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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길주 Nov 11. 2024

장편소설   "노인과 유산"

13.  다시 찾은 별자리




 강윤기의 산속에 있는 화실을 향해 캄캄한 산길을 따라 둘은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떤 두려움이나 용기도 이 시간에는 필요치 않았다. 오직 생존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만으로 둘은 산 아래 낭떠러지기로 굴러 떨어지지 않고 살아 남아야만 했다. 강윤기의 눈이 핸드폰 불빛 아래서 진지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입술을 굳게 깨물고 있는 걸 서영은 보았다. 자신보다는 이 남자가 더 크게 심장이 뛰고 있으리라는 걸 그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남자가 서영이 신은 운동화에 안심을 하면서 급히 손을 내밀었다. 서영이 남자의 손을 잡자 남자가 급하지만 서두르지 않으며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아직은 눈이 발목을 덮지는 않은 상태였지만 이 상태에서 한 시간 정도만 이대로 눈이 내린다면 눈은 분명 서영의 종아리의 반쯤을 덮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가려고 하지 마시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몸의 중심을 최대한 잘 잡으십시오. 길은 제가 알아서 찾아가 갈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저는 여기서 몇 번 이런 일을 겪어서 혼자라면 크게 걱정하지 않고 갈 수 있지만 서영 씨가 겁을 내실까 봐 걱정이 됩니다. 우리가 빠르게 걷는다면 한 시간 안에 올라갈 수 있어요. 두려워하시는 건 아니지요. 아들은 일단 피아노 레슨 선생님이 오늘밤은 돌봐주신다고 선생님 댁으로 데리고 가셨으니까 크게 걱정하시지는 않아도 될 겁니다. 서영 씨만 겁내지 마시고 우선 제 손을 꽉 잡고 저만 따라오십시오."

남자의 눈은 까맣게 빛이 나고 있었다. 서영은 강윤기를 따라서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손을 잡고 걸었지만 추위는 금세 산자락의 바람을 타고 그녀의 옷 속으로 파고들었고, 그녀는 예상치 못한 추위와 눈길을 밤에 걷는 고행에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빠르고 힘든 호흡이 자주 올수록 서영은 이를 앙물었다. 아버지의 제자인 이 남자에게 자신으로 인하여 갑작스러운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기에 턱이 덜덜 떨리고 추위에 살을 에일 듯한 고통이 와도 그녀는 한마디 불평을 말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오르면 작업실입니다. 이 산길을 조금만 돌면 나오거든요. 십분 정도만 더 걸으면 될 거예요."

강윤기의 숨찬 목소리와 땀에 절은 손바닥이 점점 차가워지며 어느 사이 서영은 자신이 의식을 잃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전 서영 씨가 못 따라오면 어쩌나 하고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는데, 굉장히 체력이 좋으신 편이세요. 한 번도 쉬지 않고 지금 딱 한 시간 걸었거든요."

서영은 강윤기의 목소리를 들으며 순간 온몸에 열이 다 빠져나가고 정신이 몽롱하니 자신이 의식을 잃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강윤기가 다급하게 서영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녀는 더 이상은 서있지를 못하고 버드나무 가지처럼 휘영청하며 눈 속에서 쓰러졌다. 그때 강윤기는 하얀 설원의 끝에서 불어오는 이상하고도 신비한 음악소리가 그 순간 눈발에 엉키어 서영의 몸을 덮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강윤기가 한 번도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어떤 사랑의 향기가 눈발을 흩날리는 바람에 섞이어 들려오는 것과 같이 감미롭고 아름다운 소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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