 존재 자체의 소중함을 발견하게 하는 기술이다.
이 두 가지 기술을 통해, 우리는 더 이상 쾌락의 역치가 끝없이 올라가는 소모적인 경주를 멈출 수 있다. 행복은 좇아야 할 사냥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 속에서, 그 가치를 새롭게 발견해내는 즐거운 탐험이다. 그리고 그 탐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을 깨어있는 의식으로 바라보는 명상적인 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