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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Oct 30. 2022

살겠다는 진담, 죽겠다는 농담

그녀의 진심과 나의 농담




2014년 4월 16일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가슴 아픈 일을 가져다준 날. 나는 안산 고대 병원에 있었다. 건강 검진 때에 폐에 결절이 심상치 않다며 엄마에게 고대 병원에서 재 검사를 권유했고, 조직 검사를 한 후 그 결과를 기다리는 참이었다. 그때 TV에서는 전원 구조라는 속보가 떠서 안심을 했었더랬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병실 밖 복도가 어수선해지더니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자들이 정문으로 올 테니 후문으로 구급차를 받자'라는 말이 얼핏 들렸던 것 같다. 결국 전원 구조가 오보라는 속보가 다시 방송되었고, 아프게도 장례식장에는 수많은 아이들이 오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날 밤 엄마의 담당 주치의가 병실로 찾아왔다.


'폐암 4기입니다. 말기라 얼마 남지 않았네요. 빨리 치료를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디서 시작된 균열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치밀하게 망가져 온 것만 같았다. 착실한 붕괴는 어디서부터 곱씹어 보아야 할까.


-


엄마는 항상 식당 가스불앞에서 연기를 마시며 일을 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속상하게 해도 엄마에겐 자식을 공부 시켜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런데 여자는 끝까지 공부를 시켜주지 않겠다는 외할머니 때문에 엄마는 대학을 포기했고, 자신이 배운 게 없어서 식당일밖에 할 수 없다며 속상해했다. 그래서 첫째 딸인 나에게 늘 말하곤 했다.


외삼촌이 어느 날 자신에게 '누가 대학교를 안 나왔다고 해서 왜 떳떳하지를 못해? 그거 누나 자격지심이야. 누나가 떳떳하면 되잖아'라고 말했다며, 가슴에서 천 불이 난다고 했다. 그날 이후 나에게 꼭 대학교에 가서 공부했으면 좋겠다고, 기왕이면 서울로 가서 큰 곳에서 세상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엄마는 자신의 몸에 암 덩이가 자라는지도 모르고 식당 일로 번 돈으로 공부를 시키고, 밥을 먹이고 그렇게 나를 먹여 살렸다. 엄마가 참으로 열심히 살아서 나도 열심히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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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한 시에 항상 제일 늦게 독서실 밖으로 나오곤 했다. 집으로 들어오면 모두들 잠들어 고요한 공기가 몸을 감쌌다. 그러면 조심조심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한다. 나오면 어느새 엄마가 적막을 깨고 왔니? 하고 인사를 한다. 그런 엄마를 쳐다보면 언제나 안쓰럽다는 듯 나를 바라보면서도 동시에 알 수 없는 눈빛을 보낸다. 훗날 그 눈빛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바로 기대감과 뿌듯함이었다. 엄마는 자신의 꿈을 이뤄줄  있겠다는 기대감을 나에게 담는다. 그러면 도저히 다른 맘을 먹지 못하게 만든다. 그것은 명백한 반칙이었다. 그렇게 꽁꽁 묶어두는 무언가가 엄마에게 항상 있었다. 가끔  눈빛은 나를 너무 괴롭게 했다. 괴롭지만 깨부수고 다른 세계로  수가 없었던 이유는 여전히 엄마가 애틋했기 때문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기회를 뺏긴 엄마가 나는 너무나도 가여웠다. 그리하여 나를 기특하다고 여기는 엄마가, 나를 믿는 엄마가, 자신의 꿈을 나에게 미루는 엄마가 나는 너무 안타까웠다.


그러나 때때로 엄마에게 그 화를 풀었다. 벗어나고 싶어서, 부담스러워서, 자신의 꿈을 자신이 이루지 않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만만한 엄마에게 쏟아냈다. 엄마는 너무 사랑해 주고 싶은 사람이었다가 너무 걷잡을 수 없이 미웠다.


늘 감당할 수준의 감정을 나에게 주지 않았다. 복잡하고 어려웠다. 미지수의 엄마는 항상 사는게 힘들었다. 


어느 날은 바람을 피우는 아빠 때문에 그걸 말할 곳이 없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외로워서. 어느 날은 외할머니가 자꾸 자신은 잘 사는 줄 알고 다른 형제들 걱정하는 소리만 늘어놓아서. 또 다른 어느 날은 이런 자신의 속도 모르고 외삼촌이 자신을 가르치려 들어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때로는 자식마저 자신을 외면해서. 그래도 엄마는 강하니까 영원히 그 모습 그대로 곁에 있어 줄 거라 생각했다. 나도 사는 게 바빠 엄마를 자꾸만 뒤로 보낼 때 엄마는 그게 너무 속상해서인지 속에서 암 덩어리를 키워 냈는지도 모르겠다.


-


집은 원래 하나의 작은 나라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때의 나는 나라가 안팎으로 붕괴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기할 법도 한데 엄마는 늘 그러하듯 항암 치료마저 하루하루 참 열심히도 받으러 다녔다. 처음엔 치료 말고 요양을 권유해 보기도 했다. 훗날 나는 치료 말고 요양을 갔어야 했다고 너무 후회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때에 엄마는 강력하게 거부했다. 확률이 적더라도 열심히 해서 나아질 수도 있다는 것에 걸고 싶다고 했다. 쉽게 포기하는 길은 선택하지 않는 엄마 다운 모습이었다. 그리하여 이미 지난일에 대한 후회는 철회하기로 했다. 엄마는 늘 쉽게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고대 병원까지 집에서 걸어서 30분인데, 엄마는 정말 힘들지 않은 이상 늘 걸어가기를 원했다. 이것도 간단한 운동이 도움이 된다는 의사의 말을 진심으로 지키기 위함이었다. 엄마의 살겠다는 의지는 단단했다.


고대 병원으로 가는 길목에 나무가 쫙 심어져 있었는데, 거기엔 어느새 '잊지 않겠습니다' 혹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와 같은 지나다니면서 언젠가는 마주쳤을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위한 문구가 붙어있었고 나무마다 노란 손수건이 묶여있었다.


그 물결을 보면서 매주 병원으로 걸어 다녔다. 나무에 꽉 묶인 그 손수건만큼이나 엄마의 의지는 강력해 보였다.


-


어느 날은 항암 치료를 다 받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냥 엄마 손을 꽉 잡아보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나의 행동 모든 것이 후회하고 사무칠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포함해서 많은 것들을 그리워하며 참 많이 울겠구나.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며 절망할 때도 엄마는 포기를 몰랐다.


미용실에 가서 결국 머리를 다 밀게 되어서 나를 보면서 멋쩍게 '어떡하니, 엄마 너무 못나서' 그러면 나는 '아니야 엄마는 두상이 이뻐서, 다 밀어도 괜찮아'라고 말하고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아이처럼 꺽꺽대며 울었던 날. 그날 밤에도 엄마는 '나는 네가 졸업하는 걸 보고 싶어. 그때까지 살 수 있겠지? 엄마는 대학을 못 가서 한이 된 사람이잖아. 그런데 네가 대신 졸업을 해준다고 생각하면 너무 기뻐'


그러나 졸업까지 1년이나 남은 휴학생이었고, 엄마는 이제 막 치료를 시작했을 뿐이었다. 게다가 상태도 너무 좋지 못했다. 그렇기에 나는 미래를 점치기엔 엄마에게 남은 시간이 너무 짧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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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같이 치료 경과에 대하여 설명해 주던 선생님이 나만 따로 불러내서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고 주의를 줄 때, 환우들의 카페에 가입해서 엄마와 같은 케이스를 검색해 보고 낙담을 할 때. 나는 점차 가능성을 줄여나갔다. 삶에 대하여 진심인 것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엄마와 같던 방향이 점점 달라졌다. 엄마의 살고자 하는 농도가 짙어질수록, 나는 오히려 옅어지다 못해 희미해져만 갔다. 그래도 꾹 참고 입 밖으론 내뱉지 않았다.


하지만 밤마다 좌절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엄마 없이. 미우나 고우나 나의 편인데. 엄마가 죽으면 나도 그냥 따라갈까. 살면서 농담처럼 쉽게 내뱉던 말들이 있었다. 엄마는 나에게 너 때문에 못 살아. 내가 죽으면 너 나중에 후회할래? 그러면 나는 엄마 때문에 나도 힘이 들어 알아? 내가 원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니잖아 엄마.


생각해 보면 때로는 죽음에 대하여 그리 쉽게 농담처럼 말하던 날들이 많았던 것 같다. 상대방의 가슴에 비수를 꽂기 위해 그저 생각 없이 말하던 날들도 있었고, 인생이 너무 지치는 날 한탄을 위해 말하던 날도 있었다. 사는 게 왜 이렇게 힘이 들까 이러다 죽는 거 아냐? 싶으면 인생은 앞으로 더 가라고 채찍질한다. 그리고 이제 진심으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면 인생은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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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허망하게 보내고 나서 나는 졸업도 하고, 취직도 하고,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그리고 때로는 진심으로 죽을 것 같이 굴다가, 또 농담처럼 쉽게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내다가, 이야기를 꺼낸 것도 잊은 채 잘 살아간다. 정말 이래저래 살고 있다.


아직도 하나의 물음이 나를 종종 스친다. 과연 그렇게 열심히 살고 싶어 하던 엄마의 진심을 내가 이해하는 날이 올까?


죽음의 문턱에 선 한 여자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삶에 대한 진심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예의를 지키는 태도를 유지하는 그 마음을 감히 내가 알 수 있는 날이 올까?


내가 복용하는 우울증 약에는 공황 발작을 방지하는 신경 안정제 성분의 약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엄마가 떠난 후 나는 그녀의 예의와 진심을 이해해 보기 위하여 하루 세 끼를 정직하게 챙겨 먹고 그 후에 약도 착실하게 챙겨 먹는다. 이것은 그녀가 향했던 방향으로 살아보고 싶은 나의 소소하지만 큰 노력이다.


그러다 또다시 친구들 앞에서는 진짜로 무너져 내리는 모래성 같은 내 마음 따위는 숨기고 '그니까 정말이지 나도 너무 힘들어서 요새는 죽을 것 같다니까' 하면서 실 없는 농담을 던지는 것이다.


그렇게 진심과 농담 사이를 오가며 오늘도 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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