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활동했던 동아리방 벽에는 커다란 세계지도가 붙어 있었다. 전 세계에 대한 비전을 품고 살라고 누군가 붙여놓은 것이었는데, 지도를 볼 때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육로로 시베리아 벌판을 가로질러 유럽으로 가는 걸 상상했었다. 당시에는 돈도 없고 너무나 막연한 생각이어서 피식 웃어넘겼지만 그렇게 대륙을 가로질러 가는 것이 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었다. 회사 생활을 하며 힘든 시기를 보낼 때에도 의자에 기대어 앉아 천장 한구석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으로 이어지는 길이 그려지곤 했는데, 길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진짜로 갈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처음으로 진짜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건 8년 4개월 동안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한 후였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회사 생활과 병행하며 준비할 수가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 내가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뽑고 일정을 잡아봤는데 계획한 대로 진행되면 이듬해 봄부터 여름까지 4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일을 꼭 성공시키고 싶어서 그리고 오랫동안 꿈꿔왔던 여행도 꼭 가고 싶어서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프로그램만 짰다. 그렇게 8개월 정도를 보내고 나니 준비한 프로젝트는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고 나는 지칠 대로 지쳐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어디론가 떠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