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건 원래 갖고 있는 걸 나눠주는 거야
사랑
: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최근에 이런 날이 있었다. 누군가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라 정의되는 그 단어를 공책 한편에 가지런히 적고 펜으로 그 문장의 중간을 일직선으로 그었던 날. 그리곤 사랑을 하기 위해선 많은 상처와 위태로움이라는 변수를 안고 가야 한다는 말을 그 밑에 적었다.
맞다, 난 사랑이란 말에 질릴 대로 질려 그 예쁜 모양의 감정을 내 안에서 지워냈다.
지금으로부터 약 3달 전까지만 해도 난 참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였다. 그 아름다운 감정을 나 또한 느끼고 싶다며 이리저리 방황했고, 사랑에 대한 노래도 막 불러댔다. 짝사랑이라도 하면 조금 설레지 않을까 싶어서 아무나 사랑했었다. 사랑이란 단어 하나를 보며 달렸던 그때의 나는 아마 몰랐겠지. 그렇게 점점 보이지 않는 밑바닥으로 떨어져 갔다는 걸. 수많은 사람들에게 치여 누군가를 사랑할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아픈 날이 올 거라는 걸 꿈에도 몰랐을 거다.
지금의 나는 다신 사랑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며 살아간다. 사랑이란 말에 휘둘리지 말자고. 그러면서도 난 매일 밤마다 사랑에 관한 글을 쓰며 혼잣말을 중얼댄다.
"사랑, 사랑, 사랑. 음, 사랑이 뭐지. 사랑이란 게... 내가 제일 원했던 그 감정이란 게 이젠 더 이상 생각나질 않아. 사랑, 사랑, 사랑... 사랑은 뭘까."
사랑이 무엇일까 하며 곰곰이 고민하던 그때 좋아하는 책의 한 구절을 읽었다. "너를 떠올리면 부끄럽고 민망해서 숨고 싶은데, 그런 네가 앞에 있으면 따라 웃겠지. 늘 그랬으니까." 욕설문장집이라는 책의 128페이지에 나와있는 그 문장.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무언가가 내 몸속으로 훅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랑을 다시 깨달은 거다. 누군가를 생각하면 괜히 부끄러운데, 막상 내 눈앞에 있으면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감정. 그 오밀조밀한 감정들이 점점 내 머릿속을 채웠다. 그렇게 머릿속을 채우는 몽글몽글함이 느껴질 때쯤 난 다시 한번 고개를 양옆으로 세차게 흔들었다. '아냐, 누군가를 좋아해서는 안 돼. 다시 또 상처만 받게 될 거야. 난 안 될 거야. 날 잃게 될 거야.' 하며 손을 세게 말아쥐었다. 아마 여기까지 글을 읽었다면 눈치챘겠지. 맞다. 앞서 말했듯이 난 참 많은 이에게 상처 받고 버려졌다. 이유 하나 알려주지 않고. 그래서 손을 말아 쥐며 다짐했던 거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난 내 스스로를 잃게 될 걸 알았기 때문에.
그로부터 두 달 정도 지났을까. 친구는 내게 사람을 만나는 걸 쉬어보라 권했고, 그걸 계기로 난 사랑이란 감정을 머릿속에서 지워냈다. 사랑이 이성 간의 사랑뿐만은 아니다. 그냥, 새로운 인연들 모두. 그러다 보니 조금씩 머릿속을 채웠던 수많은 생각과 감정이 비워졌고. 내 생각보다 더 편해질 수 있었다. 남이 아닌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만들고, 타인보다 나를 더 생각할 수 있는 날들이 많아져서 그런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끊임없이 아파하고, 휘둘렸던 나는 그렇게 사랑이란 말에서 빠져나왔다.
난 여기서 앞서 말했던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 타인보다 나를 더 생각할 수 있던 날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뭐, 순서대로 적어보자면 참 간단하다.
첫 번째. 불필요한 연락들을 조금씩이라도 정리하자.
나는 이제껏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려 애썼다. 그렇기에 내 핸드폰은 정말 불필요한 대화창과 관계들로 가득 차 있었다. 불필요하단 말을 부정적인 (필요 없다, 쓸모없다.)라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닌, 조금 더 트인 시각으로 바라보니 모든 게 구별되더라. 그래서 이제 불필요하단 건 내게 (애매하고, 불편하고, 굳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관계)로 정의된다. 둘 중 누군가, 한 명이라도 손을 놓는다면 끊어질 관계. 그런 불안정하고 불필요한 연락들에 목매달 필요가 없다. 조금만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면 내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들은 셀 수 없이 많을 테니까.
두 번째. 좋아하는 일과 스스로에게 집중해보자.
좋아하는 일을 찾은 사람에게는 쉬운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참 어려운 과제일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그냥 무작정 아무거나 해보는 걸 추천한다. 영화를 보거나, 전시회를 가거나, 책을 읽어보거나. 이런 단순한 취미에서도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다. 만약 좋아하는 일이 생겼고, 찾았다면 이젠 스스로에게 집중할 시간이다. 더 깊게 좋아하는 것과 자신을 파고드는 것이다. 마치 명상을 하듯이 한 부분에 대해 집중하다 보면 다른 것들은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게 나만을 위한 시간을 점차 만들어내야 한다.
세 번째. 혼자가 힘들다면 주위를 둘러보자.
우리의 곁엔 생각보다 더 좋은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익숙해져 소중한 줄도 몰랐던 친구들이나 가족들, 지인들에게 조금씩 기댈 줄 아는 연습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마음속에 쌓여왔던 상처는 아마 겹겹이 쌓여 지금쯤 마음속 깊은 곳에 응어리처럼 뭉쳐있을지 모른다. 그걸 알면서도 모른 척해왔다면 지금이라도 움직여 풀어내야 한다는 말이다. 혼자 하기엔 너무나 버겁고 서러운 일일 수 있다는 거 나도 잘 안다. 난 늘 혼자 이겨내려 노력하다 주저앉는 게 일상이었으니. 그 버겁고 서러운 일들을 누군가와 함께 한다면 절반, 아니 그 이상으로 무게가 줄어들 거다. 짐을 떠맡기라는 게 아니다. 그냥 같이 나누며 공유할 줄 아는 것 또한 나와 진짜 내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첫 발걸음일지도 모르겠다는 소리지.
어려우면서도 어렵지 않은 일들이라 적어내기가 민망했다. 이 모든 건 내가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면서 상처를 치유했던 방법이고, 조금 더 주위를 둘러볼 수 있게 해 줬던 방법들이다.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곤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나보다 남을 위할 줄 아는 마음도 정말 고맙고 소중한 감정이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라는 존재라는 것. 난 이제껏 타인에게서 받은 상처로 나라는 존재를 부정했고, 사랑이라는 말에 줄을 그을 만큼 그 감정을 싫어했다. 하지만 이젠 안다. 사랑이라는 말은 잘못이 없다는 걸.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던 과거의 나는 그냥 누군가를 사랑하기 전에 자신 먼저 사랑할 줄 알아야 했다. 아마 그랬다면 조금 더 안 힘들어하지 않았을까?
내가 늘 갈구했던 사랑은 타인으로부터 비롯된 사랑. 하지만 타인의 시선으로만 찾게 된 사랑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그런 공허함이 찾아올 때마다 다른 사람으로 세운 사랑이란 벽은 쉽게 무너져 내릴 테니. 그러니 이제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나는 유일하니까. 나라는 존재에 '왜?'라는 의심은 필요 없다. 내가 날 사랑하고 나만을 위한 삶을 살겠다는데 이유가 왜 필요할까.
예전의 나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고, 타인의 사랑만을 갈구했다. 그리고, 사랑이란 말을 저주했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사랑이란 말은 아무런 잘못이 없었을 수도 있겠다. 그 모든 건 그냥 단순히 사랑의 순서가 잘못되었던,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나의 어리숙한 과거일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