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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직장의 신 19화

신입·승진·퇴직, 10년을 1페이지로 압축하면.

당신이 모르게 회사가 훔쳐간 ‘진짜 삶의 시간

by 한금택

신입사원의 첫 출근은 누구나 알아 볼 수 있다. 첫날엔 알지도 못하는 선배들의 호출을 받는다. 격려와 잘하라는 충고를 수도 없이 듣는다. 사무실 구조를 파악하고, 누가 자신의 직속 상사인지, 인사과는 어디에 있는지 정신없이 받아 들이고 익힌다. 프린트 하는 방법부터 시작이다. 조직의 분위기에 적응 해야 한다.


첫 월급을 받고 이제 동료들과 선배들의 얼굴을 알고 내가 지금 무슨일을 하고 있는 것 인지 파악해 간다. 적응 한 것이다. 반복된 업무와 직장생활의 루틴이 생기면 마음이 편하다. 마음의 평화는 예고 없이 깨진다. 부서장이 바뀌면 그날부터 새롭다. 새로운 프로젝트와 새로운 규칙이 생긴다. 다시 적응하고, 부서장의 업무스타일을 익힌다. 3년쯤 업무에 잘 적응했다면 승진해 있을 것이다. 승진은 달콤하다. 월급도 오르고, 후배도 생긴다. ~~씨 에서 직함이 생긴다. 대리, 과장, 차장이라는 직급이 주는 위세는 내 존재 의 무게 만큼이나 무겁다. 나와 직급이 하나라는 착각을 하면서 이 직급을 지키기 위해 조직의 목표와 나의 목표를 일치 시키게 된다. 목표가 생기면 집중하게 된다.

회사의 시간은 집중한 만큼의 속도로 흐른다. 월요회의, 주간회의, 월간회의를 하면 한달이 사라진다. 워크샵, 평가, 승진발표가 끝나면 한해가 간다. 회사 시간은 스케쥴 대로 명확히 흐른다. 회사시간은 1년단위로 흐르고 한 두번 그 속에서 달리다 보면 열번 스므번도 금방이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공간에서, 정해진 일을 한다. 백번 인들 어렵지 않다.


그러다 보면 내 차례가 온다. 퇴직해야 하는 시간이 온다. 밀려나지 않기 위해 몸 부림 쳐도 소용없다. 내가 그러했듯 후배들도 내 등을 떠민다. 어딘가 가야만 한다.


내가 회사생활을 진심을 다해 집중했다면, 회사를 떠났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퇴직하는 그날까지 직원의 역할과 기능에 충실했다면, 또 다른 세상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회사안에서 우등생이었다면, 회사밖에서는 딱 그만큼 열등생이다. 시간의 분배를 회사에만 했을 테니 말이다.

회사밖으로 밀려나, 새로운 세상에서 나는 프린터 사용법부터 익혔던 신입사원과 다름이 없다. 한가지 문제가 있다. 직급은 신입사원인데, 물리적인 나이는 그 일을 처음부터 다시하기에는 감당할 수 없다.


기쁘고 설레야 하는 새로운 삶이 많이 당황스럽다. 아무런 대책이 없다. 적응이 불가능 하다.

나는 왜 회사안에서의 시간에만 목을 메었는가. 회사 밖의 시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고 지냈다. 회사밖의 시간은 더 가혹하고 빠르게 흐른 다는 사실을 회사에서 나와서야 깨닫는다. 적응 할 수 없는 나이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합니다. 트럼프가 관세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제롬파월 미연준 의장이 현제의 근원물가지수를 평가하고 아직 이자율을 내리지 않기로 했다 합니다. 세상은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습니다.

회사 안에서 폭풍우를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더구나 그 폭풍우에 스스로 적응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자의로, 또는 타의로 폭풍우 속에 온몸으로 뛰어 들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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