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단한가지 변치 않는 믿음을 한가지씩 품 안에 안고 살아간다. 그 믿음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못한다. 돌 하루방 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미신을 지금도 많은 사람은 믿는 것 같다. 구멍이 숭숭나고 거칠거칠한 돌하루방 코가 반질반질해 진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내가 그토록 존경했던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으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진정 이 시대를 바꾼 천재였다. 췌장암을 처음 진단 받았을 때 병원에서 초기 수술치료를 진행 했다면 완치될 확률이 90% 이상이었다고 한다. 그는 어처구니 없게도 병원치료를 거부한채 9개월 동안이나 식이요법과 침술에 의존했다. 더 이상 치료할 수 없을 만큼 암이 전이된 후 병원을 찾았지만 이미 늦었다. 잘못된 믿음은 천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은 흔하다. 절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대통령이 사건에 휘말려 힘없이 물러나는 일이 반복된다. 어떤 이는 탄핵을 당해 감옥에 끌려가기도 한다. 어제까지 존경과 신뢰를 받던 지도자가 하루아침에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것들은 언제든 뒤집힌다. 지식, 상식, 질서, 정의, 관습. 그 모든 것이 영원히 옳은 법칙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식에 의지하고, 전문가에 의지한채 그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움켜쥔 채, 끝내 그것을 내려놓지 못하고 삶을 마친다.
나는 우리가 ‘돈’에 대해 갖고 있는 믿음부터 의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현금을 쥐고 있으면 안정감을 느낀다. 은행 통장에 찍히는 숫자를 보며 든든함을 얻는다. 하지만 그 돈은 인플레이션이라는 이름의 서서히 진행되는 도둑 앞에서 조금씩 가치를 잃는다.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줄어드는 현상은 분명 눈에 보이는데, 정작 사람들은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다. 현금을 쌓아두는 것이 부의 안전망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믿음일 뿐이다. 특히 직장인들은 매달 정기적으로 입금되는 급여에 안정감을 느낀다. 연봉이 높은 전문직이라면 더더욱 돈에 대한 믿음이 강력하다. 언제까지나 현금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돈은 인플레이션에 의해 서서히 구매력을 잃는다. 지금의 1만원권은 10년 후에도 1만원이라는 숫자로 표시 되지만, 지금 1만원으로 살 수 있는 상품을 10년 후에는 결코 살수 없게 된다. 인플레이션 현상은 정부에서 돈을 찍어 내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 한해 추경으로 푼 돈이 30조5000억원에 달한다. 앞으로 더 많은 돈을 풀어 민생안정을 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정부가 돈을 시중에 풀면 그것은 서서히 물가상승으로 이어진다. 결국 국민이 고물가에 대한 부담을 모두 떠 안아야 한다. 오르는 물가는 돈의 구매력을 떨어트리는 효과로 나타난다. 우리가 열심히 벌어 저축한 돈이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인플레이션이라는 도둑 앞에 돈은 구매력을 잃는다.
그뿐 아니라 정부가 발행한 돈은 10년물, 또는 30년물 채권으로부터 나온다. 채권은 우리 국민이 세금으로 갚아야 할 빚이다. 지금 그 돈을 받아 쓰는 사람들은 국민 모두 이지만, 그 돈을 세금으로 갚아야 할 사람들은 10년후 , 30년후 경제활동을 하는 성인들이다. 지금 청소년들, 또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이 그 빚을 떠안아야 한다.
돈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못하면, 아무리 열심히 월급을 모아도 인플레이션이라는 도둑에게 대부분을 털리고 말 것이다.
부동산에 대한 믿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지역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익숙하기 때문이다. 광명에 오랫동안 살아온 내 경우도 그렇다. 광명 구시가지에 살면서 더 좋은 곳에 살기를 원했다. 그래서 광명사거리 방향으로 이사를 했다. 7호선 역에 가깝고, 광명시장도 있어서 살기 편했다. 여러 번 이사를 한 끝에 최고의 주거지였다. 가끔 슬리퍼를 끌고 사거리 롯데시네마에 가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내 인생에 가장 비싸고, 가장 좋은 집이었다. 5년이 흐르는 동안 내 집은 1억가까이 올랐다. 엄청난 수익이다. 행복했다. 이사한 아파트가 나에게는 최고의 투자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철산역에 사는 친구를 만났다. 그가 살던 아파트는 5년동안 재건축으로 12억짜리 신축아파트가 되어 있었다. 광명사거리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돈을 모아 철산 센트럴푸르지오나, 래미안자이, 철산자이헤리티지로 이사가고 싶어 한다. 광명에서 입지가 제일 좋다. 신축이다. 학군지다. 시청과 법원 세무서와 가까이 있다. 하지만 24억7천만원짜리 마포래미안푸르지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대부분은 자기 거주지라는 작은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속에서 비교하고 그 속에서 가장 좋은 것이 최고 라 믿는다. 잠실주공5단지가 올해 3월에 35억원이었고, 7월에 40억에 거래됐으며, 9월 현재 45억원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최고라는 믿음을 가지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
의사가 아님에도 의사가운을 걸치면 우리는 그가 말하는 대부분의 것들을 믿지 않는가. 연애인이 보험 광고에 출연하면 보험전문인이 아님에도 그가 말하는 혜택을 그대로 받아 들인다. 권위를 가진 학자가 쓴 책, 모두가 존경하는 사람의 주장을 우리는 너무 쉽게 믿어 버린다. 그것을 진리로 착각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깨닫는다. 그토록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생각은 “나는 알고 있다”는 착각이다.
돈도, 부동산도, 지식도, 심지어 존경하는 선배, 부모님 조차도 절대적인 것은 없다. 내가 붙들고 있는 그것이 진리라고 믿는 순간, 나는 이미 세상에서 가장 큰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믿는 것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무너질 수 있다는 겸허한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발견하고, 시각을 달리하며, 변해가는 진리를 따라잡으려 노력하는 것.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더 많은 것을 붙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