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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텐 Mar 17. 2023

사랑과 슬픔의 콩세르(concerts)

17세기 생트-콜롱브의 비올 음악


바로크 클래식 음악


음반명: 생트-콜롱브의 세계 (Le Monde de Sainte-Colombe)

연주자: 레 부아 위멘느 (Les Voix Humaines)

레이블: 아트마 클라시크 (ATMA Classique)




프랑스의 소설가 파스칼 키냐르는 <세상의 모든 아침 Tous les matins du monde>(1990)이라는 소설을 발표해 17세기 프랑스의 비올(viol) 연주의 대가 생트-콜롱브(Sainte-Colombe)의 삶을 보여주었다. 그에 대해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고 남아있는 기록도 빈약하기 때문에 소설의 상당 부분은 픽션이었지만 비밀에 싸여있던 생트-콜롱브라는 음악가가 대중적 조명을 받는 순간이었다. 루이 14세 왕실의 비올 연주자였던 마랭 마레(Marin Marais)가 그의 제자였고 소설은 그 사실에 기반해 두 음악가의 사제 관계를 재구성했다. 키냐르의 소설은 곧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며 영화를 통해 생트-콜롱브는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은 궁정의 일자리 제안도 거절하고 고립된 곳에 은둔해 사는 엄격한 음악인으로 생트-콜롱브를 그린다. 그가 남긴 비올 음악도 그의 단순한 삶처럼 진솔하고 깊은 울림을 제공하는데 대다수의 곡이 사색적이고 명상적이다. 우리는 생트-콜롱브의 정확한 이름도, 고향도, 생년도 모르고 구체적 활동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다. 학자들은 그의 이름을 '장(Jean)'으로, 생년을 넓게 1640(?)-1700(?)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리옹이 고향이라는 설도 있고 파리라는 설도 있다. 연주활동은 주로 파리 시내의 살롱에서 한 것으로 보이지만 구체적 활동기록은 없다. 두 명의 딸에게도 비올 교육을 시켜 딸들과 합주를 했다는 증언의 기록이 남아있다. 그의 제자 중 가장 성공한 이는 마랭 마레이고, 마레는 훗날 <생트-콜롱브의 무덤 Le Tombeau de M. de Sainte-Colombe>이라는 곡을 작곡해 스승을 추억한다.


<세상의 모든 아침> 영화 포스터. 생트-콜롱브와 마랭 마레가 촛불 속에서 비올을 연주하고 있다.


음악으로만 보아도 생트-콜롱브는 확실히 영화에서 묘사된 대로 은둔의 수도자 같은 음악가였던 것 같다. 그는 비올의 명인답게 베이스 비올을 개량하고 주법을 발전시켜 인간의 목소리에 가장 가까운 매력적인 중저음으로 마치 조용히 독백하는 듯한 무반주 비올 음악을 다수 남겼다. 베이스 현에 은을 입혀 좀 더 선명한 베이스 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한 개척자이기도 했다. 67곡의 두 개의 비올을 위한 콩세르, 170곡의 무반주 비올 솔로 작품을 남겨 17세기 프랑스 비올 음악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소개하는 음반은 <두 대의 비올을 위한 콩세르 Concerts à Deux Violes Esgales>로 반주 없이 베이스 비올 2대로만 연주한 음악이다. 두 명의 캐나다 비올 연주자로 구성된 레 부아 위멘(Les Voix Humanines, 인간의 목소리)가 연주했는데, 그들은 생트-콜롱브가 작곡한 <두 대의 비올을 위한 콩세르> 전곡을 4장의 음반에 녹음한 이력이 있으며, 이 음반은 그 시리즈 중 일부 곡을 발췌한 것이다. 하지만 이 한 장만으로도 생트-콜롱브의 매력을 느끼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의 작품을 연주하는데 중요한 것은 템포의 설정인데 여러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어보면 저마다 템포에 대한 해석이 다르다. 생트-콜롱브의 사색적인 특성을 잘 드러내기 위해서는 사색과 어울리는 템포 설정이 매우 중요하고 그 미묘한 뉘앙스를 표현하기 위해 적당한 속도를 '발견'해야 한다. 또 악기의 음색과 음향도 연주의 완성도에 큰 영향을 끼친다. 잔향의 여운이 짙고 베이스의 음이 미려한 비올이 생트-콜롱브가 가진 고독의 뉘앙스를 잘 살릴 수 있다. 여러 음반 중 스타급 연주자 조르디 사발(Jordi Savall)과 빌란트 쿠이겐(Wieland Kuijken)이 합주한 음반이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그들보다 템포 설정에 있어 레 부아 위멘느의 연주가 미묘하게 더 사색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딸들과 연주하는 생트 콜롱브. 영화의 한 장면이다 .


비올은 17세기 프랑스에서 매우 대중적인 악기였으며 무반주 비올 형식의 음악도 보편적이었다. 하지만 생트-콜롱브의 음악처럼 사색적인 독주곡은 오직 그만의 스타일이었던 것 같다. 베이스 비올의 소리 자체에 그윽한 울림이 있는 데다가 은을 칠한 베이스현을 하나 더 더했다는 것으로 보아 생트-콜롱브는 저음의 표현력, 고독의 섬세한 뉘앙스에 민감했던 것 같다. 그의 무반주 비올 독주곡은 17세기 무반주 양식의 전통에 속한 것이지만 두 대의 비올을 위한 곡은 그의 독창적인 형식이었다. 어떠한 반주도 없이 비올 두대가 울리는 화음과 조화, 그림을 그려나가듯 각기 다른 멜로디가 공간 속에서 교차하고 사라지는 오묘한 조화를 느낄 수 있어 더 여운이 깊게 남는다. <후회의 무덤 Le Tombeau des Regrets>, <귀환 Le Retour>, <노래 Les Couplets>는 고즈넉이 타오르는 촛불과 같은 음악인데 이런 음악이 17세기의 전통 속에서 작동했던 점을 보면 우수에 젖은 사색적인 감성이 그 시대에 문화적 분위기가 아니었을까라는 궁금증이 든다. 실제로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영국에서는 사랑의 고뇌, 슬픔, 멜랑콜리는 멋쟁이들이 취하는 세련된 제스처로 여겨졌다. 누구나 힙스터라면 어느 정도 '멜랑콜리'라는 액세서리를 지니고 있어야 했다. 16세기 프랑스의 시인 퐁튀 드 티야르(Pontus de Tyard)는 시집 <고독 Solitaire>(1552)에서 고독하게 리라를 연주하는 음악적 감동을 멜랑콜리와 연관시킨다. 또 프랑스의 시인 피에르 드 롱사르(Pierre de Ronsard)의 유명한 시 <장미 rose>의 한 대목은 다음과 같이 센티멘털한 감성을 드러낸다.


저물녘에 따 모은 이 꽃
꽃다발 손수 엮어 그대에게 보냅니다.
내일 아침이면 다 시들어
꽃잎이 땅 위에 이리저리 떨어지리니


두 대의 비올을 위한 작품을 연주하는 영화 속 장면


바로크 시대에 고독과 멜랑콜리는 예술적 감동을 포장하는 수사이기도 했고 유한한 삶에 대한 작가적 성찰이기도 했다. 생트-콜롱브의 음악에 가득한 명상적 분위기도 이런 문화적 전통 속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대상을 인지하고 해석하는 방식은 문화적 관습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문화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인식의 하부구조를 구성하고 지각, 판별, 미감 등에 공통감각을 제공한다. 미술, 음악, 철학, 과학은 서로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우리 사고는 시대의 지식체계 안에서만 작동하기에 그 안에서는 각기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프랑스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2)의 그림을 생트-콜롱브의 음악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생트-콜롱브의 많은 우수에 젖은 곡들은 드 라 투르 그림 속 '빛 & 어둠'과 매우 유사하다.


드 라 투르는 어둠과 빛의 대비를 활용한 조명법을 통해 내면의 고요함을 묘사하는 스타일로 유명한 화가다. 그는 촛불과 해골 앞에서 생각에 잠긴 여인을 소재로 다수의 그림을 남겼는데 그중 유명한 작품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는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c.1640)다. 그녀의 무릎 위에는 해골이 놓여있고 탁자 위에 촛불이 빛나고 거울은 동일한 촛불을 비추고 있다. 거울은 자신을 비추기에 자기 성찰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해골은 죽음과 무상함을 뜻한다. 여인은 성찰의 거울을 바라보며 일렁이는 촛불처럼 연약하고 해골처럼 무상한 삶에 대해 사색에 잠긴 것일까? 또 다른 의미에서 거울은 허영심을 뜻하기도 하고 촛불은 영적 깨달음을 뜻하기도 한다. 드 라 투르는 쾌락의 삶을 버리고 참회와 명상의 삶으로 돌아선 막달라 마리아의 심정을 촛불의 효과만으로도 설득력 있게 드러내고 있다. 실로 영적인 울림이 담긴 조명이 여인의 마음 속을 비추고 있다. 은은한 빛의 표현이 깊고 고요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조르주 드 라 투르,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 ca. 1640



영화를 보면 생트-콜롱브가 촛불을 켜놓고 게슴츠레한 공간에서 비올을 연주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위 영화 포스터의 연주 장면은 생트-콜롱브와 그의 제자 마랭 마레가 어둠 속에서 함께 연주하는 장면이다. 여운이 길고 침잠하는 선율이 어딘가 조르주 드 라 투르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촛불이 영혼을 비추는 깨달음을 상징하듯이, 베이스 비올의 깊은 저음은 우리 영혼의 깊숙한 곳을 터치한다. 비올이 조심스럽게 그려가는 멜로디는 어두운 공간에 희미한 빛을 비추듯이 등장하고 잔향을 남기며 사라진다. <귀환 Le Roetour>은 밝은 악상으로 시작했다가 멜랑콜리한 분위기로 뉘앙스가 변하며 끝을 맺는다. 가보트, 미뉴엣과 같은 춤곡도 항상 절제되어 있고 어딘가 (막달라 마리아처럼) 우수에 잠겨 있다. 두 명의 연주자도 비올의 현을 그으며 항상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한 터치를 들려준다. 생트-콜롱브는 무엇을 그리 골똘히 생각했던 것일까. 누군가의 무덤, 지나간 과거, 돌아오는 길, 눈물, 행복 이런 제목의 곡들에 스며든 멜랑콜리는 작곡가 개인의 추억인 것일까? 베일에 가려진 그의 삶만큼 음악 역시 매우 내밀하고 비밀스럽다.  


그의 음악 속에서 사색은 일종의 체험이다. 그에게 듣는 것과 사색, 연주하는 것과 사색은 동일한 행동이다. 비올 곡을 들으며 분위기에 잠기는 순간 우리는 무엇인가를 떠올리고 마주하게 된다. 선율이 진실로 마음에 닿으면 우리는 소리에 홀린 듯 날 것의 음악을 마주하게 되지 않는가. 그런 경지가 아마도 생트-콜롱브의 고독한 비올이 그리는 아름다움이 아닐는지.....


https://youtube.com/watch?v=Yp_dsKW5sv0&si=EnSIkaIECMiOmarE

Les Voix humaines in Paris: Sainte-Colombe – Les Pleurs



https://www.youtube.com/watch?v=MetitdlT9Lw

Les Voix humaines in Paris: Sainte-Colombe – Les Roula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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