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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Jan 09. 2023

나의 미치게 깜깜한 이웃

3



원하는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처음으로 시간이 빨리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유치하지만 내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그와 나는 퍼레이드를 기다리며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무언갈 딱히 하지 않아도 옆에 있기만해도 좋은사람. 그런 사람을 만난것만 같았다. 마침내. 드디어.


"소풍 이후로 퍼레이드는 진짜 오랜만이예요. 아니 놀이공원 자체를 진짜 오랜만에 가는 것 같아요"

신나서 쉴새없이 재잘대는 모습을 보며 그는 참새같다고 놀렸다. 뭐라고 불러도 좋았다. 아무렇게나 불려도 그것이 사랑으로 쓰여질 것을 미리 알았다.


놀이기구를 타는 수준이 둘다 비등비등해서 주로 미취학아동 수준에서 이뤄졌다. 회전목마나 관람차를 탔다. 수준낮은 시시한 놀이기구를 탔는데도 비명이 나올 지경이었다.


너무 행복해서 나오는 비명같은 것들. 쉴새 없이 웃음이 나왔다.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그것은 경이로우면서도 낯설면서도 더 가까워지고 싶은 이상한 살랑살랑 바람 같은 마음이었다. 마음에 한폭의 바람이 그림처럼 일었다.


-


기다리고 기다리던 퍼레이드가 시작되자 그는 눈을 떼지 못했다. 어쩌면 유치한 것은 그일지도 모른다. 아니, 순수하다고 해야하나. 반짝 반짝 빛나는 눈으로 깜빡이는 것도 잊은 사람 같았다. 손을 흔드는 화려한 불빛들과 몸짓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때가 왔다고 느꼈다. 처음이었다. 마음을 꺼내어 보여줄 수 있다면 늘 망설임 없이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제발 그런기회가 오기만하라며 스스로에게 호언장담 했었다.


"저 할말 있어요"


그의 따스한 눈동자를 바라보자 떨리던 심장이 일순간 멎었다. 터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떨리면 오히려 침착해진다는 걸 깨달았다.


"좋아해요. 제가 좋아해요"


입술까지 아득한 영원의 거리 처럼 느껴졌다. 영원의 거리를 찰나처럼 날아서 닿았을 때 마음속에서 폭죽이 터졌다. 최고의 불꽃놀이였다.


어떤 불꽃이 터졌는지 훗날 그가 보지 못했다고 투덜거렸지만 그의 미소에서 같은 감정을 느낀다. 우리는 그날 가장 아름다운 불꽃을 그렸으리라. 입술을 떼고 이어서 말했다. 처음이에요. 이렇게 고백한거. 그러자 그가 늘 웃던 해사한 웃음으로 말했다.


"나도 처음이야. 남자랑 입 맞춘거"


웃는 그 미소가 소년 같이 아름다웠다. 불꽃 보다 더 화려하게 빛났다.


-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말했다. 영원이 두렵지가 않다고. 그저 두려운건 어둠이라고 그에게 털어놓았다. 깜깜한 어둠이 너무 두렵다고. 있는 그대로 인정받지 못한 시간들이 무서웠다고.


남자가 남자를 좋아할 순 없는거라고 손가락질 받을 때마다, 그 손가락질의 대상이 사랑하는 가족들이라는 것이 역겹게 지겨웠다고.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그랬는데도 그는 눈가를 쓸어주었다.


"백년을 넘게 살면 말이야. 흔히들 지겨울거라 말하지. 외로움도, 쓸쓸함도, 아픔도. 감정까지 지겨울거라 판단할지도 몰라. 그런데 알아줄래? 늘 이별은 어렵고 혼자는 쓸쓸해. 이제는 너에게 영원을 말하지 못하겠어. 우리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지금 사랑한다고 말하자"


상상력을 발휘해도 잘 그려지지 않았다. 죽고나면 혼자 남겨질 그의 모습이. 그 깜깜함의 깊이가 그려지지 않았다. 그려지지도 않으니 순간 너무 무서웠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 광활해서 끝도 시작도 없는 밤 하늘, 도저히 피할길 없는 폭우.


그 모든 것들이 닥칠 때. 소리소문 없이 다가왔을 때. 그 무서움이 바로 영원이구나. 그리하여 영원히 사랑한다고 감히 말할 수 없음을. 그건 너무 슬픈 고백임을 알았다.


-


잘 이별하는 방법이 이 세상에 있을까. 되뇌어보다 잘 이별하고 싶어졌다. 세상에 절대 없다고 하는 걸 해보고 싶었다.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고 날카롭게 칼을 들이미는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여기있다고. 지금껏 여기 살아있듯. 누구를 사랑하든 숨지 않아도 되듯. 아름답게 그렇게 헤어지자고.


"내가 죽으면 내 피를 마셔줘요. 영원이라는 말이 얼마나 힘든지 이해해요. 그래서 순간이라도 더 깊이 함께하고 싶어요. 혈액이 당신의 몸속 곳곳이 심장을 지나 모든곳을 한번 돌면, 우리는 영원히 함께하지 못해도 완전한 하나가 될 수 있어요. 당신을 완전히 이해하고 싶어요"


그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


나의 미치게 깜깜한 이웃에게.


넌 고집불통, 꼴통, 깜깜한 영혼.

거기선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여기보다 더 편할지도, 아님 여전히 쓸쓸할지도.

사랑하는 연인에게 피를 마셔달라고 하는건 네가 처음일거야.

어떤 맛이었을지 알려달라고 했지?

약간 시큼하고, 짭짤하고, 비릿하고.

어쩌면 좀 더 달았나 싶네.

이정도면 네가 말하던 아름다운 이별일까. 아직 나는 잘 모르겠어.

너보다 수없이 많은 이별을 경험했는데도 모르겠어 나는.

깜깜한 밤의 끝이 어딘지.

막막함의 시작은 어딘지.

끝과 시작이 모두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부디 그곳은 시작과 끝이 선명하기를.

눈이 부시기를.


추신 : 앞으로 살아갈 나날들 속에 네가 말하는 미래도 포함되어 있기를. 내가 목격하면 꼭 말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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