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하나 없는 하루: 2030 직장인의 생존 매뉴얼
우리 빌딩 엘리베이터가 유난히 속도가 늦다.
특히 출근 시간인 8시 55분엔 속이 터진다. 이 시간엔 각자 사무실에 올라가는 직원이 전부다. 드디어 15층에서 내려온 엘리베이터 문이 쓸데없이 예의를 갖춰 슬로하게 열린다. 기다리는 직원들은 문을 부수고라도 엘리베이터에 올라탈 기세다.
어! 엘리베이터 구석에 사람이 서 있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발을 떼다 멈춘다.
그녀는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열심히 엄지손가락을 누른다. SNS 다. 엄지타자 속도가 빠른 만큼 발걸음은 느리다. 사람은 본시 멀티테스크가 안된다. 기다리는 사람들의 인내심이 폭발한다. 성질 급한 임원 한 분이 아직 내리고 있는 중인 그녀를 스치고 엘리베이터에 승차한다. 나머지 사람들도 우르르 슬로모션인 그녀를 곁을 지나 승차한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쯤 그녀는 마지막 승차하는 영업팀 직원과 어깨를 부딪힌다.
그녀는 그제야 폰에서 눈을 뗀다.
그녀의 얼굴을 사람들의 예의 없음에 심하게 일그러지고 있다. 목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그녀의 입에서는 육두문자를 내뱉고 있었다. 그녀는 결코 엘리베이터 예의 없는 사람들을 용서할 생각이 없다.
“이 사람들 뭐지 왜 이렇게 예의가 없어!, 내리는 사람이 다 내리고 난 다음에 승차하는 것은 기본 아닌가?”
나는 미쳐 엘리베이터에 타지 못한 낙오자로 남아 이 광경을 한 동작도 빠짐없이 지켜봤다. 열심히 보려고 했던 게 아니다.
그녀의 시간이 슬로 모션으로 상영하고 있었고 나는 의도치 않은 관객이었을 뿐이었다.
하루 24시간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진다. 그 시간은 사람마다 다른 속도로 흐른다. 일론 머스크는 하루 평균 11~17시간 일한다고 한다. 머스크는 주말에도 일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경쟁자를 따돌리는데 주말근무가 최고의 무기라 생각한다. 그의 시간은 우주선만큼이나 초고속으로 흐르고 있다. 그의 24시간을 A4용지에 점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점과 점이 촘촘해서 선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나의 시간은 어떤 가. 1시간 회의에 실제 안건과 의미 있는 결론을 위한 시간은 채 10분에 지나지 않는다. 오전회의가 끝나면 벌써 방전이다. 하루 종일 빈둥빈둥 거리며 수동적인 업무를 처리하다가 퇴근한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24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두 시간도 채우지 못한다. 어떤 날은 아무것도 채우지 못한 채 하루를 흘려보낸다. 그런 날의 A4용지에는 단 하나의 점도 찍혀 있지 않다.
같은 공간인 사무실에서 직원들을 유심히 보면, 직원마다의 다르게 흐르는 시간의 속도를 느낀다. 초고속 시간을 보내는 직원은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다른 부서 직원을 만나고, 자료를 분석한다. 시간의 밀도가 높다. 꽉 채워진 그의 시간은 에너지 그 자체다. 그 에너지로 동료를 돕고, 부서에 활력이 돈다. 누구보다 그 자신의 삶이 꽉 채워진다. 그에게는 절망하거나, 다른 사람을 욕할 틈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