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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길주 Nov 18. 2024

장편소설    "노인과 유산"

14화. 눈꽃속에 핀 것들 

 생과사를 가르는 시간들이였다. 강윤기가 서영을 업고 작업실까지 올라가는 그 길은 험하기도 했지만, 단 일분이라도 빨리 서영의 의식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시간과의 사투만이 절대적이였기 때문이였다. 그러나 강윤기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서영을 덮어주고 자신의 체온을 최대한 서영에게 전달하려고 윗옷을 얇게 입고 그녀를 업은 채로 걷기 시작한 것이 결국 그녀의 의식을 빨리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서영은 강윤기가 그녀를 업고 온몸에 땀에 젖을 정도로 힘을 쏟아서 산길을 올라 작업실 마당에 들어서자 그의 등에서 부시시 몸을 일으키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찬 바람이 강윤기의 뺨과 눈물을 훔치며 산꼭대기로 달아났다. 강윤기는 그제서야 삽십분 정도 너무 긴장하고 힘을 모아서 그녀를 업고 온 탓이였는지 서영을 작업실의 쇼파에 눕히자 마자 타는 목마름으로 그 역시 탈진의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는 얼른 정신을 수습하고 난로 위에 끓고 있던 큰 주전자에서 보리차를 한잔 서서히 서영에게 마시게 하고 자신도 한모금씩 뜨거운 보리차를 마셨다. 창밖에 있는 커다란 참나무위에 눈꽃이 접시꽃처럼 피어 올랐다. 그는 잠시 그때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내를 생각했다. 이혼을 한지 오래 되어서 이제는 아내의 얼굴도 가물거렸지만, 가끔씩 아내가 보고싶었다. 강윤기는 자신이 다니던 대학의 총장 딸과 결혼을 했었다. 그런데 그녀는 여고 때 앓았던 조울증이 재발하며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인데, 그의 장인이였던 대학의 총장은 그가 다니던 대학의 교수였는데, 그에게는 딸의 우울증을 전혀 말해주지 않았고, 심한 조울증으로 딸의 자해가 심해지자 그제서야 그는 서둘러 딸을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키고서야 제자인 강윤기에게 과거 딸의 병력을 말해주며 미안하다는 말 조차 하질 않았다.


 그러나 그의 아내였던 혜림은 참 아름다웠다. 맑은 피부와 커다란 검은 눈동자는 말할 수 없을 만큼 그의 심연을 흔들던 외모였고, 하루 종일 몇마디 하지 않던 그 조용한 몸짓은 어느 귀족의 딸 못지 않은 우아한 자태가 넘치는 여자였다. 아내는 대학에서 도자기를 전공했는데, 강윤기는 그녀가 도자기를 구울 때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의 병은 도자기를 굽는 것으로 치유되질 않았기에 그녀는 끝내 병원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게 되어 그도 프랑스로 그림을 그리러 떠난 것이였다. 그는 장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서영의 아버지인 김화백의 도움을 받으며 그는 의대에서 미대로 전과를 한 것이였다. 그리고 그는 장인의 강요로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어주고 화가가 되었다. 

의사가 되고 싶었던 그의 꿈이 화가로 전환된 것을 그는 기적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것은 의사라는 직업보다는 그는 화가라는 천직을 원했던 자신의 숨겨진 인생의 가장 큰 보석을 발견했기 때문이였다. 그가 꿈꾸었던 모든 것에는 의사로서의 생활이 아닌 화가로써의 큰 꿈이 있었기에 그는 아내를 떠나보내고 그가 원하던 길을 선택한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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