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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은 Oct 23. 2021

모든 사람에게 완벽할 순 없어

고갤 끄덕일 수 있는 용기와 시간

"난 내가 모든 일에 완벽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일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내가 늘 엄마에게 했던 말이다. 엄마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며 나를 향해 웃어 보이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 웃음은 완벽하지 못한 자신을 보았을 때 실망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을 수도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엄마의 말을 들은 이후로도 계속해서 완벽함이라는 말에 집착하며 살았다. 참 바보 같게도 내가 완벽할 수만 있다면 날 타인에게 납득시키고, 증명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난 그렇게 완벽하게 사랑받아왔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나뿐만이 아닌 세상을 살아가는 다른 이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모든 사람에게 완벽하게 인정받고, 완벽하게 사랑받으려 애쓰는 그 누군가의 이야기.



    예전에 그런 문장을 본 기억이 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라는 말은 완벽하게 상대적인 말이다."라는 문장. 모든 것들을 잘라내어 온전히 나 하나만 놓고 본다면 완벽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그 중간에 다른 사람이 나타나게 된다면 비교를 통해 완벽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뜻의 문장이라고 해석했다. 각자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단점은 스스로 알아낼 수 없지만 남을 비추어 생각하자면 얼굴에 생겨난 뾰루지처럼 의식을 할 때마다 눈에 띄게 된다. 이렇게 장점과 단점은 붙어있을 수밖에 없는 단어들이라 떼어놓을 수가 없다. 그리고, 다른 이를 통해 알게 된 나의 장점은 점점 식어 어느 순간 단점으로 탈바꿈한다. (이걸 비교를 통한 깨달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우린 늘 누군가에게 완벽하게 인정받으려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타인을 통해 깨닫는 게 단점이 아닌 장점이라면 그것만큼 완벽한 게 없을 테니까. 


    우린 삶을 살아가며 각자만의 윤리와 가치가 생기고, 많은 주관이 생겨난다. 그 속에서 차이점이 발생하고 자연스레 같음과 다름도 발생한다. 이렇게 갈라진 생각을 갖게 된 우리는 마치 퍼즐 조각처럼 늘 뒤틀리고, 어디에나 맞는 구석이 없게 느껴지게 된다. 각자의 모양과 각자의 형태를 띠게 된 이상 누군가에겐 반드시 완벽할 수 없다는 소리다. 그리고 우린 이 당연한 현실을 커져만 가는 생각 속에서 점점 잊어가고 있다.


    최근에 그런 생각을 했었다. '원래 사람은 늘 양면성을 갖고 있는데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은 단면뿐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내가 갖고 있는 모습은 정말 다양한데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의 모습뿐이라면 당연스럽게 상대방이 생각했던 나의 모습을 확률적으로 맞출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맞출 필요도 없지만) 그렇기에 우린 우리가 생각했던, 상대방이 생각했던 누군가의 단면적인 부분만을 보고 종종 실망을 하기도 한다.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불완벽한 모습이겠지. 여기서 말하는 실망은 바라던 일. 누군가가 나에게, 내가 누군가에게 바랬던 일로 생기는 감정이다. 그렇기에 실망이란 건 무조건적으로 상대로부터 일어나는 감정이 아니다. 무언가를 바랐던 나에게서 비롯되는 것이지. 앞서 말했듯 우리는 불완벽한 각자만의 기준이 있는데,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그에 맞춰 움직인다. 지극히 주관적인 시각으로 만들어낸 자신만의 기준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린 절대로 완벽해질 수 없다. 스스로가 완벽하다 느낀다고 해도 타인의 기준에 맞추기엔 그 사적인 시각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완벽해질 수 없다는 말은 그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아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을 수 있다는 소리와 같다. 그리고 사랑보단 미움이라는 것에 더욱더 집중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많은 사랑을 받더라도 단 한 번의 미움으로 우린 좌절하고, 무너져 내릴 거다. 원래 사람은 본디 좋아한다는 것보다 싫어한다는 것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으니. 


그러니 우리 이제 다 놔버리도록 하자. 어차피 우린 모두에게 완벽한 사람으로 존재할 수 없으니. 너무나도 다양한 시각들 속에서는 앞서 말했듯이 자연스레 차이점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 수많은, 저마다의 생각을 통일할 수 없다면 그냥 인정하고 놓을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연습하자.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린 절대. 아니, 아마 평생을 불완벽한 존재로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게 나쁜 건 아니다. 누구나 작은 결함이 있고, 누구나 작은 미움을 안고 사는 이 세상에서 불완벽한 우리는 이제껏 잘 살아왔고, 잘 살고 있고, 잘 살아갈 테니. 


완벽함이라는 말 또한 불완벽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은 단어일지도 몰라.

그러니 우리, 그 속에서 헤엄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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