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러들어온 돌과 박힌 돌, 나는 어떻게 선택했는가?
나는 직장생활을 오래 했다. 나는 한 직장에서 25년째 장기 근속 중이다.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직장은 결코 평화롭지 않다. 직장은 수많은 사람들이 얽혀 각자의 이해관계를 풀어내려 애쓰는 곳이다. 그 안에서 승진을 꿈꾸고, 연봉을 올리려 협작질을 일삼는 곳이기도 하다. 자아실현? 이제는 교과서에서도 찾을 수 없는 단어가 되었다. 직장은 거대한 톱니바퀴이고, 직원은 각자 크기의 톱니바퀴를 가지고 회사에 맞춰 돌아갈 뿐이다. 우리는 조직이란 기계 안에서 서로 맞물려 돌아가며, 소모품처럼 쉽게 교체된다. 그래서 나는 후배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직장에서 성공한다는 건 무엇일까?”
직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힘겨루기, 태움 등을 경험하면서 그 성공이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우리 회사는 회계 전문 서비스를 하며, 처음엔 직원 10명으로 시작한 작은 조직이었다. 동료들끼리 의기 투합해서 열심히 했다. 사무실 바닥에 박스를 깔고 잠을 자며 일했다. 그때는 서로 의형제들 같이 친했다.시장이 우리의 노력을 알아 주었다. 4년쯤 지나니 고객이 세배 이상 늘었다. 감격스러웠던 것은 세계적인 외국계 기업과 서비스 계약을 맺는 순간이었다. 문제는 영어였다. 당시 우리회사에는 모두 회계전문가였지, 영어를 하는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사장님은 급히 함께 일할 직원을 구하러 다녔다. 회계를 하면서 영어까지 잘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결국 사장님은 전략을 바꿨다. 영어를 잘하는 직원을 뽑아서 회계를 가르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들어온 사람이 바로 이과장이었다. 그는 회계 지식은 얕았지만 영어 실력은 뛰어났다. 네이티브처럼 자연스럽게 영어를 하는 것을 보고 다들 신기해 했다.
그날부터 이과장은 중요한 외국인 고객 미팅에 동행했고, 영어로 PT를 진행했다. 영문 계약서를 검토할 때도 그는 빠짐없이 참석했다. 심지어 회계 직원들이 고객에게 보낼 보고서 이메일조차 이과장을 거쳐야 했다. 그의 역량과 업무범위는 날로 확장되었다. 자연스럽게 회사 안에는 묘한 긴장감이 피어 올랐다. 직급은 과장인데, 중요한 외국 고객과 연결되는 거의 유일한 창구였기 때문이다.
사건은 곧 터졌다. 회사 창립멤버나 다름없는 최부장은 회계통이었다. 그는 많은 한국 고객을 상대로 꼼꼼하고 정확하다는 칭찬을 받았다. 하지만 영어는 까막눈이었다. 외국계 고객사에 회계보고서를 보내기 위해서는 두번의 절차가 필요했다. 보고서의 실제 내용은 최부장이 작성했지만, 그 내용을 영어로 번역하는 것은 이과장이 맡았다. 회계 전문 용어를 잘 모르는 이과장은 그때마다 최부장에게 다시 되물어야 했다. 결국 사고가 터졌다. 문제 소지가 있는 까다로운 보고서 를 보낼 때 일이다. 최부장은 평소보다 난이도 높은 회계용어와 기법을 메일에 썼다. 이 과장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문장 한문장을 일일이 최부장에게 왜 이런 표현을 했는지 물어야 했다. 질문과 대답이 반복되면서 서로의 목소리 톤이 올라가고 있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마치 최부장이 상급자에게 보고서를 승인 받는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최부장은 결국 폭발했다. 그는 억울했고, 이과장이 미웠다. 사장을 찾아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까지 요구했다. 사장님은 그럭저럭 어르고 달래어 그 상황을 무마했지만 둘 사이 감정은 더 깊어졌다. 긴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사건건 둘을 부딪쳤다. 누가 이겼을까?
결국 최부장은 한국말로 한국기업만 상대하는 한국세무법인으로 이직하고 말았다.
불행히도 내자리가 최부장 바로 옆자리였다. 최부장의 짜증과, 울분, 억울함을 피부로, 그의 헐떡이는 숨소리로 모두 느껴야만 했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싸움이 과격해지고, 나는 궁금했다. 과연 누가 이길까? 결론은 명확했다. 영어가 이겼다. 회사는 감정이 아니라 시장을 선택한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 이익을 선택한 것이다. 사장님이 누구를 더 좋아하고 싫어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누구가 더 오랫동안, 더 회사에 충성했는지는 아무런 기준이 되지 않았다. 회사는 영어를 통해 돈을 벌어야 했고, 이과장은 잘드는 칼이였을 뿐이다. 최부장은 스스로 자존심을 낮추고 이과장과 협업을 하던가, 영어를 배우든가 선택했어야 했다. 그는 자존심과 회사에 대한 잘못된 배신감으로 영어를 배우지도 않았고, 이과장과 협력하지도 않았다. 그는 스스로 패배자가 되어 회사를 떠난 셈이었다. 나는 최부장이 퇴사하는 날 삼육어학원 기초회화반 새벽반에 등록했다. 감정이 아니라 현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많은 이들은 승진과 돈을 직장에서의 성공이라 말한다. 맞다. 승진은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가져다주고, 돈은 생활의 여유와 선택권을 넓혀준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직장에서 성공했다는 건 ‘내가 없으면 조직이 굴러가지 않는다’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는 것이야말로 직장에서의 진짜 성공이다.
부끄럽지만 내가 걸어온 길을 말한다면, 나는 보안 관리자로 25년을 버텨왔다. 보안 업무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시스템, 개발, 코드, 서버, 네트워크, 애플리케이션, 모든 것을 두루 알아야 한다. 작은 구멍 하나로도 회사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안 담당자는 반드시 IT전체, 조직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관점과 일은 힘들고 부담스럽다. 조직을 가장 안전하게 하려면, IT장비와 보안에 돈을 쏟아 부으면 된다. 하지만 회사는 항상 돈이 부족하다. 그 어려운 조건하에서 가장 마지노선을 맞춰야 한다.직원이지만 회사와 반대편에 서야 했다. 회사를 위하지만 회사의 비용을 싸워서 확보해야 했다. 바로 그렇기에 누구도 이런 일을 쉽게 대체할 수 없다. 이 점이 나를 지켜주었다.
나는 한 직장에서 25년째 장기 근속 중이다. 그 긴 시간 동안 깨달은 것은 단 하나다. 직장은 결코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직장에서 나의 생존법을 찾았다. 바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이것이다. 직장은 냉혹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조직이 절대로 버릴 수 없는 사람이 되어라. 그때 비로소 직장 내 성공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승진이나 연봉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나 자신을 지켜내는 유일한 길이다.
대체불가능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단지 직장에서의 성공뿐 아니라 직장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세상에서 대체불가능한 사람이 되기란 좁은 직장에서보다 훨씬 어렵다. 사실 불가능하다. 하지만 분명 나만의 무기 하나쯤은 만들 수 있다. 그것이 유튜브이든, 영상 편집이든, 글이든 세상 모든 사람이 이미 하고 있다고 해서 다 똑같은 모양, 똑같은 색은 아니다. 같은 일, 같은 종류라 하더라도 자신만의 대체불가능한 독특한 결과를 낼 수 있으면 성공이다. 거의 비슷한 기능의 스마트폰이지만, 세상에 그리도 많은 종류의 스마트폰이 팔려나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