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의 앞 내용은 책을 낸다는 것 1~4의 요약입니다)
2020년 2월. 브런치 제안을 통해 메일을 받았다. 제안자는 레인북이라는 1인 출판사 대표였다. 평소 이공계 출신들이 전공을 살려 직업을 가지고 사는 것에 대한 아이템을 출간하고 싶다고 했다. 특히 이공계 학생이나 직장인들의 고민, 일상, 사유, 새로운 도전.. 다양한 것이 녹아 들어간 이야기가 필요했는데 마침 내가 쓴 글들이 그가 원하는 것에 맞는다며, 생각이 있으면 답을 달라고 했다.
집 계약만 해봤지 (그것도 아주 드물게) 개인적인 저작권 계약이란건 해본 적이 없었다. 계약 조건이 적당한 것인지 잘 몰라서 출판쪽에서 경력이 있는 형수님께 SOS. 신인 작가에게는 괜찮은 조건이라 하였다. 나도 꼼꼼히 다시 읽어보고, 구글링과 유튜브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출간 경험과 사례를 공부했다. 마침내 계약하기로 결정했다. 며칠 동안 출간과 관련된 내용을 공부하면서 출판 업계가 돌아가는 것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나도 금전적인 부담을 지는건가 싶었는데 그런 건 전혀 없었다. 하긴 나는 저작권을 판매 하는 것이니까, 내 돈이 들어갈 일이 없는 거구나.
출판사로부터 제안을 받아주어 고맙다는 답을 받았다. 사실은 내가 더 고마운 것인데.. 해외에 있다보니 직접 만나서 처리하기 어려운 관계로 먼저 계약서를 출력, 사인을 해서 출판사로 보냈다. 국제 우편으로 열흘 정도 걸려서 도착한다. 그 사이 브런치에 쓴 글들을 하나씩 다 긁어서 워드 파일로 정리를 시작했다. 원고 초안을 마련하면서 중간중간 이메일을 통해 문의와 대답을 주고 받았다.
특히 과연 이 책의 수요가 있을까? 다시 말해 시장에서 팔릴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드렸다. 나야 작가로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잘 팔리면 당연히 기쁘겠지만, 출판사 입장에서 시장성에 대한 판단이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했다. 투자 이상의 회수는 되어야 하지 않나. 대답은 아주 명료했다. 작가(나)의 진정성이 잘 전달되면 독자들이 찾을 것이다. 마음이 살짝 무거워졌다.
원고의 분량이 너무 적지는 않을까, 과연 한 권의 책이 될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보통 책 한 권이 300페이지 내외로 된다. 요즘은 원고지를 안쓰니까.. 일반적인 워드로 150페이지 정도가 그에 해당한다. 그 동안 쓴 글을 다 모아 보니 다행히 그렇게 부족하지는 않았다. 과거 브런치 이전에 블로그에 썼던 글이 생각나서 그것도 모아 보았다. 대략 300페이지에 가깝게 쓸 수는 있겠구나 안도감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글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설명이 부족한 글이 많았다. 나 혼자만 배경을 알고 있어서 친절하지 않은 내용들도 눈에 들어왔다. 문장의 구성이 이상한 것은 기본이고 오탈자도 있었다. 분명 포스팅 할 때는 그럴듯한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이상한 구석이 많다.
무엇보다 책으로 구성하기 위해 비슷한 성격의 글을 모으고 재배치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미 대략적인 원고는 거의 준비가 된 상태에서 수정만 하는 작업이긴 했지만 거의 2주가 걸려 1차 원고를 완성했다.
이메일로 보내고 다시 원고를 보니 또 눈에 띄는 것이 있어 급하게 수정을 했다. 다시 보내드렸다. 그 사이 출판사에서는 원고의 구성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아무렴, 나보다 전문가이니까 더 잘 해주시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꽤 오랫동안 연락이 없다. 계약금으로 건 선인세 입금 기간도 도래했다.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계약 단계에서 혹시 마음이 바뀐 것은 아닐까? 원고를 다시 보면서 안되겠는데 하는 생각으로 계약을 파기하는 건 아닐까? 별별 근심이 생겼다. 계약금이 안들어오니 더 걱정이 되었던 것 같다. 참지 못하고 확인해 보니 계속 원고를 수정하느라 바쁘셨다고. 계약금도 기간에 맞게 잘 들어왔다.
(계약금은 선인세라고 하여 미리 받는 인세의 개념이다)
1차 피드백은 약 2주 정도 걸렸다. 제목 후보들, 원고의 배치, 새롭게 추가한 글 (편집자님이 직접 브런치에서 발췌해서 넣어주셨다), 필요한 추가 꼭지.. 다시 힘을 내어 원고 교정에 들어가야 했다.
큰 카테고리들의 제목을 수정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일까, 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니 한결 제목을 뽑거나 꼭지들을 잡는 것이 수월해졌다. 그리고 분명 지난 번에 원고 수정에 꽤 많은 공을 들였다고 생각했는데도 다시 원고를 보니 이상한 글이 여전하다. 매끄럽게 다듬는 작업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퇴고의 연속이었다.
편집자님의 개인 사정으로 일정이 조금 밀렸다. 그 사이에 책 제목을 생각해 봤다.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아 요즘 책 제목 트렌드를 볼 겸 예스24를 들락거렸다. 책 디자인, 제목 등을 보다가 과연 내 책도 여기에 나타날 수 있을까하는 기대감과 걱정이 마음 속에 스물스물 올라왔다.
출판을 위한 조판 디자인을 받았다. 4월 안에 출간하고 5월 초 발매를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출판사에서 생각하는 가장 좋은 제목 후보도 제안 받았다 ('나는 연구하는 회사원입니다'). 사실 제목 후보를 십 수개는 만들어봤었는데 처음엔 괜찮은 느낌이다가도 다시 보면 별로 매력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한 눈에 사로잡을 제목을 뽑는 것이란 어려운 것이다.
본문 내용을 다시 보는 것이 힘들었다. 분량이 적지도 않은 데다가 하나씩 꼼꼼하게 읽어 보는 것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인지라) 지루하게 느껴졌다. 내용도 봐야하고 오타도 찾으려니 시간이 두 배는 걸린 듯 하다. 글을 볼 때, 아 이건 좀 더 내용이 보강되면 좋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제 와서 더 뭘 하기엔 늦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수정할 부분이 꽤 나와서 수정 내용을 반영해 달라고 따로 노트를 만들어서 보냈다.
기다리던 메일이 왔다. 수정된 본문과 함께 제목을 반영한 표지 가안을 받은 것이다. 첫 느낌은 '나쁘지 않은데'와 '이걸로 해도 될까?'하는 의구심이 교차했다. 아내는 괜찮아 보인다고 한다. 한참 뒤에 다시 열어보니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요즘 책들의 디자인을 살펴보았다. 아직 가안이라 폰트나 문구의 배치 등은 좀 더 손을 봤으면 좋겠다고 피드백을 드렸다.
지인들에게 추천사를 받기로 했다. 평소 고맙게 생각했거나 내 글에 대해 공감해 줄 수 있는 분들을 뽑았다. 부담스럽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셨고, 대학교 교수지만 공무직이라서 법적인 이유로 할 수 없다는 대답도 들었다 (김영란법에 고시된 내용이라고 한다). 그래도 대부분 감사하게 추천사 수락을 해주셨다. 이메일로 원고를 보내드리는데 약간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추천사를 써 주실 분들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원래 생각했던 일정보다 출간일이 밀렸다. 5월 초는 외출이 많은 때라 출시 적기가 아니라고 한다. 보통 출간 이후 2주 동안의 판매 흐름새를 보면 감(?)이 온다는데 다들 밖으로 나가는 때에 출간은 적당하지 않으니 차라리 1-2주 미루는 것이 더 낫다는 의견이다.
마케팅 계획서도 받았다. 편집자님은 잡코리아 같은 곳과 미팅을 하면서 책 홍보를 위한 여러 작업을 진행 해주고 있었다. 마케팅 일정과 계획 내용을 보니 정말 출간이 다가오고 있구나, 실감이 된다. 역시 시장에서 어떤 상품을 파는 것은 쉽지 않다. 내 책의 가치가 어느 정도일지 다시 한 번 궁금해졌다.
표지 디자인의 최종본이 전달되었다. 기본형을 두고 색상과 폰트, 문구의 배치만 약간씩 다른 버젼이었다. 아예 다른 디자인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폰트가 더 좀 세련된 건 없었을까 싶기도 했는데 책 내용도 담담하니 겉표지가 엄청 튀는 것도 이상하긴 하다. 편집자님 말씀으로는 외근 나가서 책 제목과 내용, 표지 시안을 보여주면 괜찮다는 피드백을 받는다고 하셨다. 물론 전부 출판업계 사람들 얘기라 다 믿을 수는 없다고.
추천사는 꼭 받고 싶었던 분들에게는 다행히 잘 받았다. 몇분들은 본인이 유명하지도 않고 쓸 만한 위치도 아닌데 해도 될까 걱정하셨다. 그게 그리 어려운 일일까 싶다가도, 내가 만약 누군가의 책에 추천사를 써준다면 어떨까 생각해 보니 짐짓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꼭 받고 싶은 분도 있었지만 일정이 너무 바쁘다는 이유로 고사하여 마음이 안좋다.
몇번이나 수정을 한 탓에 분명히 잘 봤었다고 생각했던 내용에서도 오타나 문구의 수정이 필요하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수정 내용을 정리했다. 계속 본 걸 또 보니 눈도 눈이지만 머리가 피로하다. 회사 생활에 관련된 내용이다 보니 의도하지 않게 내부의 보안과 관련된 이야기를 쓰지는 않았나 검토를 계속 했다. 결국 어떤 이야기 하나는 전체 내용의 절반 정도를 다시 썼다. 본의 아니게 회사 내부 얘기가 오해를 살수도 있겠다 싶어 늘 마음 한 켠이 찝찝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렸지만 이제 안심이 되었다.
지난 번에 수정 내용을 반영한 새로운 조판 파일을 받았다. 이번에는 간단히 오타 정도만 찾아야지 하는 심정으로 시작했는데 맘에 들지 않는 표현이나 구절이 또 눈에 들어왔다. 전체적인 내용이 맘에 썩 들지 않는 꼭지들도 있었지만 더 이상 큰 수정은 피하기로 했다. 다만 반드시 고쳤으면 하는 곳은 어쩔 수 없었다. 또 한번 수정 파일을 만들었다. 벌써 몇 번의 수정을 거치는지 모르겠다. 진정 이제는 더 고치지 않고 지나가고 싶다 (라고 썼었지만 결국 최종판을 받기 전에 한번 더 고쳤다).
인쇄 당일이 되었다. 아침에 편집자님의 연락이 왔다. 최종 표지와 인쇄를 위한 원고였다. 후아.. 지난 4개월 정도의 시간들이 이 하나를 위해 지나 갔구나 싶은 감동 따위는 없었고, 이제 더 고칠 것은 없겠지하는 안도감과 마지막 검토의 시간이 남았다. 오후에는 인쇄소에 파일을 넘긴다고 하였다. 잘 모르는 내용이지만 인쇄를 위한 원고 파일 —> CTP 인쇄용 파일 확인 —> 인쇄 시작이라고 한다. 책은 일주일 이내에 다 만들어진다고. 이후에는 물류 창고로 입고되며 서점으로 보내진다. 인터넷 서점은 물류 창고에 입고되면 도서 정보가 등록된다고 한다.
오타가 나와도, 내용이 조금 이상해도 이제는 어쩔 수 없다! 모쪼록 아무 문제 없이 잘 만들어져 서점에 깔릴 날만을 기다릴 시간이다. 이제 인쇄에 들어간다며 편집자님의 카톡 하나. 기분 좋으라 하신 말씀이겠지만 칭찬 잘 안하는 인쇄소 담당 부장님도 좋다고 하셨다고 한다.
지루한 기다림의 일주일이 지나가고 다시 연락이 왔다. 드디어 완성된 책! 직접 찍어서 보내주신 사진이 낯설다. 뭔가 다른 사람의 물건인냥 보인다 (이럴 때 해외에 있는게 참 불편하다. 실물을 바로 볼 수가 없으니 말이다). 물류에 입고 되었단다. 이제는 독자를 만날 시간.. 특별할 것은 없지만 회사생활에서 배운 많은 것들이, 나의 진심이 독자들에게도 잘 전달되기를 바란다.
구매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