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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한복이 Jan 05. 2023

아프지 않고는 어른이 될 수 없는 걸까


  우리 집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아이가 있다.

  얼른 어른이 되어서 엄마처럼 커피랑 술을 마셔보고 싶단다.

  커피 향이 너무 향기로와서 무슨 맛일지 너무 궁금하다며 코로 마시다시피 하고,

  우리가 와인을 마실 때면 주스를 부은 와인잔을 손가락으로 제법 야무지게 잡고서 잔을 부딪혀가며 한 모금씩 음미한다.


  외출할 때는 내 옆에 앉아 선팩트를 얼굴에 꼼꼼하게 두드리고, 엄마처럼 빨리 찌찌가 튀어(?) 나와서 브래지어도 하고 싶고 얼른 키 큰 어른이 되어서 예쁜 옷을 입고 뾰족구두가 신고 싶다고 말하는 딸을 보니 나도 저랬나 싶다.

  그런 아이가 하루하루 자라면서 자기만의 고뇌가 시작되었다.


있잖아, 어른이 되고 싶기도 한데 아니기도 해.
 내가 어른되면 엄마는 늙잖아.
 엄마, 외할머니도 엄마가 어른이 되니까 돌아가신 거지?
 나는 엄마가 늙는 게 싫어.
 어른이 되고 싶기도 한데 안되고 싶기도 해.
 어떻게 해야 해?


  너는 이리도 일찍 알게 된 걸 엄마는 왜 그렇게 늦게 깨달았을까.

  천지를 모르고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기도를 했었다.

  내가 성숙해져 가는 만큼 우리 엄마와 아빠가 늙어갈 거란 생각까지는 하지도 못한 채로 그늘에서 벗어날 날만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 번개 같은 인생.


  12월 31일은 아빠의 49제였다.

  스님의 기도 중에 저 말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지긋지긋했던 나의 유년기는 어느새 기억이 흐릿할 만큼 멀어졌고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하기만 했던 사춘기시절의 그때 우리 엄마 나이에 다다랐다.

  우리 언니들이 벌써 을 바라보고 있고, 안아주고 기저귀 갈아주었던 조카들이 내 키를 넘어섰다.

  곧 아들은 군대를 간다 할 것이고 딸들은 예쁜 옷 입고 데이트도 하겠지.

  그리고 나는 우리 엄마만큼 아빠만큼 나이가 들어가겠지.

  어릴 때는 까마득하기만 멀고 먼 미래였는데 이제야 실감이 다.

  정말 번개같이 지나버린 시간이다.





엄마가 늙어서 멀리 떠날까 봐 많이 걱정했구나.
사과가 어른이 된다고 해서 엄마가 떠나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그 걱정을 너무 크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사람이 늙는 건 당연한 거잖아.


어른이 된다는 건 꽤나 설레는 일이야.

할 수 없었던 걸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엄청 신나더라.

그만큼 책임이 따르기도 하지만 어른이라서 좋은 것도 많을 거야. 


생각보다 아프기는 , 사랑하는 사람이 늙어가는 걸 지켜봐야 하는 건. 

거울을 보면서도 자기는 잘 모르더라, 자기가 늙었다는 걸.

내 새끼 많이 큰 것만 알고 자기가 늙는 건 모르더라.

그걸 대신 봐주는 거야.

마음이 아프기도 한데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으니까.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거 같아.

단순히 나이만 먹는 게 아니라 마음도 같이 먹어야 하는 거.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보고, 하고 싶지 않은 것도 해보고

그리고 겪고 싶지 않은 일도 겪어봐야 진짜 어른이 되는 거 같아. 


다 큰 거 같았는데 주저앉게 되고, 진짜 어른인 거 같았는데 속절없이 가슴이 무너져버리기도 하고, 이제야 괜찮으려나 했는데 여전히 헤매고 밤을 지새우기도 하거든.

마치 아프지 않고서는 어른이 될 수 없는 것처럼.


그래도 조금씩은 무뎌지는 거 같아.

싫었던 일이 예전만큼 그렇게 싫지만은 않은 걸 보면 말이야.

근데 너희는 그걸 너무 일찍 알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 천천히 어른이 돼도 되니까.


엄마는 벌써 20년 전에 어른나이가 되었는데 이제야 겨우 어른이 되어가는 거 같아. 중요한 걸 놓치고 산 게 많아서 조금은 후회하는 어른. 그걸 알아버리고 말았네.

그래서 말인데,

엄마도 엄마가 늙는 걸 눈치채지 못할지도 몰라.

너희가 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말이야.

그걸 놓치지 않기 위해 내 모습을 못 볼지도 몰라.

그런 엄마를 대신해 너희가 엄마의 모습을 지켜봐 주면서 속이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해주면 좋겠다.

아파하지는 고 당연히 겪어야 하는 것을 겪으면서 흘러가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보내주면 좋겠어.


너무 일방적인 바람일까?

그저 번개가 치고 지나갔을 때 최소한 엄마와 같은 것을 두고 후회하지는 않았으면 하고.

다른 건 너희가 알아서 다 잘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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