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
외모지상주의라는 말이 있는데 외모가 뛰어나면 그 조건만으로 호의를 얻어 원하는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이죠. 매사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어떤 열악한 조건 특히 외모에 있어서 그러하다면 쉽게 외면되거나 배척되는 일이 반복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반복은 아니지만 삼국지의 방통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소위 심성이 곱고 아름답게 되기가 힘들다는 것이죠.
반면 외모에 대해서 갖는 자부심이 역력하게 드러나는 경우도 있죠. 그런 경우도 접해 보니까 외모 빼놓고 다른 면은 별로라고 평가받아 외모 점수가 반영이 안 되는 경우가 반복적일 때도 인성이 원만하기가 어려워지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소위 성격이 까칠하다고 하고 욱하며 반발하는 심경이 표출되는 사례가 많은 경우 외모로 인해 호의를 얻지 못한 경우가 반복되어 그로 인해 무의식적인 반감이 쌓여 다른 면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합니다. 사상도 무신적이 되어 정치적으로도 좌파가 되기 쉽다고 합니다.
혁명에 가담하여 반감을 가지고 있던 기득권 부르주아를 타도하는데 앞장을 서기도 한다는 것이죠.
현 인간 사회에서 이상적이지 않는 면면들은 한 둘이 아닙니다. 타의에 의해 주어진 조건들이 결코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들이 많이 있죠.
유물론이나 무신론 같은 사상에 빠지게 되는 원인이 되는 것이죠. 무력이나 정치적 권력을 지향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무엇도 소위 까칠하고, 거칠고, 사납고, 반항적인 태도의 정당한 원인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문제들은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구가 80억이면 80억 개개인 모두에 대한 개인적 우주적 관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근원을 항해 두드리는 행동을 반복하면 근원적인 해결의 문이 열릴 수 있습니다. (누가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