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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한복이 Jun 14. 2023

오늘 아기가 되는거 어때?


12시 54분, 어김없이 전화가 왔다. 사과다.

핸드폰을 사준 뒤로 하루도 빠짐없이 수업이 끝나자마자 바로 걸려오는 전화.

사과는 엄마가 바로 옆에 있는 거 마냥 별거 아닌 얘기도 다 전화를 걸어 이야기한다. 통화시간이 10초도 되지 않을 만큼 자기 말만 하고 끊기도 한다.


먹고 싶은 간식이 있으니 사놓으라고 시키기도 하고, 문구점 앞에 어떤 개가 있는데 진짜 귀여운 옷을 입고 있다거나, 무인 과자점에 왔는데 동전을 몇 개 넣어야 되냐고도 물어보고, 친구에게 카톡이 와서 답장하고 싶은데 쌍시옷을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도 묻는다.


아직은 어려서인지 자기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은 엄마에게 먼저 들려준다. 귀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바쁠 땐 귀찮을 때도 있지만 늘 같은 톤으로 전화를 받으려 애쓴다. 티를 내면 나에게 전화하는 횟수가 줄어들까 봐. 아이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듣는 게 즐겁다.


무엇보다 기계를 타고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는 너무 아기 같고 사랑스럽다.



엄마 마쳤어, 이제 피아노학원 가.
응, 다녀와~
엄마, 나 마치면 말이야 엄마가 아기가 되는 거 어때?
무슨 말이야?
아~ 엄마가 내 친구가 되어달라고.
놀이터에서 놀고 싶은데 같이 놀 친구가 없거든.
엄마가 친구가 돼서 나랑 같이 노는 거야.
친구들은 다 어디 갔는데?
몰라. 물어봤는데 오늘은 다 시간이 안된대.
다 바쁜 날인가 보네.
알겠어, 학원 끝나고 전화해, 같이 놀자!
고마워, 엄마.


[뚝]


날도 덥고 땡볕에 나가 있을 생각 하니 너무 귀찮은데 이런 식으로 부탁을 하면 안 들어줄 수가 없다.

마음이 몽글몽글하기 시작하는데 다시 벨이 울렸다.


사과야 왜~?
아~ 나왔는데 실내화를 안 갈아 신고 와버렸지 뭐야.


[뚝]...


그... 래........



한 시간 뒤 약속한 놀이터로 나갔더니 사과가 두 팔 벌려 나를 향해 뛰어왔다.


엄마 그네에 앉아봐. 내가 바이킹처럼 태워줄게.
너무 높이 가면 엄마 어지러운데


그러거나 말거나 작정한 사과는 나를 재촉했다.

나를 앉히고 자기는 일어서서 다리를 굴렸다. 그네는 점점 높이 올라갔다.


윽.. 사과야. 엄마 아랫배가 간질간질해. 이제 그만해도 될 거 같아.
아직 한참 멀었어 엄마.
저기 하늘까지 올라갈 거니까 꽉 잡아야 돼!
악!! 이제 진짜 엄마 무서워. 너무 높은 거 같아.
아직 조금 더 남았는데... 엄마가 무섭다니까 어쩔 수 없지. 그만할게.
사과야, 그대로 엄마 다리에 앉아 봐.
이제 엄마가 태워줄게.


내 다리 위에 사과를 앉히고는 박자 맞춰 두 다리로 바닥을 힘껏 찼다.

놀이터 나오기 참 귀찮았는데 아이를 안고 그네를 탈 때 불어오는 바람이 나쁘지 않았다.


와~ 신난다.  친구가 태워주는 것보다 높진 않지만 엄마가 태워주니까 너무 좋다. 편안하고..
엄마도 좋지?
응. 사과 아기 때 요렇게 태워주고는 처음이네.
엄마도 좋아.
그래 그럼, 이제 멈춰줘.
왜애애~ 좋은데. 조금만 더 이렇게 있자~
이제 나 혼자 탈 거야. 높이 올라가야 더 시원하단 말이야. 빨리 멈춰줘~! 킥킥.


그네에서 내려와 혼자 신나게 그네를 타는 아이를 봤다.

아이를 그네에 세우고 다리 굴리는 방법을 알려준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엄마가 밀어주지 않아도 잘 타네.


아이들은 볼 때마다 훌쩍 자라 있다.

그걸 느끼는 순간마다 혹시 내가 뭘 놓쳐버린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아이들이 더 어려 하루종일 살을 맞대고 있을 때는 시간도 잘 안 가는 것 같더니, 내 손이 필요한 일들이 점점 줄어듦에 따라 흐르는 시간을 따라가는 것조차 버거울 때가 있다. 나도 모르게 지금을 잊어버릴 때도 있다.

아이가 크는 건 언제나 아쉽지만 오늘은 유독 크게 와닿았던 순간이었다. 네가 이만큼 자랐다는 걸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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