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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텐 Jul 10. 2023

혁명 전 파리 살롱의 여흥

자크 뒤플리와 18세기 클라브생 음악



바로크 클래식 음악 


음반명 : 자크 뒤플리 Jacques Duphly

연주자 : 크리스토퍼 루세 Christophe Rousset

레이블 : 아파르떼  Aparté



오늘 소개하는 음반은 프랑스 로코코 스타일 음악의 정점을 보여주는 자크 뒤플리(Jacques Duphly, 1715 -1789)의 클라브생(French: clavecin, English: harpsichord, German: Cembalo) 작품집이다. 클라브생은 피아노가 발명되기 전 16-18세기에 유행한 건반악기로 프랑스 음악에서는 18세기에 그 예술적 완성도가 절정에 달하며 프랑스 스타일의 연주 전통을 확립했다. 뒤플리의 음악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우아하고 심플한 프랑스 기악음악의 정수를 들려주는데, 우리가 흔히들 '마리 앙투아네트'에 관해 습관적으로 떠올리는 18세기 프랑스 상류층 문화의 세련된 취향이 뒤플리의 클라브생 음악에 담겨 있다.


자크 뒤플리는 루이 14세가 사망한 해인 1715년에 태어나 대혁명이 시작된 1789년에 사망했다. 프랑스 구체체 아래 왕실과 귀족들의 로코코식 향연 문화가 절정에 달했을때 활동한 음악가로 전형적인 '갈랑트(galante)' 스타일의 음악을 구사했다. 루이 15세가 5세의 나이에 즉위하고 오를레앙 공이 섭정하던 시기에 프랑스 음악은 베르사이유 중심에서 벗어나 파리의 귀족 저택으로 중심을 옮겨가며 새로운 취향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음악의 새로운 청중은 파리에 거주하는 귀족과 상류층 부르주아들이었고 이들 저택의 살롱은 계몽주의 사상의 토론장이자 예술과 취향, 유행의 중심지가 되었다.


섭정시대의 파리지앵들은 태양왕 재위기에 성립된 형식적이고 장대한 구성의 음악을 멀리하고, 살롱에서 연주할 수 있는 소규모의 챔버 뮤직이나 기악 독주곡 등을 선호했고 '갈랑트' 스타일의 간결함, 단순함, 투명함, 밝고 가벼운 기운의 음악을 선호했다. 이런 갈랑트 기악곡의 최고 걸작은 프랑수아 쿠프랭(François Couperin, 1668–1733)이 4권의 클라브생 모음집(1713-1730)을 창작하며 완성되었고 그의 예술은 18세기 프랑스 기악음악의 절정이자 기준이 되었다. 뒤플리는 이 거장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화려한 장식음, 우수에 젖은 악상, 생동하는 기쁨 등 로코코 양식을 집약한 클라브생 작품집을 4권(1744-1768) 총 52곡을 출판했고 이 곡들은 영국, 독일에서도 출판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그는 특정한 공식 직함을 가진 적이 없지만 파리의 상류층 살롱에서 연주하고 레슨하며 음악교사로 활동했다.


이 음반에는 뒤플리가 남긴 4권의 클라브생 작품집에서 선별한 27곡이 실려있는데 <미의 여신들(les graces)>, <라 뒤 벅(La du Buq)>과 같이 느릿하고 센티멘털한 곡은 혁명 전 파리의 귀족적 취향을 집약하고 있다. 단순한 진행, 우아하거나 때로는 교태스러운 장식음이 그렇다. 반면 <메데아 La Médée> 같은 곡은 메데아의 분노를 묘사하듯 거친 연극적 제스처로 가득 차 있다. 또한 <라 빅투아르 la victoire>는 루이 15세의 딸의 이름인데 뛰어난 클라브생 연주자였다. 뒤플리는 그녀의 모습을 가벼운 터치로 발랄하게 묘사한다. <라 밀레티나 La Millettina>는 현대 피아노로도 자주 연주되는 곡인데 어둡고 무거운 악상이 가진 낭만주의적 특성이 매우 선구적이다. 그 외 대부분의 곡에는 뒤플리가 알고 지내던 인물의 이름이나 특정한 사물에서 따온 제목이 붙어 있다. 이 표제의 대상을 직접적이고 세련되게 묘사하기 위해 갖춰야 할 ‘좋은 취향 bon goût’이 프랑스 갈랑트 음악이 추구하는 것이었고 뒤플리의 음악은 전적으로 그것에 봉사한다. 감정은 적절히 절제되어 있고, 장식음은 화려하고, 흐름은 우아하며, 악상은 사랑스럽다. <샤콘느 F 장조 Chaconne en fa>, <론도 C 장조 Rondeau en do>, <미의 여신들  Les Graces>, <라 포크레이 La Forqueray>, <라 드 귀옹 La de Guyon>, <라 드 샹레이 La de Chamlay>는 그 중 최고이고 이 시대 프랑스 클라브생 예술의 절정이라 말할 수 있다.  


뒤플리를 포함해 18세기 프랑스 클라브생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장식음(꾸밈음)에 주목해야 한다. 앞서 쿠프랭은 악보에 23종류의 장식음을 꼼꼼히 기보해 놓을 정도로 장식음을 중요시했고 이는 프랑스 기악음악의 핵심이 되었다. 이 시대 음악에서 장식음은 회화에서의 색채 역할을 한다. 로코코 회화가 감각적 채색과 소재로 '생의 즐거움'을 표현했다면 로코코 음악은 장식음으로 선율 곳곳에 꽃을 피웠다. 뒤플리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단순한 선율(less is more)로 세련된 표현을 추구했지만 장식음은 단순한 선율을 꾸며주는 역할을 하며 심플한 매력 속에 우아한 향취를 불어넣었다. 때때로 꾸밈음은 교태스러운 색기를 닮았고 반짝이는 보석과 화사한 꽃처럼 들린다. 이 시대 사교 생활과 예술의 중심이었던 사랑의 밀어, 정중한 태도, 세속적 쾌락. 이러한 '갈랑트'적 흥취가 뒤플리의 음악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로코코 음악의 전형을 들려주는데 이는 그 시대 회화와도 자연스럽게 공명한다.


뒤플리와 동시대를 살았던 화가 프라고나르(Jean Honore Fragonard, 1732-1806)의 회화 <사랑의 단계(1771-1773)>는 애인과 밀고 당기는 연애 놀음을 그린 '갈랑트' 스타일의 그림인데, 사랑의 4단계 <구애>, <만남>, <화관을 씌우다>, <연애편지>를 통해 솔직한 욕망을 그리고 있다. <구애>에서 남자는 여자와 조우하고 여자는 깜짝 놀란다. <만남>에서 남자는 담을 넘어 여자에게 접근하려 하지만 여자는 주변에 누가 없는지 뒤돌아 보며 주저하고 있다. <화관을 씌우다>는 사랑이 이루어진 징표로 화관을 씌운다. <연애편지>는 그동안 주고받았던 연애편지를 다정한 포즈로 함께 들춰본다. 현재 이 4점은 뉴욕의 프릭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지만 애초에 이 작품은 루이 15세의 애첩 마담 뒤 바리(Madame du Barry, 1743-1793)가 루브시엔느 성 내 정원에 지은 파빌리온의 실내장식을 위해 주문된 것이었다. 1760-70년 사이 프랑스에서는 몽소(Monceau), 에르농빌(Ermenonville), 물랭-졸리(Moulin-Jolie)와 같은 영국식 '픽쳐레스크' 정원이 조성되어 유행했고 프라고나르는 영국식 정원의 자연스러운 풍경을 그림 속에 재현해 시골풍의 전원을 연출하는 동시에 이를 파빌리온 밖 풍경과도 연결시켜 전원 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귀족놀음의 장소로써 기능한 당대 파빌리온의 이상을 완벽하게 실현시켰다.


프라고나르 <구애>, 1771-1773
(왼쪽부터) 프라고나르 <만남>, <화관을 씌우다>, <연애편지> 1771-1773


그림 속에 묘사된 큐피드와 비너스 조각상, 붉은 입술, 화려한 패션, 연애편지, 화관, 장미꽃, 데이지꽃, 접시꽃, 담장이덩굴, 비너스의 나무인 동금양(myrtus) 나무, 사랑과 다산을 사징하는 오렌지 나무는 모두 사랑과 연애 기술에 관련된 도상들이고 이 모든 사물이 로맨틱한 흥취를 한껏 꾸미며 고조시키고 있다. 꼭 도상의 의미를 찾지 않더라도 우리는 붉은색과 분홍색의 어디 매를 향하고 있는 그림 속 사물의 시각적 화려함과, 그 모든 사물들이 오로지 사랑을 지칭하고 있는 목적의 명료함에 감탄하게 된다. 신록의 어두운 배경 속에서 빛나는 것은 다정한 연인의 제스처, 화려한 장식과 드레스, 울긋불긋한 꽃과 과일의 색채 그리고 에로틱한 기운이다. 프라고나르의 감각적 묘사는 연인을 쫓고 정복하려는 사랑의 욕망을 시각적으로 풀어 보여주며, 마치 화려한 꾸밈음이 음악에 갈랑트적 흥취를 더하듯이 그의 붓질은 연애놀음을 에로틱하게 채색한다. 뒤플리의 장식음과 프라고나르의 묘사는 모두 생의 기쁨(Joie de Vivre)에 봉사하고 있는데 그것에 접근하는 방식이 대단히 직접적이고 심플하다.


로코코의 '갈랑트리(galanterie)'는 우아한 몸짓 이면에 성적 욕망이 숨어 있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주며 그 욕망을 신사적 예의로 치환한 것일 뿐. 음악 역시 살롱과 규방에서 벌어지는 귀족놀음의 세속적 쾌락을 표현하되 적절히 세련되고 우아한 표현 방식을 찾는 것이 이 시대 프랑스 음악의 과제 중 하나였다. 멜랑콜리와 센티멘털한 감정도 그런 쾌락에 포함되었다. 그런 우수에 젖은 씁쓸한 감정도 역시 결국엔  탐미의 시대에 삶의 여흥으로 여겨졌기 때문인데 뒤플리의 <미의 여신들 Les Graces>, <라 뒤 벅 La du Buq>, <라 포크레이 La Forqueray>, <라 드뤼몽 La Drummons>와 같은 단조 곡들은 그런 속성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 음반의 연주자 크리스토퍼 루세가 언급했듯이 자크 뒤플리는 혁신적인 음악가는 아니었다. 그는 선배 쿠프랭이 세워놓은 기준과 범주 안에서 가장 프랑스다운 방식으로 로코코의 흥취를 잘 담아낸 연주가이다. 따라서 뒤플리 음악이 가진 특성이라면 혁명 전 파리 살롱의 분위기를 함축하고 있다는 것. 그 점에 있어서 뒤플리의 곡은 프라고나르가 보여주는 공기처럼 가벼운 붓질과 달콤한 색채로 감정을 달아오르게 하며 '갈랑트리(galanterie)'로서의 예술과 교차한다. 특히 <샤콘느 F 장조 Chaconne en fa>, <론도 C 장조 Rondeau en do>, <미의 여신들  Les Graces>, <라 포크레이 La Forqueray>, <라 드 귀옹 La de Guyon>, <라 드 샹레이 La de Chamlay>는 꼭 들어보길 권하고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kFph67Ygj_E

자크 뒤플리 <샤콘느 F장조>



https://youtu.be/JwKdzWDYBHw

자크 뒤플리 <라 빅투아르>



https://www.youtube.com/watch?v=WTZZZV3zMnU

자크 뒤플리 <미의 여신들>


https://www.youtube.com/watch?v=pBb16lubyEY

자크 뒤플리, <라 포크레이>


https://www.youtube.com/watch?v=A-RMNrCSkzw

자크 뒤플리 <메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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