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스키 극장에서 ‘백조의 호수’를 관람하는 게 상트페테르부르크 방문의 핵심 일정이자 이 여행의 주요 계획 중 하나였다. 처음 여행을 기획하며 지구 반대편에 가면 무얼 할지, 러시아에서 뭘 할 건지를 고민할 때 마린스키 극장의 ‘백조의 호수’ 공연 일정부터 확인했었다. 한국에서의 출국 일자도 ‘백조의 호수’ 공연일에 맞춘 것이었다. 만약 문제가 생겨서 공연을 못 보게 된다면 여행에 복구할 수 없는 상처가 날 것 같았다. 마린스키 극장이 숙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는 게 신경 쓰였다. 처음에는 택시를 타고 가려고 했는데 시내를 돌아다녀 보니 걸어가도 될 것 같았다. 다만 길을 못 찾을 수도 있어서 미리 마린스키 극장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에르미타주 미술관 방문을 마치고 숙소에 잠깐 들러 우산을 챙긴 후에 마린스키 극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네프스키 대로와 유명 관광지를 벗어나 혼자 주택 단지를 걷는 게 겁이 났지만 계속 걷다 보니 한국의 여느 골목을 걷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몇십 분을 걸어서 마린스키 극장에 도착했다. 그 유명한 마린스키 극장이었지만 겉모습은 여느 러시아 건물들과 비슷했다. 건물 외벽이 녹색이어서 마찬가지로 녹색 외벽을 가지고 있던 이르쿠츠크의 역사가 생각났다. 극장 안에 들어가 매표소와 1 층 홀을 둘러보고 극장 주변의 환경을 살펴본 후에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오면서 괜찮은 식사를 할 만한 음식점은 없는지 계속 주변을 살피면서 걸었다. 원래 전날 슈퍼마켓에서 산 음식으로 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막상 저녁 시간이 되자 제대로 된 식사가 그리워졌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부터 1 주일 넘게 빵과 과일 등으로 대충 먹었는데 누군가가 조리한 음식, 따뜻하고 양념이 되어 있는 음식이 정말 간절히 먹고 싶었다.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는데 눈에 확 띄는 곳이 없었다. 간혹 고급 레스토랑이 눈에 들어왔지만 비싸 보였고, 러시아 땅에서 스파게티 같은 음식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한 식당의 내부를 들여다보게 됐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봤던 구내식당처럼 보였다. 자기가 먹을 음식들을 고르고 계산대에서 고른 만큼 돈을 내는 방식이었다. 비쌀 것 같지는 않았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 훈제 닭다리와 감자튀김, 과일 주스와 채소 무침을 골랐다. 고기로 만든 다른 요리도 많았는데 입맛에 맞지 않을 것 같아서 무난해 보이는 것들만 골랐다. 식당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않아 식사를 하는데 저녁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식당 안에 손님이라고는 나 혼자밖에 없었다. 텔레비전에서 매력적인 남자와 여자들이 뜨거운 퍼포먼스를 펼치는 라틴풍의 정열적인 뮤직비디오가 나왔다. 러시아 가수의 노래인 줄 알았는데 여행 기간 내내 다른 나라에서도 종종 들었던 것을 보면 유럽 전역에서 꽤 인기 있는 가수의 노래였던 것 같다. 음식 맛이 괜찮았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니 살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