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고양이와 사는 여자, 프라도미술관
<5> 고양이와 사는 여자, 프라도미술관
그리고 나는 고양이와 함께 사는 입장으로 동이와 다른 부분을 보았다.
대부분의 홈리스들은 개를 여러 마리 키우고 있었는데
개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길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사실 동물과 살아간다는 것은 마냥 행복한 일만은 아니다.
동물들은 말을 못 하기 때문에 세심하게 챙기고, 주기적으로 병원도 데려가야 한다.
나도 우리 고양이 포포를 잃을뻔한 적이 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고,
생명 연장을 위해 돈을 모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길 위에서 사는 아이들은 극심한 더위에 지쳐 보였고,
이 아이들이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검진을 받는지 알 길이 없었다.
우리가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는 게 아니듯 동물들도 동거인을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동물과 살아가려 하는 사람은 자신의 여건을 한 번쯤 돌아볼 수 있다.
머나먼 타국에서 내 생각의 흐름이 너무 멀리 간 것은 아닌가 싶지만,
한 달 동안 더위와 씨름하는 동물들을 보며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쓰레기같이 살아서였을까? 나는 스페인에 오자마자 시차에 적응을 해버렸다.
스페인 시간 밤 09시 한국시간 새벽 03시에 라면을 끓여먹었다.
마드리드 오페라하우스를 바라보고 광장에서 바이올린 즉흥연주를 들으며 진라면을 먹었다.
날이 밝고 우리는 아침으로 하몽과 치즈, 바게트, 요거트, 와인을 마셨다. 하몽의 누린내 절대 용서할 수 없어…
프라도 미술관으로 향했다. 나름 미대생인지라 미술관에는 한 번쯤 가봐야 할 것 같았다.
대학생이어서인지 우리 전공이 미술이어서인지 입장료는 없었다.
08월의 프라도 미술관은 에어컨 때문에 냉동고 같았고, 더위에 헐벗고 떠난 우리는
냉동닭이 되어 실내와 실외를 왔다 갔다 해야만 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뒤러, 벨라스케스, 보쉬 등의 명작들을 내 눈으로 봤다.
스페인은 종교개혁에 반대해 네덜란드 화가의 그림 혹은 종교개혁을 담고 있는 그림이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있는 작품은 뒤러의 그림이라고 한다.
미술관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무표정으로 젖을 먹이는 마리아였다.
서양미술의 대부분은 종교를 빼놓을 수 없는데 그중에서 여성은 대부분 임신, 출산, 양육에 관한 모습만 볼 수 있었다.
여자 나체를 소재로 한 그림들을 너무 많이 봐서 나중엔 그림에 별 감흥이 없어지고, 허연 덩어리로 보였다.
돈을 내고 들은 오디오 가이드는 골 때렸다.
고저 없는 목소리로 읊어주는데 종종 의뭉스러운 말이 나온다.
한 그림에 얽힌 사연을 읊어주는데
“키스를 해주지 않으면 나는 죽소…하고 죽어버렸습니다.”
라고 해설을 해주거나. 그 기계 같은 소리로
“나를 만지지 마시오”라고 읊어주는데 웃음이 안 나올 수 없었다.
보쉬의 쾌락의 정원은 정말 경이로웠다. 지금 봐도 색감이 트랜디하고, 어느 일러스트레이터가 최근에 내놓은 작품 같았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보는데 한국인 가이드가 해설을 해주고 있었다. 슬쩍 껴서 같이 들어보았다.
굉장히 유익했다. 해외에서도 미술 해설을 듣고 공부를 하다니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 학구열이 대단하다.
너무 추워서 밥 먹고, 몸 좀 녹일 겸 나왔다.
나와서 레티로 공원에 갔다. 행복한 이들이 호수에서 배를 타고 있었고, 내리쬐는 햇볕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기록을 했다.
호수가 있는 아름다운 풍경과, 행복한 다동, 히동은 앉아서 그림을 그렸다.
프라도미술관이 허벌나게 추워서 밖에서 몸을 녹이는 데 꽤 오래 걸렸다.
녹이는 김에 밥을 먹으러 야외 테이블이 있는 식당으로 갔다.
메뉴판을 달라고 하니 직원분이 낑낑거리며 굉장히 큰 입간판을 통째로 가져다주셨다.
우리가 외국인이라 큰 호의를 베푸는 것 같아 미안해서 다시 옮겨 놨다.
그러나 알고 보니 모두에게 그 커다란 입간판을 메뉴판이라고 옮겨주는 것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의 친절에 약간 감동했는데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오랫동안 인류의 테마는 종교였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여실히 느꼈다.
예술은 마리아, 예수, 천사 등 종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인류의 영원한 테마가 된 종교를 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사색했다.
아마도 우리 천년쯤 뒤의 우리 후손들은 나와 똑같은 어투로
‘아~죄다 사랑이여’ 하고 우리 세대 인류의 테마를 정의 내리지 않을까?
인류 사랑의 기원이 어디서 부터인지 우리는 알 수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