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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직장의신2 10화

너의 종착역을 알려줄께

관리자의 길과 전문가의 길, 당신은 어느 쪽을 걸을 것인가

by 한금택

나는 서른일곱 살까지 철저한 직장인 개발자였다.
밤낮없이 ERP 시스템 개발했다. 작은 회사라 개발이 끝난 시스템을 설치하고 운영도 함께 해야 했다. Visual basic, html, Java 코드 안에서만 살아왔다. 그 안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땐 회사도 작았고, 시스템 사용자도 몇 돼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가 커지고, 사용자들이 늘어나면서 시스템 요구가 늘어났다. 이메일로 보내던 정보를 웹으로 표현해달라. 일방적으로 조회만 하는 시스템에서 상호 정보 교환하는 시스템까지 요구 했다. 작은 애플리케이션 하나만으로는 더 이상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 할 수 없는 요구사항과 시스템 크기였다.

그래서 사람들을 뽑았다. 서버와 네트워크를 담당할 시스템 관리자 한 명, 개발자 세 명 더 합류 시켰다. 시스템은 안정됐고, 프로젝트 성과도 개선됐다.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하루는 여전히 바빴다.

나는 사람들을 챙기고,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힘들다고 퇴사하겠다는 직원을 붙잡아 깡통 소주집으로 데려가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프로젝트 중간중간, 필요한 예산을 사장님에게 부탁하느라 설득하느라 진땀을 뺐다. 외부 고객을 만나 시스템을 설명하고 계약했다. 서버가 다운되거나, 인터넷이 느려지면 여기 저기 전문가들과 벤더들에게 전화를 돌려 협조를 구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코드와는 점점 멀어지고있었다. 프로그램 개발 보다는 시스템을 관리하고 이해관계자들을 만나러 다니는 시간이 하루 일과였다.

그러던 어느 날, 후배가 처음보는 코드를 시스템 개발에 사용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엄청난 코드라인을 만들었던 나는 순간, 가슴이 내려앉았다. 내 실력이 이미 도태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나는 개발자 세계에서 끝나겠구나.’

나는 후배들에게 나의 뒤쳐진 스킬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밤새 여기저기 신기술을 구글링 했다. 새로운 코드와 기법들은 매일매일 발전했다.

나는 결정 해야 했다. 지금 하는 일을 모두 포기하고, 개발자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관리자로 포지션을 확고히 할 것인지.

관리자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개발자의 길을 고수할 것인가.
결국 나는 관리자의 길을 선택했다. 내가 관리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 일을 할 사람이 나 밖에 없었다. 사장님에게 관리자를 영입하자고 보고드렸지만 일언지하에 거절 당했다.

“그런 사람 쓸 돈이 어딨냐”.

내 밑에서 일하는 이과장을 관리자로 낙점했지만, 그는 사람상대하는 일은 성격에 맞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나 역시 그의 지시를 받으며 개발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등 떠밀려 관리자가 됐다. 말이 좋아 관리자다. 하는일을 보면 그냥 잡부다. 특별히 정해진 일이 없고, 모든 일을 다 하고, 어디서든 문제가 생기면 소방수 역할을 한다. 위에서 돈 많이 쓴다고 깨지고, 밑에서 돈 없어 못한다는 푸념을 혼자서 감당한다. 고객에게는 전화상담원,서비스맨이고, 회사내에서는 누구보다 빠르게 뛰어다니는 집사다.

하루가 전쟁 같았다. 팀원들의 실수와 갈등은 모두 그의 몫이었고, 상사는 결과만 요구했다. 회의는 끝없이 이어졌고, 그는 밤마다 혼자 사무실에 남았다.

회사 생활 중간중간 ‘이렇게 사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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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그럼에도 나는 끝까지 포기 하지 않고 결국 최단기간 임원이 되었다. 그러니 관리자의 길이 좋다.! 라는 말로 끝맺음 할 것이다.

자신의 전문성을 버리고 관리자로 거듭나기 위한 길은 험난하다. 사실은 권하고 싶지 않을 만큼 고통스럽다. 정 부장은 디자인 실무에서는 최고였다. 그도 사업이 커지면서 직원이 생기고 팀장이 되었다. 그러나 팀장이 된 순간, 그의 악몽이 시작됐다. 팀원들은 언제나 불만을 터뜨렸다. “업무환경이 너무 열악하다. 급여가 작다. 동료직원과 도저히 성격이 맞지 않는다. “ 끝도 없이 밀려드는 팀원들의 민원에 마음 약한 그는 좌절했다. 프로젝트가 제대로 끝날수 없었다. 잦은 납기 연장과, 시스템 오류에 따른 재작업으로 그는 난항에 빠졌다. 정부장과의 마지막 술자리에서 탄식하듯 나에게 물었다. 나는 아직도 그 질문에 정확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내가 사람을 다루는 게부족한걸 까요? 아니면 사람들이 못난 걸까요?”


내가 잘 됐다고 해서, 관리자 선택이 맞다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내 밑에 있던 이과장은 10년 전부터 개발부장으로 잘 살고 있다. 자신이 잘하는 개발에 집중했고, 꽤 훌륭한 시스템도 많이 만들었다. 그가 많은 코드들은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쌩쌩 잘 돌아간다. 본인이 하고싶은 일을 마음껏 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위너 다. 자신의 전문기술을 가지고 누구에게 굽신 거릴 필요 없이 오랫동안 살아간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40대 초반까지 그는 인정받고, 스스로도 만족한 직장생활을 했다. 조직은 빠르게 변화했고, 젊고 새로운 감각을 가진 후배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점점 주변부로 밀려났다.
40대 중반, 그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채, 조직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위치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가 당장 퇴출의 위기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매우 안정적으로 자신이 구축한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전문성만으로는 냉정한 시장에서 버티기 어렵다.


결국 중요한 것은, 스스로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선택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개발자가 내 전문 영역이고 진정한 꿈이라고 착각했다. 내가 만든 코드가 기능을 가지고 시스템에서 작동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해 하던 경험은 지금도 짜릿하다. 하지만 내가 진짜 원했던 것은 돈을 많이 버는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아니다. 자신의 선택과 결정을 조용하게 깊이 들여다 보라.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했는가. 무엇이 나에게 보이지 않는 길을 갈 수 있는 용기를 주었는가. 그것은 겉으로 내가 바라는 것 뒤에 내가 모르는 내 마음속 어딘가에 있는 간절히 원하는 무엇이다.

어린 마음에도, 관리자의 길이 더 높이 올라가고, 더 높이 올라가면 연봉도 많이 주겠지.그럼 나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막연하지만 본능적인 더 넓은 세상과 기회에 대한 욕심이 나를 움직였다.

30대 직장인 후배님, 선택의 기로에서 현재 상황보다는 자신이 본질적 욕구에 더 가까이 가야 한다. 너무 바쁘고, 또 당장의 내 모습 때문에 본질적 욕구가 잘 않보일 것이다.
그럴때는 본인이 먼 훗날 다다라야 할 종착역을 그려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지금 나의 선택이 그 종착역으로 가는 중간역일지, 아니면 전혀 다른 방향의 선로인지를 달리기를 멈추고 생각해 보라. 종착지를 향한 선택이고, 그 방향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후회 없는 커리어가 만들어진다.


그동안 직장의 신을 읽어 주시고 응원해 주신 많은 독자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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