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실패가 아니라 제대로 하기위해 잠시 쉬어가는것

한번쯤은 도망쳐도 괜찮아

by 파란동화


원래는 백두대간 일시종주를 하려고 했다.

시작점인 진부령에서 도착점인 지리산 천왕봉까지 쉬지 않고 종주하길 원했다. 가다가 식량이 떨어지면 중간 중간 하산하여 모텔이나 민박에서 샤워도 하고 땀에 절은 등산복도 세탁하고 그렇게 대간을 이어가려고 했었다.



대간 종주를 완수할 때 까지는 서울로 돌아오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설악산 한계령에서 오색으로 내려가 민박을 알아봤을 때, 생각보다 너무 허름한 민박이 생각보다 너무 비싸서 깜짝 놀랐다.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그때가 설악산 최고 성수기인 단풍철이라는 것과 그날이 바로 금요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절대 돈 내고 자고싶지 않은 허름한 곳도 1박에 6~7만원 수준이었던 것이다. 여자 혼자 조용히 잠만 자다 갈 거라고 아무리 부탁해도 네고의 여지가 없었다.



그 돈을 주고 숙박하며 힘들게 손 빨래를 하느니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서 편하게 세탁기를 돌리자, 라는 생각으로 서울로 돌아왔다.



하지만 돌아오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 시점에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마치 종주를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등산복이 너무 두꺼워 얇은 옷으로 바꿔입어야 한다는 생각도 다 핑계 같았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대간길을 찾는 것이 힘든 일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이 일도 끝까지 해내지 못하고 '도전해봤다'는 짤막한 에피소드만 남게 될거 같아 불안했다.




나는 또다시 낙오자가 될 수 밖에 없을거야...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았다.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그 길이 3개월 전 가출하던 길처럼 느껴졌다. 기분이 몹시도 우울하고 힘들었다. 서울에 도착하여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도 어찌나 우울하던지 애꿎은 배낭만 발로 차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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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에 도착해서 샤워를 하고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백두대간에 대해서 검색을 했다. 놀랍게도 백두대간을 떠나기 직전까지 '대간종주' 나 '대간길' 에 대해서는 그 어떤것도 검색해 본 것이 없었다. 내가 검색해 본 것이라고는 서점사이트에서 대간종주 지도를 검색한 것과 캠핑카페에서 1인용 비비쌕 텐트를 검색한 것이 전부였다.



다른 준비물들은 기존에 이용하던 배낭여행 사이트에서 한꺼번에 다 주문했고 대간길에 대해서는 검색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앞서 말했듯 나는 대간길 입구에만 도착하면 무빙워크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모든 일들이 착착착 해결될 줄 알았던 것이다.



백두대간을 타기 전 등산을 다닐때도 나는 사전정보를 검색하지 않았다. 산 중턱의 대피소를 예약하는 것과 서울에서 출발하는 시외버스표를 예매하는 것으로 모든 산행준비를 마쳤었다. 나는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나는 계획보다는 우연을 더 선호하는 여행자였다.



'백두대간 종주'에 대해서 검색을 해보니 종주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데, 직장에 3개월 이상 휴가를 내거나 이직준비를 하면서 '일시종주'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주말을 이용해서 대간을 이어가는 이른바 '구간종주'를 하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 같았다.



보통 백두대간 '일시종주'를 하는 사람들은 중간중간 차량이 높은곳까지 올라오는 곳에서 지인들의 지원을 받아 식량과 식수를 보충하고 땀에 절은 등산복을 교체하여 대간길을 이어가며



직장 및 직업 때문에 일시종주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말의 등산으로 대간종주를 이어가는 '구간종주'를 선택했다. 토요일 새벽에 출발해서 대간을 타다가 일요일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는 일시종주를 하길 원했지만 안타깝게도 식량과 식수를 보충해 줄 지원대를 마련할 수 없었다. 아무리 고민해봐도 그 번거로운 일을 해 줄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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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고민 끝에

'주5일 등산제' 를 하기로 결정했다!



매주 월요일이면 집에서 출발하여 백두대간을 타고 매주 금요일이면 하산해서 집으로 돌아와 등산복을 빨고 식량을 보충해서 다시 월요일에 대간을 이어가자, 첫번째 대간에서 그랬던 것 처럼 말이다! 처음 진부령에서 대간을 시작했던 것이 월요일 이었고 한계령으로 하산해서 서울로 돌아온 것이 금요일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원하던 최상의 시나리오 였는지도 모른다. 주말이면 전국 각지 명산에 사람이 없는 곳이 없을테니 한적한 산길만 걷길 원하는 나에게는 안성마춤인 일정이리라!



어쨌든 닷세쯤 되면 깨끗한 물로 샤워도 해야하고 계절이 깊어질수록 등산복도 달라져야 할 것이며, 등산로 인근의 작은 슈퍼보다는 서울의 내 집 근처 마트에서 식량을 수급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일 것이다.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서울로 돌아와 대간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기 위해

잠시 집에 들른 것일 뿐이었다.



백두대간 24구간의 모든 지도를 챙겨갔던 배낭에서 단 2장의 지도만 남기고 나머지는 내려놓았다. 이것저것 당장 쓰지 않는 등산용품과 계절에 맞지 않는 옷들도 모두 꺼내놓았다. 그랬더니 배낭이 가벼워진 것은 물론, 김치와 라면과 믹스커피도 챙겨 갈 여유공간이 생겼다.



시작한 일을 빨리 마무리 짓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끝까지 가는 것이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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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고쳐먹으니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빠른 손놀림으로 등산복을 세탁하고 텐트와 침낭을 널어놓고, 다시 4박5일간의 배낭에 채워넣을 식료품을 사기 위해 마트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우울하던 서울의 하늘이

다시 밖으로 나와보니 희망의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한번쯤은 도망쳐도 괜찮아」

- 13 -


내일 수요일은 쉬고

목요일에 다시 찾아뵐게요~ ^^





파란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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