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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한복이 Apr 23. 2023

엄마, 왜 언니 노래만 예뻐?


노래 만들기는 사과가 세 살 때부터 하던 놀이이다.

자기 마음대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것이다.

처음에는 잠자리에 나란히 누워 잠들기 전에 너 한 곡, 나 한곡 불렀다. 말이 노래이지 거의 음을 붙여 대화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던 것이 사과가 점점 크면서 가사도 제법 생각해서 지어내고 음도 그럴듯하게 붙였다. 그렇게 한곡 두곡 녹음을 하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심쿵이도 함께하는 놀이가 되었다.


이제 5살인 심쿵이의 노래는 8살 언니의 그것보다 박자도 음도 가사도 당연히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내용이 너무 예뻐서 녹음을 빼놓지 않고 해두려고 하는데 심쿵이는 언제나 자기가 만든 노래가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새로 만들어내는 능력은 아직 서툴지언정 듣기 능력은 좋은 것인지 언니의 노래와 자신의 노래를 끊임없이 비교분석해 가며 듣는다.


오늘도 각자 노래를 준비했다며 자기 전에 녹음을 해줄 것을 부탁했다.

진짜 준비를 한 것인지 즉흥적인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놀이가 나에게도 꽤 즐거운 것이라 흔쾌히 녹음버튼을 눌렀다.



예쁜 꽃의 요정 - 심쿵
노랫소리 바람을 따라 예쁜 하늘 바라보지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면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는 요정이 있을 거야


이건 꿈이라고 - 사과
꿈도 꾸지 않았지만 이건 꿈이라고
하늘에서 요정이 나를 향해 마법 부렸지
나도 그 마법을 따라 요정으로 변신해서
요정이랑 하늘 높이 날아갔지



와~ 가사가 너무 예쁘다♡
오늘은 둘 다 요정이 나오는 노래네?
응. 엄마를 생각하면서 만들어봤어.
맞아. 엄마가 요정이었을 때를 생각하면서 불러본 거야.


잊을만하면 꺼내는 엄마의 소싯적 이야기에 매번 말문이 막히도록 당황스럽지만 이렇게 예쁜 노랫말을 나오게 했으니 아이들을 속일만했는지도?ㅋㅋㅋㅋ

어쨌든 내가 가사에 빠져서 듣고 또 듣는 중에 아이들의 대화가 한창 이어졌다.


아름다운 세상이 우리나라야?
아니야 언니. 꽃의 나라야, 엄마가 살던 곳.
우리 엄마가 꽃의 요정이었으니까.
언니는 왜 꿈이야?
엄마는 꿈이 아니라 진짜 요정이었는데, 왜야?
엄마가 꿈이었다는 게 아니야. 두 가지 뜻이 있어.

일 번째는(첫 번째) 엄마는 진짜 요정이었지만 그걸 우리는 말하면 안 되잖아. 다른 사람들이 알면 안 되니까.
그래서 꿈이라고 말하는 거야. 꿈이었다고 하면 혹시 다른 사람이 들어도 괜찮을 거 같아서야.

그리고 이 번째는(두 번째) 나중에 꼭 엄마랑 같이 하늘을 날고 싶거든.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고 '꿈속에서처럼'이어야 해.
사람들한테 이건 꿈이라고 말할 거니까.


꿈보다 해몽이라고 노랫말도 예쁜데 내용은 또 얼마나 고운지.


각자 노래에 대한 설명이 끝이 나고 자기 전에 딱 한 번만 더 듣고 자자고 해서 마지막으로 재생을 했다.

원작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인지 어쩐지 더 마음에 와닿았다. 겨우 30초짜리 노래를 듣고 이런 마음이라니♡

그렇게 잠깐 저릿한 심장을 즐기고 있는데 심쿵이가 내 팔을 잡아당기더니 귀에 대고 들릴 듯 말 듯 아련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엄마... 왜 언니노래...@&$#% 야?
응? 뭐라고 했어? 잘 안 들려 다시 말해봐.


엄마
왜 언니는 노래가 예뻐?
목소리랑 노래도 말이야.
나도 예쁘게 불렀는데 언니 것만 예쁘게 들려...
왜야?

언니는 이가 다 빠져서 그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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