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돈 내산, 트렌치코트 구입기
온도가 오락가락 하지만 봄이 오고 있습니다. 2월이니 조금 추워도 봄 옷을 꺼내고 계절의 변화를 맞이할 때입니다. 옷장 안쪽 깊숙히 있던 니트류를 꺼내고 얇은 팬츠도 꺼냅니다. 두꺼운 코트와 점퍼는 아직은 아니지만 드라이 클리닝도 맡길 때가 되었습니다.
트렌치 코트를 꺼내다 카라 깃과 소매의 번들거림이 오래된 옷이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오래 입어 닳아버린 겁니다. 옷을 구매하면 오래 입는 편인데 특히 아우터는 더 오래 입습니다. 갤럭시라는 남성복 브랜드에서 구매했던 카키색 트렌치 코트는 원단이며 핏, 디자인 모두 좋아 5년을 야무지게 입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닳아버린 소매와 카라 깃을 보니 이제 이별을 해야할 때인 것 같습니다. 드라이클리닝을 맡겨 보았지만 전혀 나아지질 않은 걸 보니 옷의 수명이 다한 듯 합니다. 그럼 새로운 것이 필요하겠군요.
제게 트렌치 코트가 없는 건 아닙니다. 블랙 컬러의 면으로 만들어진 긴 기장의 싱글 트렌치 코트, 베이지 컬러의 면 혼방 소재의 더블 트렌치 코트 등 베이직한 것은 있습니다만, 어두운 컬러의 더블 트렌치 코트가 필요합니다. 어두운 컬러의 슈트가 많기에 이에 어울리는 블랙 혹은 다크네이비의 더블 트렌치 코트. 베이지 컬러가 베이직한 트렌치 코트의 컬러라 하더라도 밝은 네이비나 그레이가 아닌 이상 어두운 컬러와 어울리기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슈트 위에 밝은 타이를 하지 않기 때문에 베이지 컬러와의 상생은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왜 더블 트렌치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물으신다면, 화려하고 클래식한 디자인은 역시 더블 디자인이 좋습니다. 디테일이 많고 단추가 많아 화려해보이는 더블 트렌치 코트는 오히려 많은 디테일에 비해 몸을 꽉 감싸주는 매력이 있습니다. 더블 디자인으로 단추를 잠그고 허리 벨트로 질끈 허리를 감싸고 카라를 세웠을 때는 마치 단단하게 나를 감싸주는 느낌이 있습니다. 과거부터 더블 트렌치 코트는 밀리터리에서 디자인을 가져왔으니, 화려함과 단단함이 함께 있는 더블 트렌치 코트의 매력은 그런 것입니다.
저에게는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제가 입는 옷에 말입니다. 디자인과 형태에 따라 원하는 소재가 정해져 있습니다. 슈트를 구매할 때는 울 소재를 찾는 것처럼, 트렌치 코트라면 면, 나일론 위주의 혼용이 좋습니다. 면은 개버딘이라는 단단한 소재가 전통적적입니다. 버버리를 통해 유명해진 이 소재로 된 트렌치 코트를 입으면 몸을 무겁지만 강하게 감싸주는 느낌이 듭니다. 무엇보다 비에 강하고 오래 입을 수 있는 내구성이 강한 소재입니다.
나일론은 기능성을 가진 대표적인 소재입니다. 기본적으로 발수 가공(물을 튕겨내는 기능)이 되어있어 기능적인 면이 우수하고, 소재 자체의 가벼운 무게가 옷을 장시간 입어도 피로가 덜 들게 합니다. 무엇보다 바스락거리는 소재감이 매력적입니다. 나일론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에는 대표적인 브랜드가 스톤 아일랜드가 있습니다.
두 소재의 혼합은 꽤 멋진 원단을 만들어냅니다. 면의 단단함과 내구성, 나일론의 기능성과 바스락거리는 재미를 함께 가진 소재는 트렌치 코트 소재로 매우 적절합니다. 트렌치 코트가 가져야할 내구성과 기능성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면 혹은 나일론으로만 구성된 것보다는 두 가지가 혼방된 소재를 찾습니다. 매우 현대적인 소재라 지금의 우리에게 잘 맞습니다. 가벼운 비에 강하고 원단의 내구성이 좋은 것, 환경으로부터 보호받고 오래 입을 수 있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구매한 옷, 바로 '본(Bon)'이라는 남성 브랜드의 블랙 더블 트렌치 코트 입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트렌치코트를 검색하여 알게 되었고 여러 브랜드와 비교를 통해 결정, 구매하였습니다.
블랙 소재에 약간의 광택감이 포멀한 느낌을 줍니다. 매트한 컬러가 아니기에 어쩌면 과하지 않을까 싶지만, 매트한 컬러가 주는 것이 차분함과 미니멀이라면 광택 있는 컬러는 화려함과 존재감을 줍니다. 매트한 컬러의 트렌치코트가 있기 때 문에 아무래도 후자쪽이 새로운 것을 선택하는데 요소가 되었습니다. 폐기한 트렌치코트 또한 광택감이 어느 정도 있는 소재였습니다.
디자인은 베이직한, 전통적인 더블 트렌치 코트의 디테일을 모두 가졌습니다.
투웨이 카라는 여밈에 따라 혹은 카라를 세우느냐에 따라 그 멋이 달라집니다. 전 카라를 세우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서 이 부분이 두껍게 디자인된 것을 선호합니다. 카라를 세워 뒷목을 전부 감싸게 되면 화려하면서도 단단하게 스스로를 잡아주는 느낌을 받습니다. 풍성하면서도 안정적인 디테일입니다.
허리 벨트와 소매끈은 사이즈를 몸에 맞춰주는 것 뿐만 아니라 실루엣을 변화시켜주는 중요한 포인트 입니다. 남성분들은 보통 허리끈을 주머니에 넣거나 제거하여 이용하지 않는 편이긴 합니다만, 전 오히려 꼭 활용하는 편입니다. 각진 어깨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허리 부분이 잘록하게 허리벨트를 잡아주면 몸이 날씬해 보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상대적으로 어깨가 넓어보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여성분들이 허리벨트를 하여 몸의 실루엣을 슬림하게 보이게 하는 것과는 다른 용도가 됩니다.
기장은 기존의 트렌치 코트보다는 긴 편입니다. 기장이 긴 것을 선호하는 편인데, 특히트렌치 코트는 더욱 그렇습니다. 간절기에 입는 트렌치 코트는 어느 정도는 흔들리고 휘날려야 멋이 있습니다. 단단히 묶어주되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있어야 낭만이 있다라고 할까요.
키가 작다고 긴 것을 피하고 짧은 기장을 입어야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릎까지 오는 길이라면 키가 작은 분들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저 또한 무릎을 넘는 긴 기장은 피하되 허벅지 중간까지 오는 애매하고 짧은 기장은 피하고 있습니다. 그 간극을 잘 찾는 것이 옷을 잘 입는 방법 중 하나겠지요.
저에게 트렌치 코트는 꽤 중요한 아이템입니다. 많은 분들이 짧아진 봄과 가을을 말하면서 트렌치 코트의 필요성에 대해 물으십니다. 그럼 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 짧은 시기에도 입고 보온성을 유지하면서 멋까지 낼 수 있는 아이템이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건지에 대해서요. 트렌치 코트는 겨울의 방모 코트와는 전혀 다른 용도입니다. 또한 전혀 다른 멋과 스타일이 있습니다.
이제 봄이 오고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 마음속에 봄이 올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상황이 조금 더 나아진다면 트렌치 코트 한번 구경하러 가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