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은 쉬운데, 이야기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

언어의 온도차

by 긍정바디연구소장

[다이어트, 비콰이어트]를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떠올려 보면, 그 순간들은 크게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어요.
생각해 보니, ‘연구자’였던 저 자신과 ‘이야기를 전하려는 저 자신’ 사이를 오가며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첫째. 연구 언어를 일상의 언어로 바꾸는 일


제가 해온 연구는 ‘바디 리터러시’, ‘몸 담론’, ‘자기 몸에 대한 감각 회복’ 같은 키워드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런 말들은 학계에서는 익숙하지만, 일상 언어로는 너무 멀고 딱딱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책을 쓰면서 처음 실감했습니다. 솔직히 내가 다시 논문을 읽어도,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 수두룩했어요.


논문에서는 용어를 ‘정의’하고, 인용을 통해 논리를 정교하게 쌓아갑니다.
하지만 책에서는 문장을 ‘말 걸듯’ 써야 했어요.
논문은 객관적 진술을 추구하지만, 책은 주관적 고백으로 독자와 감정적으로 연결되어야 하거든요.


예를 들어, 책 제목에 ‘다이어트’라는 단어를 넣은 건 저에게도 놀라운 선택이었어요.
연구자로서 저는 ‘다이어트’를 핵심 주제로 삼은 적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몸 담론 분석’이나 ‘바디 리터러시 이해하기’ 같은 제목은 아무리 좋아도 독자에게 말을 거는 언어는 아니었어요. 아무도 들어보지도 못한 것을 흥미를 느끼진 못할 거 같았거든요.


그래서 결국 가장 일상적이고 강렬한 단어인 ‘다이어트’를 꺼내 들었습니다.
그 단어는 연구의 출발점이 아니라, 독자와 연결되는 첫 번째 다리가 되어주었죠.

하지만 이 전환은 제게 꽤 큰 이질감을 줬습니다.
논문에서는 '나는'이라는 말이 거의 등장하지 않아요.
반면 책에서는 '내가 느낀 감정', '내가 겪은 일'을 써야 했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말 한마디를 쓰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정확한 근거 없이 단정하는 건 아닐까’,
‘반박의 여지가 있진 않을까’,
‘내가 이 주제를 가장 잘 아는 것도 아닌데 말해도 될까’
하는 두려움이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죠.

그때 처음 느꼈어요.
연구자는 자기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걸요.




둘째.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낼 것인가?

두 번째 어려움은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었습니다.
10년 넘게 연구해 온 주제들이 있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어요.
저의 입장에서는 하나하나 다 중요해 보였고, 놓치고 싶지 않았죠.

하지만 책은 논문과 달리, ‘모두 말하는’ 글이 아니라 ‘선별해서 말을 거는’ 글이어야 했습니다.
이론을 다 담기보다는, 질문을 중심에 두고 독자의 경험과 만나는 방식을 찾아야 했어요.

예를 들어, ‘몸매 지상주의’를 다룰 때 원래는 “미디어 이미지 분석”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책에서는 이렇게 바꾸었습니다:

“섹시한 몸매를 욕망하게 만든 미디어: 몸의 상품화는 문제가 될까?”

이런 질문은 독자에게 ‘읽히는 질문’이 되면서, 연구자였던 저 역시 이론이 아닌 현실 속에서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장치가 되어주었어요.




셋째. 흩어진 연구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 일

세 번째 도전은 연구 결과들을 ‘하나의 내러티브’로 구성하는 일이었어요.
논문은 각각의 실험과 분석, 사례로 나눠져 있지만,
책은 ‘한 사람의 흐름과 시선’으로 엮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중 하나가 제가 연구했던 여성 운동선수의 성 상품화라는 주제입니다.
논문에서는 “여성 엘리트 운동선수의 성 상품화에 대한 미디어 담론 분석 연구”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책에서는 이렇게 질문했죠:

“2024 파리올림픽에서 인기를 끈 오상욱 선수의 매력 포인트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매력자본 이론을 바탕으로, 오상욱 선수의 매력을 스토리텔링해보려 시도해 보았습니다. 이 질문은 단순히 대중적 흥미를 유도하는 문장이 아니라, 연구자의 질문을 대중의 언어로 해석하는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어요.
이야기를 만드는 건, 내가 다시 주체가 되는 일이구나.


20250617_1721_학자의 고뇌하는 책상_simple_compose_01jxyfjba1e8g9rk6ssc1bge1w.png


이 세 가지 도전은 저에게 글쓰기란 단순히 학문을 쉽게 말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었다고 느껴져요.

그래서 이 책은 연구자로서의 성취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의 나의 서사를 연결하는 글쓰기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글을 쓰며 알게 된 건,
내가 겪은 어려움이 비단 연구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언어를 찾고 싶어 하죠.
하지만 그 언어는 너무나 자주, 누군가가 정해놓은 말속에 갇혀 있곤 해요.

혹시, 당신도 그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말하는 순간 그 말이 어색해지는 느낌.
내가 느낀 감정을 설명할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순간.
또는, 내가 이걸 말할 자격이 있나 망설였던 순간.

이 책을 쓰며, 저는 그런 순간들과 싸웠고, 그 싸움을 통해 조금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논문을 쓸 때도,

제가 알고 싶었던 것, 정리하고 싶었던 것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대중서를 쓰는 일도 결국은 같았어요.
달라진 건 ‘형식’ 일뿐,
본질은 내가 알아낸 것을 내 언어로 다시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표현의 방식이 바뀌었을 뿐인데,
그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감정, 새로운 나를 만나는 경험이 되었죠.


혹시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내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나만의 언어를 다시 찾아가야 했던 순간.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정말 ‘내 말’을 하고 싶었던 하루.

그런 순간이 있었다면, 그건 이미 당신이 ‘자기 언어’를 만들고 있는 중이라는 뜻일지도 몰라요.


오늘의 질문
당신은 지금, 어떤 언어로 말하고 있나요?
그 언어는 진짜 ‘당신’의 말인가요?


한 줄 인용

"우리가 쓰는 말은 곧 우리가 사는 방식이다."– 조지 오웰


[다음 글 예고]

“바디 리터러시? 몸에도 읽는 법이 있다면?”
다음 글에서는 제가 이 책에서 처음 소개한 개념,
‘바디 리터러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몸을 읽고, 해석하고, 돌보는 힘—그 출발점부터 나눠보겠습니다.


이 글은 [다이어트, 비콰이어트: 내 몸에 새로운 생각을 입혀라]의 집필 과정을 담은 브런치 연재 시리즈
<다이어트, 비콰이어트: 미리보기> 내 몸에 묻는 열 가지 질문의 두 번째 글입니다.
� [1편 보러 가기]
� [책 보러 가기 (교보 문고 링크)]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6099344


#다이어트비콰이어트 #바디리터러시 #몸의문해력 #다이어트 #몸읽기 #연구자에서작가로 #책쓰기기록 #브런치북연재

keyword
이전 01화내 몸에 말을 걸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