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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Mar 04. 2023

엄마는 너무 자주 슬펐고 나는 자주 울었다


가엾은 엄마는 너무 자주 슬퍼서 나도 같이 슬픔에 빠지곤 했다. 엄마의 감정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기 싫었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엄마가 웃으면 나도 웃었고, 엄마가 슬프면 나도 슬펐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였다. 비록 엄마는 내가 아니었지만.


그래서 지독한 외사랑이었다. 엄마를 향한 짝사랑은 지독히도 외로웠다. 어쩌다 주는 눈길 한 번, 미소 한 번에 큰 의미부여를 했지만, 그것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랑이야기라 비극이었다. 상대도 나를 좋아해줄거라는 가능성.


엄마는 죽어도 나를 사랑해주진 않았다. 아니 정정한다 그 보다 나를 더 사랑해주진 않았다. 나는 유일한 마음이 갖고 싶은 사람이었다. 마음에 순위를 매길 수 없다 해도 채점표를 만들어서 매겨주길 바란다. 소수점의 자리까지 고려하여 반올림을 할지말지 심각하게 고민해주었으면 한다.


그러나 엄마의 채점표 상단에는 늘 아빠가 있었다. 너무나도 최우선의 사랑이라 감히 내가 탐낼수도 없는 사랑. 즉, 내가 아무리 엄마를 사랑해도 엄마는 아빠만을 사랑하고 나는 그 사랑에 결국 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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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일순위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일순위의 사랑따위는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엄마가 아빠를 사랑하는것이 도대체 뭐가 문제겠는가. 혹자는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아빠가 바람따위를 밥먹듯 피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까.


세상에서 제일 나쁜남자를 절절하게 사랑하는 꼴이 꼴사나운 적도 있었다. 바라보고 있기가 도저히 힘들었다. 하지만 더욱더 힘들게 하는건 엄밀히 따지자면 따로 있었다.


엄마 역시 아빠를 향한 사랑이 외사랑이었다는 것. 아빠에게 바람맞은 날이면 나에게 찾아와 눈물을 쏟는것이 가장 견딜 수 없이 힘든 일이었다. 우리의 바보같은 외사랑클럽은 서로의 화살표를 서로에게 겨누지 못한 채 그렇게 각기 다른 생각을 하며 함께했다. 함께했지만 여전히 나는 없었다.


나는 그저 수단이자, 도구이자, 화풀이 대상이자, 감정 쓰레기통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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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핀 아빠는 어디로가고 엄마랑 치고박고 싸워야 하는지 억울했지만, 늘 아빠는 자취를 감춰버리는 매캐한 연기처럼 도망가버렸고 차마 풀지 못한 감정의 실타래를 푸는 몫은 언제나 엄마와 나였다. 엄마는 비겁하게도 이럴때는 나를 아빠로 여겼다. 네 아빠를 닮아서 꼴보기가 싫어.


그 사이에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면서 어설픈 생각만을 지속해나가고 있었다. 나라는 존재가 표백된 듯 깨끗하게 지워진 것은 아닐까. 아니면 나는 원래가 색 따위는 없어서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것 아닌지. 내가 이렇게 힘든데 보이지 않는다고? 그리고 또 다시 의심했다. 아니 어쩌면 내가 힘들지 않은게 아닐까? 그리고 결론에 이르렀다. 난 이 곳에서 점 하나도 찍을 수 없는 무력한 존재구나. 그저 가만히 있으면 되는 존재.


아빠의 바람도 나의 잘못, 내가 태어난것도 나의 잘못, 가장 큰 잘못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끔찍하게도 내가 모든것들을 사랑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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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도 시도하려 하지말아야 겠구나. 그것은 곧 균열일테니까. 벽걸이 시계 처럼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남몰래 정각 마다 뻐꾸기가 튀어나오는 우스꽝 스러운 벽걸이 시계를 보며 울었던 일은 지금까지도 비밀이다.


어린아이 시절에 끝났어야 할 풋내기 첫사랑은 의외로 순정파였는지 무덤까지라도 가져가려는듯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었다. 그 현재 진행형 사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엄마가 죽고나서야 비로소 그 사랑에서 벗어났다. 혼자 시작한 사랑은 끝맺을때도 혼자였다.


엄마랑 잘 이별하던 그날 오랜만에 눈물을 흘렸다. 이때도 남몰래였다. 죄를 짓는것 마냥 숨어서 방 한구석에서 숨죽여 울었다. 더 이상 엄마에게 미안하지 않다는 사실이 미안했지만 동시에 기뻤다. 긴긴 짝사랑을 내 손으로 끝낸다는게 후련했다. 그래, 나는 엄마를 너무나도 사랑한만큼 너무나도 미워했다. 이 사실을 인정하자 놀랍게도 엄마를 놓아줄 수 있었다.


30년을 살아내고 겨우 엄마의 그늘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해방되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혼자할 수 없어서 몇번의 상담끝에 도움을 받아서 이뤄낸 결과이다.


나는 엄마가 미웠다. 아빠가 싫었다. 그리하여 나는 아직 온전치 못하다. 간단한 사실들을 서술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스스로를 부정하고 울었는지 모르겠다. 싫어하던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던 사람을 놓아주고, 죽일만큼 미운사람을 미웠다고 인정하고.


인생이 무엇인지 점점 어려워진다. 그저 견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이를 악물고 견디던 것들을 한번에 놓아버리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나에겐 바람을 핀 아빠와 상처받은 엄마와 그로인해 더 상처받은 내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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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부서진 마음으로도 새로 시작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상담 시작 때 여쭤봤었던 것 같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 늦은건 없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나의 잘못 역시 아무것도 없다고. 그렇다면 이러한 생각이 움트는 것이다. 다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번에는 짝사랑이 아닌 쌍방의 사랑이 가능할지도 모르는 사랑으로.


사막에서 걷는 어떤 이가 너무 외로워서 뒤돌아서 걸으며 자신의 발자국을 보고 걸었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그 말을 빌려 나도 나의 발자국을 보면서 뒤로 걸어볼까 한다. 다만,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더 이상 그 누구도 나보다 더 사랑하지는 않을 것이다. 채점표를 다시 매기면 그뿐이다. 망가진것도, 늦은것도, 그 무엇도 잘못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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