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력을 잃어버리면 어쩌지?

by 이운

‘과거에 대한 의견을 정리했으면 이제 현재를 살아갈 차례다.’ 이렇게 생각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다음 주제를 탐색해보려 했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는 나의 문제와 집착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고민 하나를 해결하고 난 뒤에는 자유롭게 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낙원 위를 비행하면서 점점 의지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힘없이 대지 위로 내려앉은 나는 한참 생각하다 결론을 내렸다. 진짜 갈등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창작의 숙명에 처한 작가는 속이 편할 틈이 없고, 언제나 자신의 고통을 직면해야 한다. 그리고 게으름이 인간의 적이 되어버린 현대 사회에서 시간은 아마추어를 압박한다.


내가 새롭게 걱정하기 시작한 건 작가로서 동력을 잃어버리는 상황이다.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하고 제풀에 날개가 꺾여 추락하는 아찔한 상황 말이다. 난 내가 작가로서 안정적인 궤도에 진입해 문제없이 작업을 잘 진행하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흔들리지 않고 내 삶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강력한 축이 필요하다. 그리고 동력을 잃어 그 궤도에서 이탈하는 일이 없도록 필요한 조건들을 찾고 있다.


난 그에 대한 해답을 글을 쓰는 다른 이의 삶에서 발견하기를 원했다. 내 삶은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 이상 더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기 때문에 거기서 알 수 있는 진실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그 대신에 다른 사람들의 삶을 예리한 눈으로 관찰하면 글쓰기에 관한 거대한 진실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주제를 좁혀, 살아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작가들의 실제 이야기가 담긴 책들을 찾았다.


조사를 위해 충동적으로 구매한 책은 스테파니 랜드의 <조용한 희망>과 조앤 디디온의 <푸른 밤>이다. 각각의 책 속에서 스테파니는 작가의 꿈을 꾸는 미혼모고, 조앤은 자식을 잃은 중견 작가다. 한 사람은 가난해도 미래를 꿈꿀 수 있을 만큼 젊은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상실의 아픔과 글을 쓰지 못하는 노화에 직면한 사람이다. 이들은 모두 글과 자식이라는 공통된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서로 정반대의 상황에 놓여 있다. 그들이 동력을 잃지 않았던 이유를 찾으면 나 또한 동력을 잃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작가를 꿈꾸는 스테파니는 남자친구의 정신적 학대를 피해 어린 딸을 데리고 집을 나왔다. 그녀에게는 마땅한 직업도 없고,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족도 없다. 청소 일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며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스테파니의 삶을 지탱해 주는 건 일곱 가지의 정부 지원과 차 한 대, 그리고 미줄라 대학교의 문예창작과에 가는 꿈이다.
작가인 조앤은 남편을 잃은 지 2년 만에 딸까지 잃었다. 그녀는 일과 삶을 분리하지 못해 엄마의 역할을 충분히 이행하지 못했던 것과, 당시에는 알지 못했으나 입양된 딸이 계속 보내고 있었던 메시지 등을 생각하며 자신이 딸을 죽음에 이르게 한 건 아닌지 자문하고 자책한다. 그러면서 연이은 가족의 죽음과 더불어 나이가 든 그녀의 몸에도 노화가 찾아왔고, 예전처럼 글을 쓸 수 없는 몸 상태가 혼란스럽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 약간의 절망감을 먼저 마주했다. 문득 내 글은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굴곡 없는 삶을 살며 따분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내가 삶에 대해 고뇌한 것들은 게으르고 안일해 보였다. 이미 가지고 있는 너무나 좋은 조건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그 편안함 안에 갇혀 사는 것 같았고, 잘 만든 이야기 속의 인물이 겪을 법한 격렬한 갈등도 찾아볼 수 없었다. 때문에 풍족한 삶은 매력적인 글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되돌아갈 수는 없다. 이 길을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궁지에 내몰리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갖은 장애물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때 스테파니와 조앤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그들은 단지 어려운 삶을 전시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글로 쓸 수 있는 상황이 언제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난 이것을 미숙한 글쓰기 실력이라도 발휘해 사람들에게 글을 보여줄 수 있으면 작가의 초라함도 충분히 의미 있는 주제가 될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이 간단한 의미를 이해하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만큼의 시간이 흘러서라도 꼭 해내야만 했다.


난 지금 그 초라함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다. 아직 무르익지 않았고 완성도도 떨어지지만, 아마추어가 직접 자신의 삶에 대해 자세히 말하는 것을 다루고 싶었다. 그리고 그 과업은 반드시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일 때 완수해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이런 글을 쓸 수 없다. 자신의 작품이 훌륭한지 아닌지 아직 알지 못할 때가 완전히 솔직해지는 경험을 하기에 가장 적합하다. 또 나에게는 더 많은 내용을 보충하고자 하는 욕심과 아쉬움이 있었다. 이것이 내가 이 보고서를 1부만으로 끝내지 못한 이유다.


제대로 된 글감을 발견하는 순간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확신할 때 찾아온다. 이런저런 것들이 만족스럽지 않고 부족한 시기를 지혜롭게 통과하는 방법을 나름대로 찾았으니, 이 정도면 나도 제대로 된 글감을 발견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작가들의 언어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현실을 직시하고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쉽게 풀어쓴다. 그를 위해 사물과 공간을 상상하고 장치를 디자인해 하나의 시점에서 바라본다. 사실 작가가 사용하는 도구는 복잡하지 않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읽는 사람의 해석에 따라 복잡해지는 것이다.


무언가가 쓰고 싶어서 쓰기 시작하면 기묘하게도 생각이 바뀐다. 쓰기 전에는 몰랐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작가의 동력이 단순히 언어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데 있다는 가정을 뒤엎기로 했다. 처음에는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렇게 하면 결론이 매우 단순해져서 글쓰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하지만 스테파니와 조앤의 복잡하고 방대한 세계를 마주하고는 그런 단순한 결론으로는 진정한 동력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누구나 조금의 시간만 들이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은 그저 껍데기일 뿐이고, 거대한 진실은 더 깊은 곳에 묻혀 있다. 필요한 영양분만 채우는 일과 맛을 음미하는 일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나는 더 깊은 곳을 파고들기로 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스테파니와 조앤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다. 난 그 둘을 바라보며 어떤 공통점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공통점은 곧 작가의 조건이 되고, 대략 9가지로 추려진다. 이 9가지 조건은 다시 기술적인 조건 4가지와 정신적인 조건 5가지로 나뉜다. 나는 순서대로 하나씩 살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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