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올라오는 글을 읽다 보면 어느 작가에서건 한 번쯤은 꼭 보게 되는 것이 있다. 바로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브런치는 글쓰기에 진심인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초보자는 초보자대로, 프로들은 프로대로 글을 대하는 태도와 자기 입장을 독백한다. 그 독백은 작가이자 독자인 누군가에게 파동이 된다. 파동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옆에 있는 물건의 공명을 일으킨다. 공명이 없었다면 내가 이런 글을 쓰게 되지 않았을 것이니, 독백=파동이라는 삼단 논법을 내 맘대로 주장해 본다.
이런 자기 고백적 글을 모아 주제를 분석해 보면 ‘꾸준히 쓰다 보니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내용으로 압축되곤 한다. 글쓰기는 일상에 지친 나를 일으켜주는 존재이자 방법이다. 글을 썼는데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고 오히려 삶이 더 피폐해졌다는 내용은 그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들다. 마음이 힘들 때 중심을 잡아준 것도 글쓰기이고, 자꾸 쓰다 보니 더욱 나를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어 기쁘다는 초긍정적 내용이 가득하다. 글을 쓰면서 여기저기 청탁도 받고 마침내 출간도 하게 되었다는 내용들은 옆에서 바라보기만 해도 반갑다. 가끔은 부러운 시선을 보내기도 하였다. 만약 중간에 출간이라는 이벤트가 없었다면 나도 지금까지 글을 써오고 있을지 장담은 못하겠다. 간혹 열심히 하는데 조회수가 나오지 않는다, 사람들이 알아봐 주지 않아 속상하다는 것도 있다. 작가 과잉시대일까? 블루오션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물론 업으로 글을 쓰는 이들은 그 시간이 힘들고 자신을 깎아내는 고통일 것이다만, 어쩐지 그 끝에는 성취의 기쁨이 있을 것이라 약간의 확신을 갖고 추측해 본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나는 누군가 쓴 ‘글쓰기라는 대상에 대한 (사랑과 신뢰의) 고백의 글’을 보고 또 본다. 분명 전혀 다른 작가님의 글에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드는 반복적인 내용이다. 그럼에도 그걸 또 읽는다. 각자 서로 다른 배경 속에서 변주되는 이야기가 그 자체로 재미있다. 마치 무한도전의 레전드 특집은 보고 또 봐도 즐겁고, 새로운 발견의 재미가 있는 것처럼 나에겐 글쓰기 예찬의 글이 그러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주는 것이 반갑다. 글을 쓰는 사람들만이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귀한 가치에 대해 재확인함으로써 나 또한 글감을 찾아 여정을 떠나는데 힘을 얻는다. 보이지 않는 동지들이 힘을 보태주는 기분이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취미를 묻는다면 이제는 ‘글을 씁니다’ 하는 대답이 약간 덜 쑥스럽게 되었다. 무려 40대에 가장 잘한 일을 꼽는다면, 하나는 글을 쓰게 되었다는 점이다. 일상이 되어버린 글 쓰는 행위는 별다른 수식어가 붙지 않아도 좋다. 아무리 유튜브의 시대, 영상의 시대라고 해도 텍스트에 담기는 힘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수줍게 다시 고백을 하고 나를 추스르며 새롭게 찾아와 줄 글감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