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에서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카페에서 폼나게 바리스타 일도 해보고 싶은데
거기서도 날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려나,
가서 외국인 친구도 많이 만나고 열심히 일해서 돈 번 만큼 여행도 많이 다녀볼까?
- 지역이동 전 쓴 일기
첫 번째 구직 때야 어디라도 날 뽑아주는 곳이라면 다 좋았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Bill의 추천서와 경력에 추가할 이력도 한 줄 생겼겠다, 왠지 모든 게 잘 풀릴 것만 같은 묘한 자신감과 기대감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패기 넘치게 이번에는 카페에서 바리스타 일을 도전해보고자 혼자서 막연히 계획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커피라고는 아바라(아이스 바닐라 라떼) 말고는 모르는 나이지만, 약간의 소란스러움과 음악이 공존하는 카페만의 분위기가 나는 너무 좋았다. 그것도 외국에서의 카페 바리스타 일이라니 뭔가 멋있어 보였고, 머릿속에는 분위기 있는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에서 커피 향기를 맡으며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커피를 뽑는 그런 로망이 그려졌다.
온라인 지원, 오프라인 지원 따질 것 없이 스타벅스, 세컨드 컵, 아로마 커피, 팀홀튼 등 토론토에 유명하다는 브랜드 카페는 다 지원했다. 근데.. 아무래도 에스프레소 머신을 만져본 적도 없고, 그 흔한 카페 알바 경험도 없어서일까, 이력서를 수십 장을 뿌려봐도 연락도 잘 오지 않았고 면접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한 번은 면접 연락이 와서 metro를 타고 1시간 걸려 다운타운까지 갔었는데, 유동인구가 많은 다운타운 특성상 매장도 손님들로 북적거렸고 분위기도 너무 어수선해 보였다. 일하는 직원들도 일하는 기계처럼 밀려오는 주문지를 보며 커피를 뽑기 바빠 보였다. 일도 일이지만 영어 공부의 목적도 컸던 내게는 그렇게 좋은 환경인 것 같지 않았다. 집에서 출퇴근하기에도 너무 먼 곳이기도 했고... 온라인에 계속 업데이트되는 카페 몇 군데를 더 지원해보긴 했는데, 이대로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처지라, 결국 카페 일에 대한 욕심은 버려야겠다 생각했다.
완전 번잡한 시내도 아니면서 너무 한국 사람들이 넘치는 업타운도 피해서, 미드타운인 Lawrence에서 Englington 역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서 발품을 팔았다. 그래도 한번 경험해봤다고 마음가짐도 더 여유로웠던 게 사실이다. 이전의 경험을 떠올리며 이력서를 줄 때 무슨 말을 할지, 면접 때는 어떤 점을 어필할지 등 멘트 준비를 철저히 했고, 무난하게 면접을 보고, 그리고 합격통보까지 구직 활동 시작 3일 만에 받아냈다.
일하게 된 곳을 Yonge &Englington Centre 안에 입점해 있는 파피루스(Papyrus) ㅡ 다양한 디자인 카드를 판매하고 아기자기한 문구용품이나 선물용 액자나 인형 등을 취급하는 곳이었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해주는 일이 주 업무였고, 일하는 중간중간 진열대를 살펴보며 빈 곳에 상품을 채워 넣으며 정리하고, 가끔씩 고객은 안내를 요청하거나 괜찮은 카드를 추천받길 원하면 같이 골라주기도 하고.. 아직 햇병아리라 신입이라 업무 파악이 다 되진 않았지만, 일단 확실한 건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아닌 것 같다, 이 정도다.
어차피 업무적인 부분이야 일하다 보면 금방 적응되는 거라 별 걱정은 없는데, 문제는 이번에도 역시나 영어 소통이었다. 매니저와의 소통하는 과정에서 자꾸 어긋나는 게 느껴져서 힘들었다. 아일랜드 출신이라더니 특유의 악센트나 발음도 영 적응이 되질 않았고, 말은 또 어찌나 속사포로 뱉어내는지... 그래도 빅토리아에서 몇 개월 살면서 스피킹은 몰라도 리스닝은 많이 늘었다고 생각하던 나였기에 더욱더 당황스러웠고 여전히 한심한 내 영어 실력에 자괴감도 많이 들었다.
아마 나도 나이지만, 매니저인 Becca 입장에서도 비영어권 출신에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직원을 부려야 한다는 중대한 미션을 받게 되어 꽤나 골치가 아팠을 거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당시 나를 면접 본 토론토 파피루스 총괄 매니저 Annosheh가 면접 때 내가 영어를 생각보다 너무 잘해서 되게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도 두 번째 경험이라고 그새 노하우가 좀 생겼는지 나름대로 면접 스크립트도 열심히 준비해 가기도 했고, 진짜 마치 연기자가 대본 숙지하듯 면접에서 나올만한 질문이나 답변, 심지어 암기한 티 안 내려고 중간중간 리액션도 적절히 넣었다. 즉 결과적으로 보면 어뉴쉐이는 그런 내 면접 영어에 철저히 낚인 거다. 그리고 그녀의 칭찬만 믿고 안심하고 있다가 뒤통수 맞은 겪인 베카와 동료들에게 부끄럽지만 뒤늦게나마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