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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Sep 16. 2020

기분 좋은 청탁

청탁하면 느낌이 그리 좋지 않다. 뭔가 뒷거래나 안 좋은 일을 부탁하는 것이 연상되기 일쑤다. 사전적으로 청탁은 '청하여 부탁하는 것'이라고 나와 있다. 그러나 보통 부정 청탁이니, 청탁 금지법과 같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떠올린다. 대가를 바라고 의도적인 부탁을 하는 것으로 이미지가 굳어 버렸다. 


오늘 나는 기분 좋은 청탁을 받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지루한 오후, 느닷없는 이메일 알림에 번득 정신이 났다.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하였습니다!' 

무엇일까. 연애편지 열어보는 설렘으로 클릭을 했다. 또 멘토링은 아니려나 싶었다. 


놀랍게도 원고 청탁이었다. 

'놀랍게도'인 이유는 에세이를 부탁받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주로 써온 글은 회사 이야기, 업무 이야기였다. 이것은 문학성을 가진 작품이라고 부르기엔 민망했다. 그냥 글을 좀 쓰는 회사원의 수준 그 이상을 넘지는 못한다고 자평해 왔다. 


나도 에세이라는 것을 잘 쓰고 싶었다. 소설은 힘들겠고, 적어도 에세이는 나름 쓸만한 능력을 가졌다고 믿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에세이를 표방하기로 한 브런치 북 '일상의 흔적들'에 남긴 글들은 독자들의 반응이 예상만큼 높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사실 내 브런치 북에서 '일상의 흔적들'은 아픈 손가락이었다. 회사원 이야기가 아닌 '삶의 단편'을 찾아 나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글쓰기 능력은 진정 부족한 것인가 반문했다. 좌절감을 맛보았었다. 다른 작가들이 쓰는 에세이에 비견해 내 것은 무엇이 그리 부족한가 마음이 조급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에세이 원고를 써 달라니!

게다가 이미 오래된 역사들 가진 본격 에세이 잡지에서 말이다. 

감개무량하다. 가슴이 두근 거린다. 

이런 청탁이라면 몇 번이라도 달게 받고 싶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자존감을 찾게 해 준 <월간 에세이> 편집장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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