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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Oct 30. 2022

충분히 슬퍼해야만 주어지는 것

애도의 시간



매주 토요일 1시는 늘 비워둔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책처럼, 나는 매주 시간을 정하여 선생님과 일정 시간을 보낸다. 그 시간이 행복한 시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상담을 시작하고 100%의 출석률을 기록하고 있다. 성실한 성격은 아무리 힘들어도 빠질 핑계를 찾기보다는 힘든 몸을 이끌고 나가는 것을 선택하게 만든다.


이번 주는 엄마의 이야기가 주가 되었다. 엄마가 아팠을 때, 떠났을 때에 대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울고 싶으면 울어보자고 하셨다. 너무 괴로운 기억은 마주치기가 싫어서 나만의 방에 가둬 두는 버릇이 있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마치 탐정처럼 작은 단서 하나라도 허투루 놓지 않고 관찰하다가 결국에는 이야기하게 만드신다.


애도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진짜로 보내줄 수 있는 건, 마음껏 슬퍼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그리하여 오랜만에 엄마에 대해 마음껏 슬퍼하기 위해 오래전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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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세상을 떠난 지 셈하여 보니 벌써 7년이 지났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산 사람은 살게 돼 있어.라는 엄마 말처럼 나는 지금도 살아가고 있으니 맞는 말이기도 하고 아직도 엄마를 떠올리거나 대학 병원 근처에만 가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걸 보면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지는 않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매주 수요일 엄마와 손을 잡고 병원에 갔었다. 일주일에 한 번 항암 치료를 받으러 가는 날이었다. 그 길이 마냥 슬프지 만은 않았다고 하면 내가 참 이상해 보일 것이다. 엄마가 사는 게 너무 바빠 애석하게도 아프고 나서야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참 아이러니하게도 엄마가 병원 치료를 받는 1년 남짓 한 시간이 우리가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낸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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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나는 친하다가도 참 알 수 없는 이유로 싸우곤 했다. 그 예로 고등학교 때 나는 어쩌다 보니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심화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정말 운이 좋아 들어간 나는 시간이 지나 잘하는 아이들 틈 사이에서 점점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은 스트레스와 압박감 때문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원하는 게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글을 써보고 싶었다. 친한 친구 중 예대를 준비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에게 이미 입시에 관한 여러 정보도 들었다. 글을 전문적으로 배워서 입시를 준비하고 싶다는 아직 엄마에게 말하지 못한 소망이 있었다. 그러나 재능이 없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때 친구가 시에서 고등학생 대상으로 글 짓기 대회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단편 소설 부문으로 참가해 보았다. 그런데 예상외로 대상을 받게 된 것이다. 마음이 붕붕 저 멀리 하늘 위로 떠다녔다. 큰 상을 받아서가 아니었다. 너 앞으로 글을 쓰는 방향으로 나아가도 돼.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아 서 그게 그렇게도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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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을 손에 들고 학교에서 총알같이 집으로 달려가 엄마에게 소식을 전했다. 엄마, 나 그동안 말을 못 했는데, 사실 글을 쓰고 싶어. 그리고 이거 봐봐 오늘 상도 받았다?


엄마는 상장을 받아 들더니 네가 시 대회에서 일등을 했다고? 너무 대단하다며 칭찬을 했다. 마음이 벅차올라 순간 울컥했다. 그러나 바로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래 이렇게 취미로 글을 쓰면 되겠다. 엄마, 그런데 나는 글을 진지하게 배워서 예대로 가보고 싶은데?


바로 조소 섞인 말투가 들려왔다. 야, 너 그러려고 엄마가 가르치는 줄 알아? 지금까지 내가 왜 너한테 투자를 하고 힘들게 식당에서 일해서 돈을 벌겠니? 엄마처럼 살지 말라고 하는 거야. 너만은 공부해서 똑똑하게 힘들지 않게 일하라고. 글 쓰면 네가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아? 굶어 죽기 딱 좋아. 그냥 제발 평범하게 회사에 들어가서 돈 벌면서 살면 안 되는 거니?


그깟 상하나 탔다고 헛 바람 들지 마. 전국에는 너보다 잘 쓰는 사람이 널리고 널렸을 거야. 다시 공부에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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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공부에만 매진하는 생활로 돌아갔다.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지만 엄마를 웃게 하고 싶은 마음이 나에게는 존재했다. 엄마는 너무 자주 울었으니까 나만이라도 원하는 걸 들어줄 수 있다면 그래주고 싶었다. 그 길이 비록 나 자신을 버리는 길이더라도 기꺼이 그때는 나아가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엄마가 원하는 결과로 대학교를 붙었다.


그때도 엄마는 식당에 있었고, 식당 사람들에게 자랑을 했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엄마가 너무 순수해서 눈물이 났다. 순간 엄마보다 한참 더 큰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나는 엄마가 너무 좋아하면 가끔 슬펐다. 이런 걸로 웃게 해줄 수 있다면 몇 번이고 웃게 해주고 싶었다.


그해 겨울 안경을 쓰고 다니던 나를 위해 엄마는 라식 수술을 해주겠다고 했다. 대학교에 가서는 안경을 벗고 편하게 다녔으면 좋겠다며. 함께 상담을 받는데, 라식 수술의 부작용을 듣던 엄마가 혹시 책을 읽을 때 불편하거나 한 부분은 없겠죠?라고 말했다. 의사 선생님은 처음에야 겹쳐 보일 수 있지만 나중에 되면 괜찮을 거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덧붙였다. 얘가 글을 쓰게 될 애거든요. 혹시나 눈이 불편해지면 안 되니까요.


엄마는 너무 자주 울었다. 나도 어느새 그런 엄마를 닮았다. 눈물이 많아졌다. 엄마는 왜 그런 말을 해서 나를 울렸을까. 나조차도 내 꿈을 이미 버렸는데, 엄마는 왜 그것을 주워서 소중하게 담고 있었을까. 그때의 눈을 가지고 글을 쓰는 지금 내가 울고 있다는 걸 엄마는 알까.


그때 물어보지 못한 질문은 영원히 물어보지 못했다.

엄마도 나만큼 내 꿈이 소중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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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암 소식을 알던 날,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평생을 일만 하다가, 고생만 하다가 이렇게 데려가도 되는 건지. 정말 억울하면 숨이 넘어갈 것 같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나는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데 세상은 정말 잘도 돌아갔다. 모두가 질투가 났다. 친구들과도 살아가는 세계가 갑자기 달라진 것만 같았다.


나는 세상에 하나뿐인 엄마를 잃게 생겼는데 친구는 동생이랑 싸운 얘기를 하면서 나에게 속상하다고 할 때면, 도저히 공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도 그런 고민이 전부였으면 좋겠어. 고민이 고작 내 동생이 나도 안 입은 옷을 먼저 입고 나가는 그런 게 고민이었으면 좋겠어. 있잖아, 우리 엄마는 지금 폐에 암이 있대. 숨이 안 쉬어진대. 그래서 나도 숨이 안 쉬어져. 왜 우리 엄마여야만 해.


외할머니가 여자라고 공부를 안 시켜서 이런 게 아닐까? 우리 엄마도 배운 사람이었으면 힘들지 않게 편하게 일했을 것이고 그럼 이렇게 아플 일도 없었을 거야. 정말 할머니가 나빴어. 아니야 왜 할머니 탓을 해. 내 탓이야 내가 태어나서 그래. 나를 먹여 살리느라 엄마가 병이 난 거야. 차라리 나를 데려가. 나는 욕심이 너무 많아서 엄마도 가져야 하고, 내 꿈도 가져야 하고, 내 가족도 필요해. 이렇게 욕심이 많은 나를 데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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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을 끔찍하게도 죄 없는 사람들에게 돌리다가 마지막은 항상 비겁하게 나를 향해 돌리던 수많은 밤들. 그러나 아침이 오면 말끔한 얼굴을 하고 애써 밝은 척 엄마와 함께 병원으로 향하던 수요일. 그 수요일이 엄마와 내가 오랜만에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엄마와 둘 이서 놀러 간 적도 손에 꼽았다. 엄마와 손을 잡고 길을 걷는 그 30분을 나는 봄날의 소풍처럼 여겼다. 대학 병원의 기나긴 대기 시간 때문에 예약을 해도 우리는 한 시간을 기본으로 기다렸다. 한 번은 엄마가 내 무릎에 누워 잠이 든 적이 있다. 이제 막 빠지기 시작한 머리를 만지면서 생각했다. 다음 생엔 우리 바꿔 태어나자. 내가 엄마를 먹여 살리는 거야. 고생 안 시켜 줄게. 아닌가, 그냥 우리 만나지 않는 편이 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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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이 다 끝나고 돌아온 집의 냉기를 기억한다.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상주로 계속 맞절을 하며 무릎에는 멍이 들었고 꼬박 삼일 밤을 새워서 도저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머릿속에 지독하게 달라붙는 생각은 오로지 피곤함 뿐이었다. 이런 생각만 드는 내가 참 패륜적인 것 같았지만, 본능이 감정을 이기는 것 같았다.


몸과 마음은 너무 슬픈데 머리로 출력 되는 생각이 참 이상했다. 그러나 도저히 집에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엄마가 없다는 사실이 너무 이상했다. 이상함을 넘어서서 이상했다. 그때 아빠가 우리 찜질방에 가서 잘래?라고 말했다. 아마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찜질방 티브이에 나온 예능이 무엇인지도 지금까지 기억한다. 비정상 회담이 나오고 있었다. 그걸 정말 아무 일 없는 사람들처럼 그냥 보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동생, 나, 아빠 셋이 쪼르르 앉아서. 그리고 동생이 먼저 잠들었고, 아빠가 잠이 들었다. 나는 아무래도 잠이 오지 않아서 뒤척이다가 겨우겨우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다시 엄마 없는 세상이었다. 엄마는 정말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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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그리워서 한동안 나는 고대 병원 앞을 서성였었다. 병원 입구까지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갔던 길을 혼자서 멍하니 걸었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 항상 울면서 돌아갔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은데 추억할 곳이 병원 앞이라는 게 너무 억울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엄마랑 특별한 여행도 못 가봤고, 가장 최근의 기억은 병원을 갔던 기억밖에 없었으니. 함께 손을 잡고 얘기를 했던 소소하게 행복했던 봄날의 추억.


엄마와 나는 마냥 우울한 얘기만 하진 않았다. 나름 소소한 그날의 일상에 대하여 이야기했었다. 엄마 내가 티브이에서 폐암에 좋은 요리 레시피를 봤어. 언제 엄마한테 요리해 줄게. 엄마 내가 카페에서 봤는데, 엄마랑 똑같은 케이스인데 새로운 치료법으로 다 나은 케이스를 봤어. 엄마, 오늘 그 연예인이 되게 웃긴 얘기를 했는데 들어 봐 봐.


남들이 보기엔 참 웃길 수도 있지만 그래서 나는 엄마랑 다닌 그 길이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가끔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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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라, 언니라, 감당하기 힘들까 봐 애써 마음껏 그리워하지도 못하고 숨겨두었던 엄마와의 추억. 함부로 슬퍼질까봐 쉽게 부르지도 못한 나의 엄마. 엄마랑 도란도란 이야기하던 시절이 그립다. 손을 잡고 걸어 다니던 그 순간이 그립다. 내가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게 그립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면 너그럽게 들어줄 사람이 있는 게 그립다. 내가 강한 척하는 게 아니라 약해 빠져 있어도 그런 모습까지 그냥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는 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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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울적해도 그냥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줘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가만히 그냥 들어줘요.

체념하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지켜봐요. 가만히 어루만져 주는 거예요.

그런 게 인생이라고 누가 그러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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