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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Apr 17. 2020

책을 낸다는 것 - 4

숙제 검사 받는 기분으로.

브런치에 올라왔던 글을 모두 스크랩해서 워드 파일에 하나하나 옮겨 담았다. 출판사에 완전 원고로 전송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외에 있는 터라 계약을 하려면 상호 우편으로 계약서를 보내고 사인을 해야 했다. 우편물이 오고 가는 사이에 부지런히 원고들을 정리했다. 문장이 어법에 맞지 않는 비문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모호한 표현들을 다듬고 앞뒤 상황이 더 필요한 내용은 추가했다. 

비록 내 손에 출판사의 사인이 담긴 계약서가 도착하기 전이었지만 약속한 날짜에 원고를 보냈다. 원고를 수정하는 몇 일 동안 머리 속이 조금 복잡했는데, 보내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숙제를 마친 기분으로 하루를 지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의 행복일 뿐. 

출판사의 피드백이 뜸했다. 

'네, 원고 검토해서 연락 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이 몇일 지나지도 않았는데 괜시리 불안했다. 


계약서가 오고 있는 도중인데 혹시 취소하자고 하면 어쩌지? 하는 괜한 걱정이 들었다. 전에 봤을 때와 달리 원고를 다 모아놓고 보니 도저히 책으로 낼 수준이 못됩니다, 라는 답변이 올 것만 같았다. 게다가 계약금(선인세)도 입금이 안되었다! 쓸데 없는 걱정만 생겨났다. 마치 부서 발령이 곧 날거야 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다가 결국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되었던 일이 떠올랐다. 출판에 관련된 여러 사례들을 찾아보고 있던 중, 출판사와 미팅도 하고 책을 쓰기로 구두 합의 했다가 결국 취소되었다는 에피소드를 그 즈음 보았다. 아아, 내 짧은 기대는 이렇게 끝나는 것일까!!

출판사의 연락을 기다리는 시간이 고작 일주일이었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힘들었다. 가족들에게 막 자랑도 해놓았었는데 이러다가 모두 아닌 것으로 되면 어쩌나 그저 애만 태웠다. 


하지만 마침내 계약서에 지정된 일자에 계약금을 받았다!

원고 검토를 이런 저런 방면으로 하다보니 피드백이 늦어져서 미안하다는 말씀도 함께 전해 주었다. 그렇구나, 하긴 내 원고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의 관점이 아닌, 편집자의 눈과 마음에서 글을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세계일 것이다. 그렇게 나의 1차 숙제 검사는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그 사이에 했던 이상한 생각들과 걱정들이 사라졌다. 


무엇보다 통장에 찍힌 그 돈이 낯설었다. 

회사 다니면서 받은 돈의 액수나 횟수가 훨씬 더 많았건만, 책의 저자로서 받은 돈이란 것이 마치 새로운 세상으로 나를 이끄는 느낌이었다. 낯설지만 괜히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이 계약금이 처음이자 마지막 인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생각도 해보지만, 내 인생에서 전혀 다른 이유로 돈을 받아본 경험은 앞으로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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