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lyrosophie 19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너의 음악 취향은(2)

[아트팝과 일렉트로닉] Caroline Polachek과 Charli..

by harmon Feb 26. 2025
아래로

아트 팝이나 하이퍼 팝, 일렉트로닉 장르에서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손에 꼽지만 쉽게 입문할 수 있도록 도와준 아티스트는 단언컨대 캐롤라인 폴라첵(Caroline Polacheck)이다. 2008년부터 일렉트로닉 밴드 체어리프트의 프런트우먼으로 활동하다가 솔로로 전향해 쉴 새 없이 내실을 다졌으며 PC 뮤직의 프로듀서 대니 할과 손을 잡은 이후 독창적인 팝의 레시피를 개발하여 슬리퍼 히트 앨범 <Pang>(2019)으로 촉망받는 싱어송라이터로 자리매김했다. 팬데믹을 뒤로하고 Dua Lipa의 투어와 스튜디오 녹음, 원격 작업을 전략적으로 병행하며 소포모어 <Desire, I Want To Turn Into You> 이룩했으며 작년 2월 14일에는 에디션인 <Desire, I Want to Turn Into You: Everasking Edition>로 입지를 굳혔다. 최근 활동으로는 이후 설명하게 될 팝스타 Charli XCX의 최근 정규 앨범에 수록된 'Everything is romantic'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바 있다.


디지털 음악 속 아날로그 웨이를 걷는 Polachek은 분명 소닉 아키텍트이고, Kate Bush, Björk, Celin Dion 등을 비롯해 여성 아티스트를 조목조목 파고드는 일에 대하여 폴라첵은 거부할 수 없는 힘찬 팝디바의 순간들을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Dan Nigro가 작사에 참여한 오프닝 트랙 'Welcome to my isalnd'부터 그 기세에 압도당한다. 폴라첵은 두 옥타브를 올라가며 타잔처럼 날카롭게 부르짖는데, 아웃트로에서 휘몰아치는 일렉기타와 리드미컬한 효과음이 리스너를 지대한 음악세계로 이끈다. "내 섬에 온 걸 환영해 날 좋아하길 바라, 떠나지 않길 바라." 이후 폴라첵의 인공섬에서 플라멩코식 일출을 보게 된다. 스파게티 웨스턴 음악을 건져낸 'Sunset'은 팬데믹 당시 세가 보데가와 떠난 스페인의 향취가 느껴진다. "그래서 후회는 없어 왜냐하면 네가 이글거리는 나의 일출이고 평생 겁먹지 않는 걸." 'Billions'는 앨범의 하이라이트 트랙으로 코르누코피아처럼 풍성한 사운드 메이킹을 연출하고 트리니티 합창단을 엮어 출구 없는 섬의 미로를 밝혀낸다.

트립 합, 프로그레시브와 아방가르드적인 요소를 전부 가지고 있지만 어떤 형식의 장르에도 구애받지 않기에 청취하기에도 고루하지 않다. <Desire, I Want To Turn Into You>는 팝의 실험장이자 전자음을 효과적으로 집약시킨 복합물에 가까운데, Grimes의 피처링으로 골격을 절충시킨다. Danny L Harle과의 협업을 통해 휘익 부르는 휘파람과 키득키득 변조된 웃음을 곁들인  리듬과 재즈 베이스가 만나고('Bunny Is a Rider'), 오케스트라 히트 스타일링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음악가 소피에게 헌정하며('I Believe'), 브레이크 비트를 몇 방울 떨어뜨린다('Smoke'). 백파이프가 일품인 'Blood and Butter'에서 무아지경의 순간을 만끽하다가 벌스와 코러스의 서사에 관계없이 흘리듯 노래하는 'Pretty in Possible'은 환상을 깬다. 전자에서는 'Wikipediated' 같은 자신만의 언어가 특이하게 발음되고(아홉 번째 트랙 'Hopedrunk Everasking'도 실제로 존재하는 합성어가 아니다) 후자에서는 흉성과 두성을 넘나들며 오토튠 같이 느껴질 만큼 흐느낀다. "점점 어지러워지면서 그런 자유를 견딜 수가 없어져."


앨범은 제66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베스트 엔지니어드 앨범(클래식 제외)의 후보로 지명되었다는 점에서 짜임새가 강조되는데, <Desire, I Want to Turn Into You: Everasking Edition>에 수록된 보너스 트랙도 차기작에 대한 기대를 모으며 막간을 장식한다. 각각 Ben Deitz와 Operating Theatre classic, Oneohtrix Point Never의 곡을 커버한 'Coma', 'Spring Is Coming With A Stawberry In The Mouth', 'Long Road Home'이 수록되어 있다. 그중 'Dang'발랄하고 종잡을 없으며 드럼 머신 모듈과 백조와 인간 사이에 있는 의태어가 추가돼 미묘한 풍자와 군살이 붙는다. 우연히 <레이트 쇼 위드 스티븐 콜베어>에서 본 Polachek의 퍼포먼스를 본 적이 있었는데 TED 강연 스타일이 미학적이고 독특해서 기억에 남았다. "메리 포핀스는 나처럼 지갑을 열었지, 나처럼." 화산과 백조의 비유는 물론 MV의 안무 속 상징에서도 삽입되던 고대 그리스 신화에 대한 모방은 예술적 기교를 더한다. 그렇다면 앨범 커버 속에 담긴 지하철의 암시와 주제의식의 연관성은 어떠한가.


주제는 'Butterfly Net'의 서사적인 스토리에서 잘 드러난다. Polachek은 'Butterfly Net'에 대해 "무형의 어떤가를 붙잡으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빗댄 말"이라며 "상실과 무언가를 간직하려는 충동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야기"라고 말한 바 있다. (<spotify>) 트랙의 순서도 9. Hopedrunk Everasking이 영원하지 않은 세상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깨닫는 덧없음이라면, 10. Butterfly Net에도 자연스레 연결이 되며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사실 런던 트리니티 합창단의 화음과 60년대 이탈리아 음악의 리버브와 같은 복고적인 면은 곡의 피처링에 참여한 Weyes Blood의 정규 4집 앨범 <Titanic Rising>과도 연관이 있다. <Titanic Rising>의 커버에 들어간 침실은 서구 문화권에 사는 젊은이들이 창조한 잠재의식적인 제단이자 원형(元型)인 반면 커버 속 지하철과 터널은 곧 우리의 무의식이자 자신이 되어가는 본질적 의미를 담는다. 두 작품 어느 쪽이든 사람들에게 심리 속 기저에 있는 전제 조건을 일깨우는 것에 미학이 있다고 볼 수 있겠고, 반복되는 욕망을 깨닫고 이를 긍정하며 생기는 자아의 변화 과정을 그리는 것일 테다.

Weyes Blood와 Caroline Polachek

원초적인 자아 탐구와 사랑의 영원성, 소중한 이를 상실하는 경험은 보편성을 띠는 주제인데 Weyes Blood의 <Titanic Rising>도 그렇다. Natalie Muring은 패러다임의 변화에서 무력감과 허무한을 느낀 탓인지 60-70년대의 클래식한 소프트 록을 전체적으로 반영한 것도 납득이 된다. 미래를 단순히 비관하기보다 희망을 가지고 대처하고자 과거의 경험과 축복을 복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Joni Mitchell과 Karen Carpenter, Carole King 등 불멸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를 떠올리게 하는 목소리는 고전적이고 교향악적이며 성숙한 면모를 내비친다. "기성세대들이 가진 것만큼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이 세상에서 성장해 가며 겪는 트라우마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었다." 특히 'Movies'에서는 희망과 사랑에 대한 동경을 넘어 영화가 안겨준 거짓된 신화에 실망하지만 한편으론 어릴 적의 경험에 대한 갈망 때문에 그 일부가 되고 싶다는 모순에 당착하고 있다. 앞으로의 공백은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아래는 연관된 주제를 담은 수록곡 'Something to Believe'에 대한 리뷰이다.

'Something to Believe'는 삶을 살아가며 의지할 수 있는 무언가를 염원하고 찾기를 강렬하게 희망하는 Natalie Muring의 자기 고백록이다. 곡에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정서적인 불안감과 상실된 목표, 씁쓸한 사랑과 같은 허무함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첫 번째 벌스에서는 사라진 동기와 무기력한 자신의 상황에 대해 토로한다. "오늘 커피를 많이 마셨어, 흐트러진 나는 가지고 있던 모든 걸 잠시 내어줘야 했지"라는 가사로 시작하며 점차 이울고 있는 의지로 임계점을 고스란히 넘을 듯 위태롭다. 이후 텅 빈 상자 속에 있던 잊힌 진주ㅡ과거의 영광, 행복, 희망ㅡ와 불길을 떠나간 소녀ㅡ열정이 식어버린 무력한 여성ㅡ를 메타포로 암시한다. 단층선(Fault Line)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어긋난 현대사회를 가사라는 서술 방식으로 표현하는 하나의 알레고리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 벌스에서는 의미와 가치가 퇴색된 사랑에서 싹트는 권태기를 발견하고 있다. "누구도 같은 방식으로 너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우리 중 일부는 방황해서 나는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두며 멀리서 걸었지." Weyes Blood는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세상 속에서 사랑만큼은 결락되지 않은 진실이라는 걸 확증하고 싶어 한다. 이는 과도한 불안과 같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어 한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랑조차 현대에 와서는 성경 속에 존재하는 불확실한 바빌론의 탑 같고, 이마저도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절망을 선사할 수 있다. 코러스와 브리지, 특히 브릿지는 4분 45초라는 러닝타임 내내 청자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이다. "마침내 죽음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는데, 유사(流沙)에서 빠져나와 할 수 있는 걸 해보겠어 / "눈물은 나오지 않지만 그저 엎드려서 흐느껴 울었어, 볼 수 있는 무언가를 나에게 줘." Blood는 이번 곡이 "진저리 나는 믿음 속에서 성장한 그 이후의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애걸복걸하는 내용"(<엑스프레스>)이라고 말한 바 있다. 기독교적인 진리 속에서 살다가 빠져나와 신념의 투쟁과 도피를 반복했던 부조리한 실존의 경험을 회억하는 것이 이변에 깔려있다. 그러나 기악적으로는 청자에게 풍부하고도 고전적인 미를 더하여 믿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이상적으로 주입한다는 쪽에 무게가 더 실릴 것이다. 'Something to Believe'는 결핍된 조각을 끼워 맞춰서 플레로마 상태에 이르고자 하는 무궁한 욕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덧붙이며

일렉트로닉 팝이자 하이퍼 팝 장르의 대명사 격인 Charli XCX를 추천드린다. Charli는 2013년 데뷔 앨범 <True Romance>팝 시장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하며 대중적인 사운드를 구현했다. 이후 하이브리드, EDM, 하우스 등을 포함해 믹스테이프와 EP로 장르적 실험을 거세게 이어나가며 <Sucker>에서 메인스트림을 달궜다. 커리어의 분기점이 되는 2019년의 <Charli>부터는 팬들과의 소통을 반영하며 내면의 솔직한 감정을 담아내고 있다. 특히 24년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한해를 달궜던 <brat>으로 커리어하이를 달성했다. 기존의 여성 신체와 얼굴이 지속적으로 노출된 팝 음악 커버 아트의 관행에 대한 불만과 저항을 강력하게 전달하며 트렌드와는 거리가 동떨어진 디자인, 클립 파티 문화 '레이브'와 인터넷 문화, 변질된 페미니즘과 여성성을 주제로 한다. 제67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9개의 부문 후보로 올랐고 머큐리 후보에도 지명되며 하이퍼 팝 새 역사를 쓰기에 이르렀다. "저는 대중문화에 대한 우리의 기대, 즉 어떤 건 왜 선하고 허용되는 것으로 간주되고 어떤 것은 나쁜 것으로 간주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습니다."

Charli xcx

Charli xcx 추천 곡

Von Dutch

Track 10

claws

Vroom Vroom

Gone


아트 팝&일렉트로닉 추천 앨범

Rina Sawayama의 <SAWAYAMA>

Grimes의 <Art Angels>

Björk의 <Homogenic>

Kate Bush의 <Hounds of Love>

Frank Ocean의 <Blonde>

Gorillaz의 <Plastic Beach>

FKA twigs의 <EUSEXUA>

Lorde의 <Melodrama>

Magdalena Bay의 <Imaginal Disk>

Sufjan Stevens의 <The Age of Adz>

이전 18화 너의 음악 취향은(1)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