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있는 글을 쓴다는 건 어렵다. 깊이 있는 글이란 무엇일까?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다. 진솔한 글이 깊이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마음을 울리는 감동적인 글을 보면서 깊이를 느끼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써보니 알겠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좋은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고, 진솔하거나 감동적인 글을 쓰는 것은 참말 어려운 일이다. 하기야 세상에 그렇지 않은 것이 있으랴. 노래는 누구나 부르지만 가수가 되는 것은 한정적이다. 그림 그리고 싶다면 아무렇게나 끄적거릴 수 있어도 작품으로 만드는 것은 전문가의 영역이다. 사실 그동안 글을 쓰면서 나를 지탱해 온 힘은, 유시민 작가의 말이었다. ‘작품은 예술가의 영역이지만 논리적인 글은 누구나 가능하다’. 그 말이 맞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무리 글을 써 재낀다 해도 어떤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1만 시간의 법칙 같은 것은 별로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
모든 글을 숙고하면서 쓰긴 어렵다. 어떤 경우엔 매우 즉흥적으로 순식간에 완성되기도 하고 (마치 작곡가가 어떤 유명한 노래를 단 5분 만에 쓴 곡이라고 하듯), 어떤 글은 끝내 마무리를 못하고 묻히기도 하였다. 여하튼 신경 써서 퇴고도 하고 글의 내용을 수정하여 나름대로 이 정도면 괜찮다 싶었던 글마저도 지금에 와서 보면 질적 수준에 의구심이 든다. 질적 수준에 대한 의구심이란 문학 작품이 아니기에 논리적 전개나 나름의 주장과 명분, 근거에 대한 내용일 것이다. 지나치게 개인적 경험에 기반한 글은 일기장에 토해내는 단순함을 넘기 어려운 것 같기만 하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에 나오는 주인공은 비평가가 무심코 던졌을지도 모를 ‘깊이 없음'에 대한 절망으로 더 이상 예술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브런치에 올리는 글에 대해 그 누구도 비평하지 않지만 스스로 느끼는 글의 수준에 대한 반성은 결국 자기비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당신은 진정으로 글을 잘 쓰기 위한 노력을 해 왔는가? 이렇게 물어보면 당당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 없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돌아보면 현재 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나아지고자 하는 욕심이 계속 어떤 일을 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요즘 주변에 불어닥친 골프 열풍 때문에 레슨을 다시 시작했는데 확실히 예전에 배웠던 것에 비해 더 나아진 기분이다. 혼자서 유튜브 보면서 이게 맞나 저게 맞나 할 때와 프로가 직접 잡아주는 원포인트 레슨으로 중요한 것을 배우고 난 뒤의 결과가 다르다. 그런 차원에서 글쓰기 강습이라도 받아야 하나 싶어 진다. 그저 열심히 쓰다 보면 언젠가 좋아지려나 하는 것은 막연하다.
그러다가도 생각한다. 아아, 나는 심각하게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소통을 위한 글을 쓰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니 남이 하든 내가 하든 깊이 있는 글쓰기에 대한 강요와 강박을 떨칠 필요가 있다고, 스스로를 몰아 붙이지 않기로 결론지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