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아 작가의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의 말미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오랜 기간 조직 생활을 해 온 저자는 마흔 중반 이후부터는 자신이 ‘내려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조직에서의 승진과 성장을 등산에 비유한다. 누구나 산에 오르지만 정상이 있는만큼 결국 내려갈 수 밖에 없다. 내려감을 두려워 하기 보다는 마주 보되, 하산하는 길은 더욱 조심하며 한 발 한 발 내딛어야 하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저 나이가 들었을 뿐인데 격변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노력과 공부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간극을 느꼈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내려가는 사람으로 지칭한 것이다. 이건 그녀의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때론 불가항력적으로 채울 수 없는 무엇이 있음을 말한다. 노력하면 조금은 버틸 수 있겠지만 그러기엔 또 부담이 있었다. 그 결과, 임원의 자리를 자발적으로 내어 놓는다.
여기에 적극 동감한다. 언젠가부터 회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순간이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것이 최인아 작가가 말하는 '내려가는 사람'의 느낌이려나? 패배자라던가 실패한 인생이라고 보는 것이 아니다. 지난 20여 년의 시간이 후회되거나 불만족스럽다는 것이 아니다. 최선을 다했던 시간이 있었고 일하는 것이 즐거움으로 가득한 적도 있었다. 물론 승진 탈락이나 조직 승격의 무산 등 힘빠지는 일도 많았다. 다양한 사건과 경험으로 가득했던 조직 생활은 나를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하게 만들어 주었다. 온전히 노력을 다해 시류를 따라가고 적응하려고 하는 것과는 별개이다.
‘나의 시간은 언제든 끝날 수 있고, 그 시간이 매일 가까워지고 있구나.’
그래서인지 이 부끄러움은 문득 나이 들었음에서 오기도 하고, 버티는 힘이 갑자기 툭 끊어지는 날 찾아오기도 한다.
무심히 지나고 나서야 무작정 올라가기만 하면 될 줄 알았던 회사라는 높은 산의 등반 뒤엔, 내려올 준비 또한 필요했음을 절절히 알아채 버렸다. 올라가면 내려오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사람 참 무지하다. 핑계를 찾자면 달려 나가던 때엔 그저 일잘러가 되는 방법(잘 올라가는 방법)만 보였다. 내가 배우고 익힌 것, 목표로 삼았던 것은 꾸준히 오르는 자세와 마음가짐 뿐이었다. 아니면 최근엔 극단적으로 퇴사 이후의 삶에 대해서만 논한다. 아직 조직을 떠나지 못한(않은) 사람들이 나름의 커리어 정점에서 어떻게 내려오는 것이 바람직한지, 어떻게 연착륙하는지 왜 아무도 알려주질 않는가?!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걸 알기 전에, 또는 알면서도 회사를 떠나 버리니 후배들에게 전수된 것이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승진의 문제를 떠나서 내가 가진 능력의 발산이 언젠가는 무의미해 지는, 그 끝이 예전에 비해 훨씬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여 요즘의 나는 내려오는 방법을 익히려고 한다. 일의 성공과 실패보다, 작은 기술적 성취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일 자체를 어떻게 대하고 다루는지에 대한 생각 정리, 그리고 깨달은 것을 동료들에게 보여주기이다. 내 족적이 누군가 모를 한 두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게 말이다. 함께 일하는 방법을 전수하고, 모범이 되는 사례를 만들어 놓고 싶다. 나중에 후배들에게 발견의 기쁨이 있는 보고서라도 한 두 편 더 쓰고 싶다. 그렇게 내려 가다보면 다리에 힘 풀려서 넘어지지 않고 안전하게 산 아래까지 잘 내려올 수 있겠거니 하는 희망으로 말이다.