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와 글쓰기의 갭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글을 잘 쓰는 건 아니다

by 제로



글을 잘 쓸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할까?


나의 현재 상황과 체급을 고려했을 때, 소장가치가 있는 책을 만든다는 것은 어불성설. 겸손을 넘어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큰 틀의 방향을 정함에 있어, 이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장가치가 있는 책을 만드는 것을 큰 목표로 삼기로 했다. 북극성을 이것으로 상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놓인 숙제는 "A-Z 경험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그에 앞서, 나는 글쓰기가 무엇인지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글쓰기란 무엇일까? 이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학벌도, 그렇다고 특별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기에, 이러한 열등감을 채우기 위한 그 무엇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때부터 습관화된 것은 바로, 큰 서점에 틀어박혀 있는 것. 결국, 이것은 나만의 정서적 안정 장치가 되었다.


gongja6846_A_Korean_young_man_in_his_20s_sitting_on_the_floor_o_7178829d-e7e3-4505-b5a8-2e2b6f528854.png?ex=66441de3&is=6642cc63&hm=f69af10a926b1cb51c7c1dc9c018bc9b48cece0cb4d0ea25fc0afd9078e8edcc&=


어떤 사람들은 힘들면 술을 마시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 한다. 나는 무작정 서점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해소하는 쪽을 택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눈물이 마르면서, 내 앞에 책들이 화려하게 펼쳐졌다. 하지만 책은 읽지 않은 채, 펼쳐놓고 있는 시간들의 연속성. 그런 작은 습관이 2년, 5년, 15년이 지난 지금은 책과 친해지는 결과를 얻었다. 또한 내가 관심 없는 분야의 책도 거부감 없이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습관이 한몫했으리라.


그렇게, 20대를 보내고 30대를 마무리하는 과정 속에 독서의 양은 빈 깡통의 소리에서 찰랑거리는 소리까지 쌓여갔다. 이후 오디오북이 나오면서, 나의 라이프스타일은 또 한 번 크게 바뀌게 되는데, 그건 기회비용을 최대한 살리는 행위가 가능했다는 점이었다. 나에게는 매우 반가우면서도 설레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라이프 스타일 계획을 수립하면서 나는 운동할 때, 운전할 때, 화장실에서, 기다릴 때 등 틈 날 때마다 오디오북을 이용했다. 그렇게 생활 속에 허비된 시간을 아끼면서, 그 공백을 정보와 지식으로 채우기를 반복한 것이다. 그땐 무조건 주워 담기 바빴다. 머리와 가슴에 들어있는 것이 전혀 없었기에, 그게 뭐가 되었든 주워 담기 급급했던 시절이었다. 올바른 독서 습관, 책을 고르는 방법, 독후감 같은 건 없었다. 머리에 든 게 없는데 무엇을 가리고 판단한단 말인가? 일단 전부 집어넣고 나서 판단하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참으로 고지식하면서도 답답하지 않은가? 하지만, 성장한 이들 또한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 생각하면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지듯, 나 또한 같은 맥락에서 그런 순진함을 보였으리라 생각한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얼마나 오디오북을 듣고 있었는지 확인해 봤다. 2,000시간 리스너. "책을 읽어야지"라고 시간 내서 읽은 시간이 아닌, 틈날 때 들었던 것이 2,000시간이 넘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바닥으로 흘려버린 시간은 어느 정도일까? 지금에 와서는 바닥에 버린 시간은 그 또한 나름의 의미가 있음을 깨닫고 있지만, 앞만 보며 달려갔던 나의 과거는 이 또한 버려진 시간으로 생각했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1,000시간을 더 채우고, 밀리의 서재로 넘어가 한 동안 정보와 지식을 사유했다.



이렇듯, 나는 책을 구매해서 읽는 건 일 년에 100권이 안되지만, 틈틈이 듣는 건 나름 들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자랑하는 내용임과 동시, 나 스스로 아둔하다는 PR을 한 셈이다.


그렇다. 많이 듣고, 읽었다고 좋은 게 아니다. 물론, 이러한 파편들이 잠재의식 속에 들어갔을 때, 어느 센가 나의 관념은 나도 모르는 상황에서 쓰임이 한 번쯤은 발현될 수는 있다. 그러나, 나는 올바른 독서 태도와 방법이 올바른 관념(나의 고급 도서관)으로 형성되고 이것이 점차 확장되어, 더 넓은 응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믿고있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치고, 메모하는 행위를 많이 하곤 한다.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도 열심히 밑줄을 긋고, 메모하며 암기한다. 결국 이러한 행위 또한 수동형으로써, 나의 장기기억과 관념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물론 반복의 힘은 장기기억으로의 전환을 유도하는 것이기에 잠시 논외로 한다면, 읽기라는 키워드 자체가 주는 속성은 수동형(글을 읽는 행위는 능동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글을 읽는 것이기에 피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수동으로 간주하는 것이다.)으로써, 단기기억 속에 머물다 사라지는 정보가 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인상 깊었던 내용을 논리 있게 작성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좋은 책 한 권을 여러 번 읽고, 필사해 보며, 관련 내용을 다양한 관점에서 토론을 통해 공유하고 사유하는 과정은, 백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것을 반복적인 실천을 통해 내 것으로 체득하는 것이 참된 학습이자 책 읽기라 생각한다.(나 또한 이것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으나, 현실은 참으로 녹녹지 않다. 그래도 해야만 한다.) 좋은 책, 한 권은 저자의 모든 인생이 담겨 있다. 그런 인생을 몇 시간 만에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나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뇌 속에 칩을 넣는 그러한 미래적 이야기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이 둘은 왜 이토록 차이가 날까? 결론적으로, 수동형이냐 능동형이냐의 차이다. 예컨대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했을 때와 교실에서 수업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드는가? 그리고 어떤 것이 오랫동안 기억에 오래 남아 있을까? 이것은 설명을 안 해도 모두가 알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나는 능동형을 추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러한 능동형 범주에 있는 것들이 뭐가 있을까? 그렇다. 독후감, 토론, 서로 설명하는 것, 가르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선생님이 학생들보다 역량이 더 올라가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로 교사들이 이구동성 말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릴 때 가장 하기 싫어했던 키워드들만 모여 있지 않은가? 책을 봐도 생각이 나지 않아 독후감은 언감생심이고, 토론이나 서로 설명하는 것 또한 생각을 하며 의견을 나누는 자리이기에 기피대상 1호라는 사실 말이다.


결국, 기억에 오래 남는 독서를 위해서는 글쓰기(책)를 목적에 두고 그에 맞는 독서를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임을 알게 된다. 이는 포토샵을 배우기 위해 기능을 암기하는 것이 아닌, 쇼핑몰을 통해 돈을 벌기 위한 목적에서 포토샵을 배우는 것과 유사하다. 다시 말해, 영어를 배우기 위해 영어 책을 보는 것이 아닌, 내 아이템의 해외 진출을 위해 영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 이것이 핵심 포인트다.




나는 책을 쓰기 위해 글을 써야 한다. 글을 써야 하기에 그와 관련한 서적을 봐야만 한다. 이러한 명제를 바탕으로, 나는 책을 써야 하는 이유와 속성에서 필요성을 이해했고, 책을 써야 하기에 글을 써야 한다는 당위성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당위성은 나에게 관련 서적을 자유롭게 읽는 것이 아닌,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상황적 프레임에 갇히게 한다.


이로써 책(수동 속성), 글쓰기(능동 속성), 독서(수동 속성)를 하나의 능동 범주로 집어넣음으로써, 내가 해야만 하는 능동적 상황으로 만들었다.



본질과 속성, 목적과 상황 세팅이 끝났다!

이제 "책을 만들기 위해, A-Z 경험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포커싱을 맞춰야 한다.



[다음화에 계속]

keyword
이전 04화책 쓰기? 그게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