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을 먹을 때, 된장, 김치찌개 다음으로 자주 먹는 찌개를 고르라면 아마도 순두부찌개이지 않을까 싶다. 부들부들하고 고소한 순두부를 큼직하게 숟가락으로 떠 칼칼한 국물과 함께 먹으면 하루의 고단함이 부드럽게 풀어지는 맛이다. 추운 겨울이면 더욱 생각나는 이 맛은 다른 두부로는 대체되지 않는 부드러운 순두부만이 가능한 음식이다.
한국인이라면 어려서부터 먹어온 두부는 대표적인 식물성 단백질인 콩을 주원료로 만든 식재료이다. 고기보다 저렴한 가격인 데다 건강식으로 많이 쓰이기도 하고, 음식에 들어갔을 때 그 쓰임에 따라 여러 가지 맛을 낸다. 넷플렉스에서 방영된 흑백 요리사에서 두부를 주재료로 경연자들이 데쓰매치를 벌여 한 명씩 탈락하는 장면에선 두부로 평생 먹어 본 음식이 몇 가지였던가 세어보기도 했지만, 개인적인 입맛으론 바로 만들어 낸 뜨끈한 모두부에 김치를 얹어서 먹는 맛이 최고일 거라 생각했었다. 간혹 콩의 비릿한 맛이 맞지 않아 두부를 먹지 못하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간을 하고 적당히 익혀서 비건 요리로 고기대신 많이 쓰기도 한다.
순두부찌개를 끓일 때의 팁은 고추기름이다. 일반 가정집에서 자주 쓰지 않아 기름에 고춧가루를 넣고 볶아서 향을 내기도 하지만, 맛있는 순두부찌개를 만들고 싶다면 고추기름으로 밑 재료들을 볶아보길 권하고 싶다. 기호에 따라 조갯살이나 소고기 다진 걸 넣기도 하는데, 개인적인 취향은 바지락과 새우살을 야채와 함께 고추기름에 볶아 매운맛을 더하고 육수를 붓고 끓이다가 순두부를 큼직하게 넣고 간을 맞추는 편이다. 순두부에 간이 배었다 싶으면 계란을 뜨거운 국물이 많은 쪽에 터트려 준다. 기호에 따라 찌개에 불을 끄고 참기름을 둘러주면 풍미가 더욱 좋아진다. 순두부찌개를 먹을 때에는 묵은 밥보다는 갓 지은 따끈한 밥과 같이 먹는 것이 찌개의 맛을 극대화시켜준다. 만드는 방법이 손에 익으면 다른 찌개들보다 훨씬 간단하게 요리할 수 있는 일품요리라 생각한다.
추운 겨울밤. 칼칼한 국물보다는 따뜻한 건더기가 들어간 찌개가 생각난다면 콩비지찌개가 제격이다. 예전엔 콩물에서 두부를 빼고 남은 찌꺼기를 모아둔 비지로 찌개를 끓였었다. 지금도 그렇게 먹기도 하지만 입맛이 예전보다 업그레이드된 탓인지 요즈음은 콩을 불려 곱게 간 콩물 자체로 비지찌개를 많이 끓인다. 콩을 불리고 껍질을 가려서 믹서기로 곱게 가는 일이 번거롭다면 순두부처럼 마트에서 갈아놓은 비지를 사면된다. 콩 본연의 구수한 맛을 좋아한다면 소금으로 밑간을 하고 간장 양념장을 따로 만들어 슴슴하게 먹는 하얀 콩비지를 만들 수도 있다. 하얀 콩비지를 만들 때에는 돼지고기나 해물보다는 푹 삶은 돼지 등뼈를 써 보길 권해주고 싶다. 이 돼지 등뼈를 넣은 하얀 되비지찌개는 내가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했던 해에 적은 생활비로 학교를 다니면서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던 추억의 음식이기도 하다. 학교 식당 밥이 물릴 때면 한 번씩 찾아가던 학교 앞 기사식당의 대표 메뉴였던 되비지찌개. 찌개를 시켜놓고 무한리필 되는 공깃밥을 세 그릇씩 먹었던 그때의 포만감은 지금은 누릴 수 없는 젊음의 식욕이었다. 먹고 돌아서면 배고팠던 그때의 청춘이 생각나는 음식이기에 되비지를 먹을 때면 평소보다 밥그릇에 밥을 듬뿍 담아본다. 구수한 비지찌개에 들어간 실한 돼지 뼈를 뜯어먹고 구수하고 되직한 비지를 양념장에 비벼 밥과 함께 먹으면 고소함의 끝을 느낄 수 있다. 맛있게 익은 김장김치가 있다면 당연 빨간 비지찌개를 끓여야 한다. 돼지 앞다리 살을 듬성듬성 썰어 넣고, 다진 파, 마늘과 함께 볶다가 쌀뜨물을 조금 붓고 신김치를 듬뿍 넣어 한소끔 끓여준다. 부드러운 비지를 아끼지 말고 넣고 중불로 저어주며 은근히 끓여주면 된다. 기호에 따라 김치국물을 추가로 넣어주면 좀 더 칼칼한 비지찌개를 맞볼 수 있다. 비지찌개를 맛있게 먹다 보면 냄비의 바닥이 보일 때쯤, 남은 밥을 털어 넣어 보자. 식탁 위에 남은 밑반찬을 적당히 넣고 김가루와 참기름을 두르고 비벼먹으면 색다른 비빔밥도 덤으로 맛볼 수 있다.
같은 콩을 재료로 하는 두 찌개이지만 확연히 다른 질감과 맛을 보여주는 요리들이다. 저녁 약속이 많은 연말이나 외식이 잦은 바쁜 일상으로 속이 편하지 않을 때 따뜻한 밥 한 그릇과 두 찌개를 먹는 것 만으로 고단했던 나의 몸에게 주는 선물과도 같은 음식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