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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텐 Jul 06. 2023

하이든 - 시간의 회전목마

하이든 교향곡 <아침>, <낮>, <밤> 3부작


바로크 클래식 음악


음반명 : 하이든, <교향곡 6번 '아침'>, <교향곡 7번 '낮'>, <교향곡 8번 '밤'>

연주자 : 지오반니 안토니니(지휘),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

레이블 : 알파 Alpha




네덜란드의 사학자 요한 호이징가(Johan Huizinga)의 명저 <중세의 가을>의 첫 장 '삶의 쓰라림'은 14-15세기 사람들의 비참한 삶에 대한 묘사로 시작한다. 가혹한 생로병사를 아무런 방패도 없온몸으로 맞았던 그 시대의 삶은 오늘날 우리의 시각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비참했다. 재난과 빈곤은 잔혹했으며 겨울의 추위와 어둠은 무서웠다. 부와 빈곤의 대조는 극단적이었고 그 차이를 줄일 방법도, 위로 올라갈 사다리도 없었다. "그러나 인간성에는 변화가 없다. 교회는 싸우고 설교가와 시인들은 슬퍼하고 권고한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다."라고 호이징가가 쓴 대로 개선될 희망조차 없는 아비규환의 삶 속에서 사람들은 불변의 요소를 찾았고 낮과 밤, 4계절순환, 1년 12달의 흐름에서 신의 섭리를 보았다. 랭부르 형제가 그린 <베리 공의 호화로운 기도서>(c.1412-1416)는 단연 그 중의 대표작이다. 호이징가는 14-15세기의 역사를 썼지만 이런 '삶의 쓰라림'이 비단 중세에서만 그랬을 리는 없다. 그것은 근세에 들어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베리 공의 호화로운 기도서> 중 2월


자연의 순환에 대한 과학적 탐구와 별개로 자연질서는 인간의 생애와 함께 문학적으로 은유되었다. 근세인들은 신의 질서 일부인 생로병사의 불가피성을 관조하며 안정 얻기도 교훈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예술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서양예술에서 '우주의 순환'에 대한 비유는 수없이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인생의 단계를 그린 그림, 우주의 창조와 사계절을 묘사한 음악, 시간과 사랑의 속성을 성찰하는 시 등은 삶의 숙명적 쓰라림을 위로하는 동시에 자연 질서에 대한 호기심을 표현하면서 자연스레 예술의 주요 소재가 되었다.      


오늘 소개하는 음반은 시간의 순환을 담은 하이든의 교향곡 '하루 3부작'이다. 하이든의 교향곡 6~8번은 '아침', '낮', '밤'의 부제가 붙어있고 하루의 흐름을 표현하고 있다. 이 3곡은 1761년 29세의 하이든이 에스테르하지 가문에 부악장으로 고용되고 나서 처음으로 선보인 교향곡이다. 3부작의 주제는 하이든의 주군인 파울 안톤 에스테르하지 후작이 제한 것이었다. 후작은 천문학을 공부한 사람이었 1761년 6월 6일에 나타난 금성이 태양과 지구 사이를 통과해 검은 점으로 보이는 금성식(transit of Venus)이 그 당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금성식은 243년마다 반복되는 매우 희귀한 우주쇼인데 천상의 질서에서 영감을 얻은 후작은 하이든에게 '하루 3부작' 교향곡을 제안하게 된다. 반복과 순환의 우주를 우리의 하루를 통해 표현해보고자 하는 비유적 생각이었다.


해가 뜨는 인상의 첫 소절과 경쾌한 플루트의 선율이 수놓는 청명한 '아침', 오케스트라 총주와 함께 시작하며 활기찬 악상이 진행되는 '낮', 평화로운 일몰과 쏟아지는 비로 마무리되는 '밤'으로 구성된 3부작은 하이든 초기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계절감은 하이든 말년에 창작오라토리오 <창조 The Creation>나 <4계절 Seasons>에서도 등장하는 모티브인데, 우주의 일정한 순환과 인생의 주기에 대한 유비적 시선은 우리 육체의 한계를 인지하는 과거인들지혜를 일부 보여준다. 특히 중세와 근세 예술에서 '죽음의 춤'과 '인생의 단계'는 미술의 주요한 모티브 중 하나였고, 음악은 시간 속에서 흐르는 예술이기에 시간을 상징하는 기호로 사용되었다.


니콜라 푸생, <세월이라는 음악의 춤>, 1634-36


17세기 프랑스 화가 니콜라 푸생의 <세월이라는 음악의 춤(a dance to the music of time)은 인생, 계절, 시간의 순환에 대한 알레고리를 담은 그림이다. 이 작품의 제목도 여러 개인데 <4계절>이라는 제목도 있고 <계절의 춤, 혹은 인생의 이미지>라는 제목도 있다. 여하튼 중심의 4명의 인물은 인생의 단계 혹은 4 계절을 의미하고 이들이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추는 춤은 반복과 순환의 의미를 나타낸다. 4명 중 가장 후경에서 어두운 옷을 입고 등을 돌리고 있는 이는 '가난'을, 그 오른쪽 터번을 쓰고 있는 찌부린 표정의 여인은 '노동'을, 그다음의 진주로 머리를 치장한 여인은 '부유함'을, 맨 왼쪽의 파란색 옷을 걸치고 화관을 쓴 여인은 '쾌락'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4가지 삶은 회전목마처럼 돌아간다. 그 누구도 영원히 쾌락을 소유할 수 없고, 쾌락은 곧 가난으로 되기도 하며, 노동은 곧 부의 축적을 의미하기도 한다.


맨 오른쪽 구석에 앉아 리라를 켜는 시간의 신 카이로스는 살짝 미소를 띠며 춤추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저 웃음이 마냥 즐거워 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리라를 켜며 4단계의 인생을 모두 관조하고 있다. 리라 음악은 흐르고 인생도 흐른다.  카이로스 옆의 아기가 들고 있는 모래시계는 또 어떠한가? 맨 왼쪽의 아기가 불고 있는 비눗방울처럼 덧없이 사라질 시간이 인생인 것인가? 하늘에는 새벽의 여신 오로라가 양신 아폴로의 전차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아마도 이른 아침인가 보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는 태양이 지나가는 길인 황도 12궁의 '조디악'이 들려 있다. 아폴로의 전차길을 따라 4계절이 순환한다.  


이런 근세의 세계관은 음악을 창작하는 우리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음악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음악은 보통 인생의 젊은 시절 연애의 달콤함에 빗대어 명화 속에 자주 등장했다. 푸생의 그림에서 4명의 을 총괄하는 것 카이로스의 음악지만, 아래 베네치아의 거장 티치아노의 그림 <인생의 3단계>(1515)에서 청년시절의 연애를 장식하는 것은 피리이다. 후의 해골을 들고 묵상하는 노인과 대비되어 피리를 들고 있는 젊음이의 사랑의 음악은 눈부시지만, 고개 숙인 노인과 대비되어 멜랑콜리한 감성을 자아낸다.


티치아노, <인간의 3단계> , 1515


하이든의 '하루 3부작'은 특이한 점이 있다. 교향곡이지만 오케스트라와 더불어 각 악기들의 솔로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여러 곳에서 독주가 종횡무진 등장하는데 그런 부분은 미니 협주곡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플루트, 바순, 첼로,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의 독주가 작품 전체의 인상을 좌우하고 표정을 만들어가는데 각 악기의 독창적인 활용에서 하이든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다.


<아침>의 백미는 여린 음으로 시작해 점점 커지며 해가 뜨는 장면을 묘사하는 첫 소절과 이른 아침의 청명함을 그리는 플루트 소리이다. 2악장에서는 바이올린과 첼로가 청순한 아침의 평화로운 시간을 번갈아가며 노래한다. 3악장에 등장하는 바순 솔로는 의문스럽고 불길한 무드를 표현하는데 그 어두운 정조가 바로 장조로 전환되며 바이올린의 밝은 무드로 나아가는 대조적인 악상이 다채롭다. <낮>의 백미는 오페라 형식을 활용한 2악장이다. 독주 바이올린이 마치 오페라 가수가 말하듯(멈칫거리는 쉼표 등)연기하며 아리아를 부르고 이를 첼로가 화답하며 듀엣처럼 진행된다. 악기로 축소해 놓은 오페라 형식까지 넣으면서 이 교향곡은 형식적으로 매우 화려하고 다채롭게 구성되었는데 아마도 하이든이 에스테르하지 궁에서 발표한 자신의 첫번째 작품이었기에 최선의 기교를 발휘한 형식의 묘미라 볼 수 있다.  <밤>의 백미는 고요한 밤의 묘사에서 뇌우로 나아가는 시간의 흐름이다. 저녁의 연회를 묘사하듯 빛나는 바이올린, 바순, 첼로의 하모니. 특히 <밤> 2악장의 느긋한 첼로의 선율과 쓸쓸한 바이올린의 대화하는 듯한 선율은 하루 일과를 되돌아보는 듯한 성숙한 표정을 보듯 아름답다. 이 두 개의 악기를 의인화시켜 보면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상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듣는이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그런 성숙한 무드는 3악장의 콘트라베이스가 그리는 우아한 춤곡으로 이어지며 4악장 '템페스타'에 이르면 평화로운 저녁이 빠르게 내리는 뇌우와 함께 막을 내린다. 비 내리는 밤의 빠른 속도의 묘사는 비발디 <사계> 중 '여름'과 비교해 볼 수 있다. 또는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의 폭풍의 묘사와도 비교해 보면 어떨까. 실제로 하이든은 이 3부작을 작곡할 당시 비발디의 <사계>를 참조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듣다 보면 비발디와 유사한 악절이 딱 1군데 등장한다.


이 음반을 지휘한 이탈리아의 지휘자 지오반니 안토니니는 <하이든 2032>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하이든 탄생 300주년이 되는 2032년까지 하이든 교향곡 전곡을 녹음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데 지금까지 13장의 음반을 녹음했고 '하루 3부작'은 그 중 10번째 음반이다. 이 대규모 사업의 목표는 다채로운 인간 감정을 담고있는 만화경과 같은 하이든의 교향곡을 연대순으로 집대성하고 동시대 연관된 작곡가들 모차르트, 글루크, 치마로사, W.F. 바흐 등의 음악도 실어 18세기 음악의 대사전을 만들고자 하는 예술적 야심이 담겨있다. 마치 프랑스의 소설가 발자크가 19세기 파리의 인간 군상을 90여편의 소설로 집대성헤 '인간 희극' 시리즈를 구성했듯이, 안토니니는 18세기 중후반 음악의 기준이었던 비엔나 고전주의를 하이든의 음악으로 총결산하는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안토니니의 하이든 연주는 그의 교향곡이 지닌 고전주의적 특성 즉, '말하는 듯한' 또는 '노래하는 듯한' 억양을 살리며 음악에 나타난 다양한 제스쳐와 아티큘레이션을 명료하게 드러내는데 촛점을 맞추고 있어 다른 연주보다는 아기자기한 앙상블의 묘미가 돋보인다.


<하이든 2032> 프로젝트의 지휘자 지오반니 안토니니

  
이제 하이든의 아침과 낮과 밤이 지났다. 당신의 오늘 하루는 어떠했는지. 세계가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 삶은 가혹했고 태어나서 어른으로 살아남는 것도 힘겨운 때였다. 항상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음악과 미술은 성찰이자 위로의 수단이 되었다. 인생이라는 장미꽃을 시간 앞에서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는 것. 우주의 질서를 거스를 수는 없지만 견딜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다. 호이징가가 이야기한 그 시대의 그 사람들은 어떤 해결책을 생각했을까. 오늘날과 별반 다르지 않다. 16세기 프랑스의 시인 피에르 롱사르(Pierre Ronsard, 1524-1585)가 말한 대로 장미꽃을 꺾는 수밖에. 주저하지 말고. 오늘부터.



늙음 (엘렌을 위한 소네트)

- 피에르 롱사르


당신이 늙어 저녁 촛불 아래

난롯가에 앉아 실을 잣고 감을 때

내 노래를 읊으며 감탄하듯이 말하겠지   

'내가 아름다웠던 시절  롱사르는 나를 찬미했지'


이때 이미 피곤에 지친 눈시울은

졸음에 겨워 모르는 새에 감기다가도

내 자랑스러운 이름, 당신을 찬양한 롱사르라는 이름을 듣고 깨어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난 이미 땅 속에서 뼈도 없는 혼령이 되어

머틀나무 그늘 아래서 휴식을 취할 때

그대는 늙은 노파가 되어 난롯가에 앉아있겠지    


내 사랑을 뿌리친 그대의 교만을 뉘우치리라.

당신의 삶을 사세요, 나를 믿거든,

내일을 기다리지 말고

오늘부터 꺾으세요. 인생의 장미꽃을.




https://youtu.be/XtWEvUnC1Vs

하이든, 교향곡 6번 아침 / 지오반니 안토니니,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



https://www.youtube.com/watch?v=3jk41uzE89s

하이든, 교향곡 7번 낮  / 지오반니 안토니니,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




https://www.youtube.com/watch?v=XF9iY6_76uk


하이든, 교향곡 8번 밤  / 지오반니 안토니니,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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