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다이드 Nov 23. 2023

127. 아서왕의 자리에 앉아

나의 첫 여행, 대륙 횡단

 아침부터 비가 내려 몸이 으스스했다. 숙소를 나와 걷는데 따뜻한 음식으로 배를 채워야 살 것 같았다. 마침 옆에 문을 연 식당이 있었는데,  원래 커피와 술을 파는 곳이었지만 간단한 식사도 할 수 있었다. 따뜻한 수프와 빵이 들어가자 얼어붙었던 몸이 서서히 녹는 게 느껴졌다. 식사를 하고 나와 다시 칼튼힐에 가는 언덕길로 들어섰다. 멀리 에든버러 성과 함께 구시가지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멋진 길이었다. 날씨가 변화무쌍했는데, 비가 그치는가 싶어 좋아했더니 칼튼힐에 도착해서는 우박이 내리기까지 했다.

 운치 있는 언덕이었다. 비도 오고 날씨도 추웠는데 새들은 그런 날씨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고요한 여기저기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만 크게 울리고 있었는데 무슨 신비의 정원에 있는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추워서 부리가 자꾸 떨리니까 뭐라도 지저귀어야 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공원에는 고대 그리스 신전에나 있을 것 같은 기둥들이 세워져 있는 건축물도 있었는데, 그 옆에 서서 구시가지를 바라보고 있으니 고대 그리스 시절로 돌아가 한 언덕에서 에든버러 시내를 내려다보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칼튼힐에서 내려와 에든버러 구시가지에서 안 가본 곳들을 돌아다니다, 오후 늦은 시간이 되어 '아서 시트'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서 시트는 호스트가 가보라고 추천해서 알게 된 곳이었는데, 매일 아침 홀리루드 궁전 앞을 지나 구시가지로 걸어갈 때마다 눈앞에 보이던 거대한 언덕이었다. 늦은 오후의 언덕은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넓게 펼쳐진 잔디밭을 가로질러 아서 시트로 걸어갔다. 밑에서 봤을 때 그렇게 높다고 생각하진 않았었는데, 막상 올라가 보니까 길이 꽤 가팔라서 꼭대기에 도착할 즈음에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언덕 정상에 있는 표지석까지 가자 석양으로 빛나는 아서 시트가 내려다 보였다. 지평선에 걸쳐있는 태양으로 물든 에든버러 구시가지를 아서왕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 내려다봤는데 마치 내가 왕이 된 것 같았다. 사방을 돌아보며 멀리 보이는 항구와 내가 가보지 못한 도시 곳곳의 모습을 바라봤다. 바람이 굉장히 셌다. 표지석을 붙잡고 머리가 헝클어진 채로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을 보니 남루한 옷차림에 머리까지 헝클어져 거지가 따로 없었지만 그래도 뭐가 좋은지 벙글벙글 웃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시내를 돌아다닐 때는 못 느꼈는데 사람들 머리 위로는 강풍이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스코틀랜드다웠다.



작가의 이전글 126. 에딘부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