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문득, 나는 잘 살고 있는가-라는 고리타분한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는 바쁜 시절에도, 하는 일 없는 잉여인력처럼 느껴지는 빈 하루에도, 그저 별 볼 일 없는 평범한 하루에도 찾아온다. 질문이 대단히 포괄적인 영역이지만 올 초부터 요즘까지는 주로 일터라는 제한된 영역에서 유효하다. 새해가 시작되고 벌려 둔 일의 중간 지점쯤에서 타 부서의 동료로부터 공격을 받았었다. 적어도 내게는 공격으로 다가왔다. 그 공격의 수위는 내가 지키고 싶어 하는 선을 야트막하게 넘어버렸다. 흥, 웃기고 있네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법도 한데, 나는 단단히 마음먹고 어물쩍 넘기지 않기로 하였다. 여파는 컸다. 지금 하는 일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해외 근무 시절에 항상 복귀하고 싶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일이 없어서였다. 인사팀에서 알면 깜짝 놀랄 고백이다. 실제로 정말 일 없이 놀았다는 것이 아니다. 당시 업무의 역할과 국내 연구소와의 접점 찾기가 상당히 고단했던 것은 사실이다. 일을 만들어 내서 해야 하는데 받아줄 파트너가 없으니 결과적으론 일을 안 한 것이 되는 상황이 너무 싫었다.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까지 덮쳐 활동의 제약이 생겨 매달 업무 보고는 아주 곤욕이었다. 누군가는 일 없으면 편하지 않냐고, 불가항력적인 면도 있으니 그냥 어쩌겠냐고 하겠지만 당사자 입장에서 맘이 불편했다. 그때 알았다. 아, 나에게 일은 꽤 중요하구나. 월급을 받는 것에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야 만족스러워하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자리는 제법 할 만하다.
초반엔 배우는 재미가 있었다. 일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오는 쾌감이나 새로운 업무를 발생시키고, 하나씩 기준을 마련해 나가는 것이 좋았다. 대단히 도전적인 목표에 대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스타일은 아니다. 적절한 선에서 개선해 나가는 재미, 새로운 사람들과 일하며 설득하고 조정하는 건 그래도 내가 잘하는, 잘할 줄 아는 영역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싱가포르 근무에서 복귀 후, 현재 하는 일을 맡았을 때 2-3년을 하겠다고 생각했었다. 누가 묻지도 요구하지도 않았던 시간이다. 막연하게 이 정도 하면 충분한 것이겠지라고 스스로 정한 기간이었다. 오랫동안 꾸준히 해야 할 일이라기 보단, 잠시 근무하며 돌아온 연구소에서 자리를 잘 잡기 바랐다. 자리를 배정해 준 상무님의 요청에 대응하여 적절한 선에서 일을 끊어내는 용기와 기준을 마련하려고 노력도 했다(성의는 보였다고 읽어야 마땅하리라.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 보니..). 햇수를 일부러 새어 나간 것은 아니었으나 마치 계획이라도 한 양, 딱 만 2년을 채우는 시점에서 위의 그 사달이 났다.
그렇게 절절히 원했던 보람 있는 일을
이제는 꾸준히 하게 되었으니 그 자체로 고마운 일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쓸모가 있는 사람이란 피드백을 받으면 기분이 좋다. 하지만 앞서 던졌던 질문 – 잘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요즘 영 답이 시원치 않다. 아마 별다른 이유가 없다면 현재 위치와 직급을 적당하게 뭉개면서 버텨도 몇 년은 지낼 만할 것이다. 삐대면서 눈치 좀 보다가 필요할 적절한 타이밍에 그럭저럭 쓸모 있는 결과나 성과를 던져주는 나름의 능력(기술?)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버티는 삶은, 저 멀리 타국에서 일하면서 나를 괴롭혔던 질문 아니었던가! 일터에서 스스로 잉여로운 사람이란 생각이 들면 어쩐지 위험하다고 본다.
고민을 토로하니 누군가는 그대로 있으라 하고, 누군가는 성심 성의껏 조언해 준다. 용기를 내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결국 현실적으로는 여기서 한 1년만 더 버텨보자.. 가 결론이 될 수도 있다. 누구 말마따나 지금 자리, 괜찮으니까. 그렇게 지내다 보면 또 한 해가 가고,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면서 결국 도태되는 삶을 살게 되지는 않을까. 연차만 처묵처묵 한 좀비 선배가 될까 봐, 그게 나는 지극히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