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킨헤드들과의 사투

by 히다이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러시아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보는 중에 러시아와 동유럽 지역에서 스킨헤드로 불리는 극우민족주의자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아돌프 히틀러가 태어난 4월 20일과 그가 죽은 4월 30일 사이에 유색 인종을 표적으로 하는 집단 린치와 테러가 절정을 이룬다고 하는데 내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하는 시점이 바로 4월 말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도 수천 명의 스킨헤드들이 있다고 하는데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들과 실제로 공격당한 사람들의 여행담을 읽다보니 덜컥 겁이 났다.


스킨헤드들이 동양인을 찾아 거리를 활보하는 속에서 내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며칠 동안이나 고민했다. 구글의 스트리트 뷰 서비스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움직여야 할 동선을 일일이 확인하며 우범 지역은 없는지, 번화가가 어디인지, 어느 길로 걸어가고, 어디에서 횡단보도를 건너야 할지까지 꼼꼼히 살펴봤다. 여태껏 살면서 검은 머리에 황색 피부를 가지고 있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이때만큼은 백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게 너무 속상했다. 괜히 4월 중순에 출발하기로 했다는 후회와 함께 이미 예약한 것들을 당장 취소하고 하던 일이나 마무리하자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일단 개인적으로 준비한 프로젝트의 결과가 나오면 그걸로 끝이었다. 성공한다면 바빠서 시간을 낼 수가 없을 것이고, 실패한다면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여행할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뿐 아니라 파리, 마드리드, 로마, 나폴리와 같은 도시들의 일정을 짤 때에도 안전 문제가 제일 신경 쓰였다. 나는 동양인이었고, 혼자인 데다가, 누가 제압하기에도 손쉬운 마른 체형의 남자였다. 혼자 돌아다니는 동양인 여행객은 소매치기나 강도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라는데 나는 딱 그들이 원하는 유형의 먹잇감이었다. 여행 경로를 짜며 방문지를 새로 추가할 때마다 우선 숙소 예약부터 했는데, 후보로 몇 군데 숙소를 추리고 나면 구글 스트리트 뷰 서비스로 숙소 주변은 안전한지, 기차역에서 숙소까지 걸어가는 길은 안전한지 등을 일일이 확인한 후에 제일 안전한 곳을 선택했다.


안전한 숙소를 예약하는 것과는 별개로 만약 날 노리고 접근하는 소매치기나 강도를 만나면 어떻게 대할 지도 정하기로 했는데,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급적이면 미소를 짓자고 다짐했다. 나한테 악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고 돈과 귀중품만 가져가려고 온 건데 괜히 상대방을 화나게 하면 신변의 안전에도 위협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혼자이고 현지 사정에도 어두운데 누군가와 시비라도 붙어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리면 여행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중간에 바보 취급을 당하거나 조롱거리가 되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계획한 여정대로 끝까지 가는 게 제일 중요했고 유일하게 의미가 있었다. 아예 나를 거들떠보지 않고 다가오지도 않는다면 나로서는 최상이었다. 그래서 옷은 최대한 겸손하게 입기로 했다. 눈에 안 띄고 부자처럼 보이지 않게, 털어봐야 아무것도 나올 게 없는 가난한 여행자처럼 보이고 싶었는데 원래 옷을 잘 입고 다니는 편이 아니어서 평소대로 입으면 될 것 같았다.


내가 제어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어차피 여행은 가기로 정해졌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던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맞아 죽으면 죽으리라, 털리면 털리리라, 하지만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신이여 제발 나를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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