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프고 슬쁘다] "너무 미안한데 너무 행복해"

나의 소중한 감정 이야기-5

by Paul Da

우리는 20대 중반을 막 넘겨서 결혼을 했다. 내가 아내보다 한살이 더 어렸다. 처음 만났을 때 아내는 어엿한 직장인이었지만 나는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가난한 학생이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하여 홀로 지냈다. 등록비를 버느라 아르바이트는 달고 살았다. 조금 오버해서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런 나를 만나주고 결혼해 준 것이 놀라운 기적이다. 참 행복했다.


6개월 만에 첫 아이를 가졌다. 첫째는 아들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돈이 많이 필요했는데 나는 학비를 버는데 정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아내는 아이를 잘 키우겠다고 직장도 그만두고 얼마 안 되는 생활비로 아이들을 키웠다. 우리는 어려움 속에 잘 싸우고 잘 화해하며 이겨냈다. 그리고 둘째가 생겼다. 다시 어려워졌다. 이제는 치킨 한 마리 시킬 때도, 짜장면 한 그릇 시킬 때도 신경전을 펼쳤다.


"오늘은 짜장면 먹자"

"다음에 먹어 지금 생활비가 없어"

"짜장면 한 그릇이 얼마 한다고? 그냥 시켜 먹자"

"다음에 먹자니까 오늘은 있는 걸로 밥 먹어"

"거 참 짜장면 한 그릇 가지고 너무 하네"

"우리한텐 짜장면 한 그릇도 비싸"


참 슬펐다. 이럴 때 남자는 자존심이 상한다. 나도 매일 먹자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얼마 안 되지만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있는데 말이다. 그냥 한 그릇 사주지 말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서운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 감정은 상황에 민감하다. 항상 기쁨은 내 오른쪽에, 슬픔은 내 왼쪽에 붙어서 같이 사는 것 같다.


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둘째와 셋째를 가지고 진정한 다둥이 가정으로 거듭났다. 둘 다 딸이었다. 그렇게 아등바등 뒹굴며 살았다. 기쁨과 슬픔은 매일매일 우리 가정에서 함께 살았다. 울었다 웃었다, 싸웠다 사랑했다 그렇게 아이들을 키웠다.


대학원에 입학했다.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둘째 딸이 5살 때였다.


어느 날 저녁에 아내에게 용돈을 좀 달라고 했다. 그런데 줄 수 있는 돈이 없단다. 아내가 미안하다고 했다. 아내는 그런 상황에서도 나한테 미안해했다. 나도 아내의 말을 이해했다. 그리고 친한 형님에게 밥을 사달라고 해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둘째 딸이 그 어린 나이에 우리의 대화를 듣고 꽤나 진지한 마음이 들었나 보다. 그날 저녁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아침이 되었고 나는 학교에 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옷을 챙겨 입고 빈 지갑을 챙겼다. 비어 있는 지갑이라도 언제나 그랬던 습관처럼 열어본다. 지갑을 열면 늘 실망한다. 그런데도 또 열어본다. 어쩌면 하루하루 나의 상황을 불평하거나 도피하기보다 더 부딪히고 더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것이 나와 아내가 그 어려운 시절을 잘 이겨낸 비결이랄까?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서로에게 그 이상 미안하지도 않았도, 그 이하 탓하지도 않았다. 미안하지만 슬펐고, 행복했지만 서글펐다.


습관처럼 지갑을 열었다. 그런데 지갑에 4만 원이 들어 있었다. 누가 봐도 아내가 넣어 둔 것이 아니었다. 둘째 딸이었다. 왜냐하면 4만 원이 진짜 돈이 아니라 장난감 돈이었기 때문이다. 부루마불 게임용 지폐... 마음이 먹먹했다. 딸이 아빠 엄마 대화를 들었구나. 그리고 자기가 돈을 주고 싶었던 거구나. 그래서 이 돈을 넣어 준거구나. 학교를 가는 차 안에서 나는 눈에는 눈물이, 얼굴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미안하지만 기뻤고 서글펐지만 행복했다. 인생은 단짠 단짠의 연속이다.


"아침에 아빠한테 용돈을 주었더라"

"응 아빠가 필요한 것 같아서"

"고마워 너무 사랑해"

"히히히"


시간이 흘렀고 조금 여유가 생겼다. 이제 더 이상 밥 먹는 것 때문에 고민하지 않는다. 가정도 많이 안정이 되었고 우리 부부도 맞벌이하면서 빚도 갚았다. 아이들도 모두 초등학생들이 되었다. 우리 단짠단짠의 기쁨과 슬픔은 이제 우리 넷째가 되었다.


내 생일날이었다. 아이들이 아빠에게 어떤 선물을 할지 서로 고민을 했다. 첫째는 말 한마디를 준비했고, 막내인 셋째는 그림 편지를 썼다. 나에게 4만 원을 주었던 둘째는 어떤 선물을 할까 궁금했다.


둘째 딸이 용돈을 모았다. 그리고 용돈으로 아빠 지갑을 사주겠다고 했다. 장난감 4만 원을 준 기억이 난다. 이제 진짜 돈 4만 원으로 아빠 지갑을 사준다고 한다. 아... 이거 뭐지... 넷째인 단짠 단짠이가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아빠 나는 선물로 오늘 단단 단단만 줄게"


우리는 쇼핑몰에 같이 갔다. 둘째 딸과 함께 4만 원 정도 되는 지갑을 골랐다. 딸이 직접 계산을 했다. 얼마나 흐뭇해하는지 모른다.


"아빠 생일 축하해"

"아빠가 너무 미안한데 너무 행복해"


집에 와서 지갑을 몇 번이고 열어봤다. 얼마나 행복한지... 딸이 사준 거야. 딸이 사준 거야. 딸이...


인생은 잘 살다 보면 슬픔 속에도 행복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슬픔 속에 행복을 잘 찾는 방법이 있다. 슬픔도 내 인생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슬픔이 내게 찾아왔다고 굳이 쫓아내려 하지 말고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면 슬픔이 지갑 하나 꺼내서 줄 때가 있다. 열어보면 기쁨이다. 그럴 때가 있다. 그게 인생이다.


단짠단짠이 우리 넷째가 된 것처럼...


"나의 일상은 기쁨 하나에 슬픔 하나 넣은 커피 한잔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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