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맛을 결정하는 요소에는 미각과 후각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과 어느 장소에서 먹었다는 기억 또한 큰 작용을 하는 것 같다. 서귀포에서 바다와 산을 가까이하며 살다 보니 서울에서 살 때보다는 좋은 풍경을 자주 보는 건 참으로 감사한 일상이다. 그러한 멋진 경관을 바라보며 먹는 음식 또한 나의 삶에 또 다른 공감각적 행복을 선사한다.
전국 어디서나 동일한 맛을 빠르고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 곳. 맥도널드. 그곳의 대표 아침 메뉴인 맥모닝 세트를 주문하면 완숙계란과 치즈가 들어간 머핀과 해쉬 브라운 감자튀김, 커피가 함께 나온다. 매장에서 먹기보다는 드라이브 쓰루를 이용해 바쁜 아침, 차 안에서 운전을 해가며 허기를 채우기 위해 먹었던 음식으로 기억되던 이 메뉴를 서귀포에선 환상적인 브런치 메뉴로 즐길 수 있다.
우선 서귀포 법환포구에 이른 아침 차를 세우고,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해안길을 따라 30분 정도 걸어보자. 모닝커피가 생각나게 될 것이다. 차로 돌아가 5분 정도 시내로 올라가면 맥도널드 매장을 찾을 수 있다. 육지에서처럼 맥 드라이브를 이용해 메뉴를 포장주문 한다. 따뜻한 아침식사를 들고 법환리 해안도로 끝 지점으로 내려가 차를 주차시킨다. 범섬이 손에 잡힐 듯한 해안에 돌로 만든 테이블과 의자가 보일 것이다. 파도 소리를 배경음악 삼고,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맥모닝을 즐겨 보시라. 제주 어느 해안의 브런치 식당보다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음을 자신한다.
두 번째로 소개할 곳은 차량보다는 자전거를 타고 갈 것을 권하고 싶다. 서귀포에서 출발한다고 가정했을 때, 동쪽 해안을 따라 20km 정도 가면 만날 수 있는 남원포구. 칼 호텔을 지나 검은여 해안, 보목항을 지나 쇠소깍 까지 이어지는 자전거 길은 올레 6코스 길이기도 한 환상적인 라이딩 코스이다. 멀리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페달을 밟다 보면 바다 위를 달리는 기분이 들 것이다. 쇠소깍을 지나 남원 방향 도로를 달리다 보면 위미리를 지나게 된다. 운 좋게 벚꽃이 필 때 이 길을 지나게 된다면 서울의 윤중로에서 많은 인파 속에 보았던 벚꽃과는 확연히 다른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겨울이면 동백꽃도 많이 피는 예쁜 마을 위미리를 뒤로 하면 남원 큰 어멍 해안을 지나 남원 포구에 닿기 전 바닷가의 노란색 컨테이너 집을 찾을 수 있다. 이 노란 집이 두 번째 맛집이다. 간판은 따로 없고, 해안도로에 말려 놓은 오징어 줄을 따라가다 보면 찾을 수 있다. 이곳에선 직접 말린 반건조 오징어를 즉석에서 맥반석에 구워준다. 옆집인 매점에서 캔맥주를 함께 사서 바다 짠내를 느끼며 씹는 오징어 맛이란 한 시간 넘게 달려온 내 몸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성산포 쪽에 위치한 목화 휴게소도 오징어로 유명하지만, 이곳 남원포구의 노란 집에서 구워주는 오징어 또한 환상적임을 자신한다. 아쉽게도 제주 앞바다에서 잡은 오징어를 구워주는 건 아니라고 한다. 한반도 근처에서 이렇게 큰 오징어를 잡기 어렵다는 걸 그때서야 알게 되었지만 막 구운 쫀득쫀득하고 두툼한 오징어 살을 고추장, 마요네즈 소스에 찍어먹는 맛이란 호불호가 없을 만큼 인기 좋은 간식거리이다.
세 번째 맛집은 시원한 바다 수영 후 먹어보길 권하고 싶다. 한 낮을 피한 오후 5~6시 정도의 늦여름. 해가 점점 져물어 가는 시간, 편한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구두미 포구를 찾아가 보자. 유명한 해수욕장과는 달리 많지 않은 제주 도민들이 더위를 식히려 찾아오는 숨은 명소다. 간조와 만조 때의 차이에 따라 물 높이가 차이가 나긴 하지만 떨어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뜨거워진 몸을 구두미 바닷물에 던져보자. 어떤 휴양지의 풍경도 부럽지 않게 멋진 여름 바다를 즐길 수 있다. 물놀이를 한참 하다 보면 출출하기도 하고, 따뜻한 국물이 생각 날 것이다. 슬리퍼를 다시 신고 포구를 올라오면 오래된 스낵카 한 대가 보일 것이다. 이곳이 세 번째 맛집이다. 시원한 음료들도 팔긴 하지만, 이 스낵카에선 오뎅과 떡볶이를 먹어야 한다. 스낵카라고 맛이 없거나 한철 장사라고 오해할 수 있지만, 내가 3년 동안 이 길을 다니는 동안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더욱 맛있게 먹고 싶다면 간단히 포장해서 포구 방파제 끝에 앉아 파도의 물보라를 맞으며 먹어보길 권해본다. 아마도 인생 떡볶이와 오뎅으로 기억될 것이다.
날씨만 허락된다면, 서귀포의 뷰 맛집들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이 모든 맛집들의 가장 큰 맛은 서귀포의 자연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